보험회사가 시민들의 건강 정보가 담긴 데이터를 얻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생명 등 민간보험회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공단)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 제공을 요청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민간보험회사의 연구를 위해 개인(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앞서 지난해 9월15일에도 건강보험공단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KB생명, 현대해상 등 5개 보험회사의 공공의료 데이터 사용 신청을 승인하지 않기로 했는데, 한화생명이 이달 공공의료 데이터 활용을 재신청했다. 이에 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는 25일 한화생명이 신청한 건강보험 제공 요청을 재심의할 예정이다.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국민건강보험노조 등 50개여개 단체들은 지난 19일 낸 성명서에서 “건강보험공단이 보유, 관리하는 개인정보는 건강보험 보장과 납세를 위한 정보이며 누적된 개인 의료정보와 가계 정보가 집적돼 있어 매우 민감성이 높은 정보”라며 “이 때문에 건강보험공단의 개인정보 활용 제공 범위를 판단할 때 개인 민감정보 활용 위험을 사회가 감수할 만큼 그 목적과 결과가 ‘공공성’이 있는지 판단의 준거가 돼야 한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연합뉴스.

먼저 이들 단체는 “사적 소유와 사적 이윤이 목적인 민간보험회사의 그 어떤 연구도 사회적 민주적 공공성 목적에 부합할 수 없다”며 “건강보험공단이 보유·관리하고 있는 국민건강 개인정보는 민감정보 중 민감정보이며 개인정보의 양과 질 측면에서 다른 개인정보와 차원이 다르다. 공단의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하고 있는 기준을 넘어 더 엄격하고 엄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개인정보보호법 가명정보의 처리 등 조항을 보면 개인정보처리자는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을 위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 정보(실명이 드러나지 않게 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업의 무분별한 활용에 제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를 허용하면서 기업이 수행하는 연구를 포함해 사실상 상업적 활용이 가능하게 됐다.

이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가명처리 목적 가운데 ‘과학적 연구’의 범위가 폭 넓고 모호하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보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단체는 이어 “민간보험회사들이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공단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활용해 개인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보험회사가 관련 데이터를 얻게 되면 임의로 보험료 지급 거절 사유를 만들고, 건강 취약자의 보험료를 올리고, 공보험인 건강보험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의 시장을 확대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현재 민간 보험회사들이 ‘과학적 연구’를 목적으로 개인정보 데이터를 요청하고 있는데, 절차와 과정, 결과, 주체의 공공성 등을 담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간보험사의 연구결과가 공개돼야 하고 △연구의 이익이 공유되지 않거나 부정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집단이 있어선 안 되고 △개인정보를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해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을 더 증가시킬 위험이 있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 2018년 1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국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당사자 동의 없는 가명정보의 상업적 활용 등을 반대했지만, '기업의 연구'를 허용하며 사실상 상업적 허용이 가능하게 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 2018년 1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11개 시민사회단체가 국회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당사자 동의 없는 가명정보의 상업적 활용 등을 반대했지만, '기업의 연구'를 허용하며 사실상 상업적 허용이 가능하게 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또한 이들 단체는 민간보험사의 과학적 연구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에 맞지 않다고도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과학적 연구 참여에 대한 개인의 동의는 연구 수행 기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인정보보호법 관련 조항의 취지는 해당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개인들도 ‘암묵적으로 동의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공공성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용에 개인의 정보 자기결정권을 제약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이들 단체는 “건강보험공단이 민간보험회사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국민건강 개인정보를 활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시도에 판을 깔아줘선 안 된다”며 “건강보험공단 개인정보 제공 심의위원들은 사회적 공익을 지키는 원칙과 기준 하에 심의를 진행해야 하며 국민 개인정보 제공 심의인 만큼 관련 심의 내용에 대한 모든 논의가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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