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정치·사회문제로 논쟁을 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들통났다. JTBC ‘가면토론회’ 제작진들은 이 대표가 출연한 사실이 알려지자 4회로 예고했던 프로그램을 2회 만에 폐지하며 다시보기 영상까지 삭제했다. 이 대표는 방송에서 경쟁 정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비판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측을 두둔했으며 유체이탈 화법으로 이 대표 자신에 대해서도 여러 발언을 했다. 특히 주제가 안 후보의 지지율 급등과 단일화였던 방송에선 안 후보에 대해 맹비난을 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일반 시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가 나와서 자신이 아닌 척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한마디로 제1야당 대표와 방송사가 시민들을 기만한 사건인데 이 대표와 JTBC의 반응은 ‘그게 왜 큰 문제냐’는 투다. 

▲ JTBC 가면토론회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 JTBC 가면토론회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이 대표는 지난 1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오히려 “(프로그램이 중단돼) 참 유감스럽다”며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 취지도 가수들의 명성은 제쳐놓고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평가하자는 것이다. JTBC도 ‘명성이나 이런 것을 제쳐놓고 논리만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고 제안해 제가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한 “프로그램에 ‘안철수’라는 뜨거운 주제가 나왔다고 해서 제가 아무 말 안 하는 것도 웃긴 것 아니냐”며 “뭐가 그렇게 불편한지, (국민의당에서) 태클을 걸었는데 모르겠다. 그런 인식으로 얼마나 정치세력으로서 지지받을 수 있는지 한번 보겠다”고 말했다. 중립성 등을 이유로 이 사안에 대해 비판했던 안 후보 측을 오히려 비난한 것이다. 이어 “이미 다 했던 말들인데, 제가 누구보다 실명으로 안철수 대표 비판을 잘한다”며 “그런 것 가지고 (비판하는 국민의당은) 유머감각을 상실한 분들이기 때문에 따로 응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대표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세 가지만 지적해보려 한다. 

첫째로 JTBC에서 이 대표에게 가면을 씌워주고 음성변조를 한 것부터 문제다. 이 대표는 가면을 쓰고 ‘마라탕’이란 이름으로 토론방송에 출연했다. 마라탕은 “허위 이력 기재 등 문제가 있다 한들, (이것 때문에) 대한민국의 영부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한다면 전과 4범은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게 맞다”, “자격기준으로 적용하기 시작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출마 자격이 안 된다”, “어부지리로 올라간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내려갈 것” 등 발언을 했다.

이 대표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 경쟁 정당의 대선후보에 대한 비판 등을 할 때 유권자들은 그가 국민의힘 대표라는 사실을 감안해 듣고 판단한다. 그러나 JTBC가 그에게 익명성을 씌워주면, 정치인의 발언이 아니라 ‘여론’이 된다. 이해관계와 정파성이 사라지고 발언의 신뢰성이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 대표는 또 “‘명성이나 이런 것을 제쳐놓고 논리만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고 해서 응했다”고 해명했다. 이 발언을 일반 시민이 했다면 맞는 말이지만 이 대표가 뱉을 땐 틀린 말이다. 공론장은 진공상태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말하는지에 있다. 

똑같은 말을 누가 했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 경험은 일상에서 모두가 하고 있다. 같은 말을 연인끼리 하면 사랑의 언어지만 상급자가 하면 성희롱인 경우도 있다. 만약 윤석열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내용으로 이재명 후보가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해보자. 발화자가 누군지가 핵심이다. 정치인이 발언하면서 논리로만 승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두 번째 문제는 다양한 발언권을 보장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놓고, 이미 큰 스피커를 가진 정치인에게 굳이 추가로 마이크를 대줬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자신이 실명으로도 안 후보를 비판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럼 그랬어야 했다. 이 대표는 쉽게 기자들과 만나 대화할 수 있고, 페이스북에 글만 써도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익명성까지 부여받아 공론장에 뛰어드는 행위 자체는 과욕에 가깝지 않을까? 한국 사회에 수많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있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계층이나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이들의 자리까지 빼앗아가며 당대표가 출연했을 때 이 사회에 이득은 뭘까? 시청자 입장에서도 굳이 뉴스에 숱하게 나오는 이 대표 발언을 그가 아니라고 속으면서까지 또 들어야 할까? 

다른 경쟁정당 관계자들도 다 출연시켰어야 한다는 차원의 주장이 아니다. 왜 표현의 자유시장, 언어의 자유시장에서도 강자가 독식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JTBC가 이 대표 출연을 결정한 순간 자초한 문제인데 제작진은 이에 대한 사과도 없었고, 논란 때문에 폐지한 게 아니라고 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니 2회 만에 폐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JTBC 가면토론회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 JTBC 가면토론회에 출연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세 번째는 사람들이 가장 분노했던 지점이다.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아닌 척한 사실이다. 마라탕은 JTBC에서 “이 대표도 여가부 관련 토론에 8번 이상 나갔다”, “‘연습문제’ 발언은 기자들이 선대위 개편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얘기했을 때, ‘조직도 나온 것만으로 파악할 수 없다. 상황 속에서 연습문제 풀어봐야 된다’고 한 것이다. 그게 어떻게 대상이 (윤석열) 후보일 수 있겠나”라고 했다. 

이 정도면 시민들 입장에선 이 대표가 사실상 여론을 조작했다고 느낄 만하다. 자신이 자신을 대변하면서 아닌 척하는 모습에 거대정당 대표에게 기대할 만한 신뢰감이나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안철수 후보를 향해 “아직도 옹졸한 마음을 못 버렸다”며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도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맞는 말이다. 안 후보가 아니라 이 대표를 향한 말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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