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적용한 인터넷 게시물 심의가 시작됐다. 5·18민주화운동 왜곡을 불법정보로 규정한 심의가 본격화되면서 심의 기준과 방식, 적절성을 두고 입법 과정의 논란이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심의소위원회(소위원장 황성욱)는 17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5·18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게시글과 영상 등 게시물 88건이 정보통신망법 ‘불법정보의 유통금지’, 통신심의 규정 ‘범죄 기타 법령 위반’ 등을 위반했는지 심의했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을 적용한 첫 심의다.

역사왜곡 처벌법, 북한군 침투설 주장에 첫 적용

통신소위는 심의 결과 82건 삭제, 2건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나머지 4건은 게시물 비공개 전환 등을 이유로 각하됐다. 사실상 심의 안건에 오른 정보에 일괄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상의 불법정보와 유해정보를 심의하고 있다. 그동안 방통심의위는 5·18민주화운동 내용을 왜곡하는 게시물을 유해정보로 보고 통신심의 규정상 ‘사회질서혼란’ 조항을 주로 적용해 심의해 왔다. 반면 이날 심의부터는 지난해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에 따라 불법정보로 심의하기 시작했다.

▲ 5·18민주화운동 관련 지식IN 질문 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답변에 지만원씨의 주장을 인용해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글들에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 5·18민주화운동 관련 지식IN 질문 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답변에 지만원씨의 주장을 인용해 '북한군 침투설'을 주장하는 글들에 시정요구를 결정했다.

시정요구 대상이 된 게시물은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침투해 일어난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포털 카페 및 블로그 게시물, 네이버 지식IN 답변글, 유튜브 영상 등이다.

문제가 된 내용은 “북한 공작원들로 추정되는 괴한들이 전남 광주의 동네 양아치들을 꼬드겨 무기를 쥐여 주고 4시간 만에 전남 지방의 38개소의 무기고를 털고 자동차 공장을 턴 사건” “북한 방송으로 지령을 받아 광주사태를 주동했다” “전두환 관련 유언비어들은 북한의 대남공작기관이 만들어 북한 방송으로 간첩들과 종북세력에게 전달된 것들” “이 무기고 탈취과정은 5·18에 간첩이 개입했다는 심증을 갖게 하는 데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 중 하나가 될 것” 등이다. 

‘불법정보’ 규정되면서 의견진술 생략 논쟁

과거 이뤄진 유해정보 심의는 유해 정도의 기준이 위원마다 다르기에 비교적 신중한 논의가 이뤄졌다. 반면 불법정보의 경우 정보의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다보니 비교적 많은 양을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 

‘5·18 북한군 침투설’ 심의도 적용 기준이 전과는 달라지면서 당사자 ‘의견진술’ 기회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의견진술은 시정요구시 당사자 또는 대리인에게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는 절차다. 지난달 20일 방통심의위 통신소위 회의록에 다르면 사무처에서 심의위원들에게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할 것인지 요청하자 의견이 갈렸다. 

당시 심의위원 4인(야당 추천 황성욱 소위원장·김우석 위원, 정부·여당 추천 이광복 상임위원·옥시찬 위원)은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정부·여당 추천 김유진 위원은 반대 의견을 냈다.

▲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한 시민을 연행해 탱크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다. ⓒ연합뉴스
▲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한 시민을 연행해 탱크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다. ⓒ연합뉴스

김유진 위원은 “법률 위반 사항이기 때문에 의견진술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밝히면서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김우석 위원은 “입법부에서 특별법으로 만든 것을 당연히 존중하고 따라야 하니 시정요구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단 규정과 법이라고 하는 근거 조항이 달라졌다고 해도 마지막 진술권까지 박탈해서 되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황성욱 소위원장은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적용) 첫 사례라서 구체적 적용을 우리가 앞으로 해 나가야 해서 의견진술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광복 위원과 옥시찬 위원도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김유진 위원은 방통심의위가 ‘마약류 매매’ ‘불법 의료기기 광고·매매’ ‘국가보안법’ ‘테러방지법’ 등 법을 위반한 정보의 경우 의견진술 절차를 거치지 않는 점을 언급한 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의 경우 의견진술을 받는다고 하면 어떤 차별성이 있어서 이것만 의견진술을 받는 것인지 의견을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이어 김유진 위원은 “테러방지법과 관련한 정보들이 사실 굳이 삭제까지 해야 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 싶은 것들이 간혹 있었다. 그런데 이후 제가 만약 그런 것들에 대해 ‘의견진술을 들어보자’는 식으로 가도 무방한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논의가 이어졌으나 위원 다수의 동의로 의견진술 절차를 거쳤다.

“중대한 해악 끼치지 않는데 과도하다” 지적도

심의 결과와 관련 17일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미디어오늘에 “불법정보라 해도 내용이 중대하고 명백한 피싱 정보라든지 재산권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불법성이 명백한 정보에만 심의가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며 “역사왜곡이 법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고 급박하고 중대한 해악을 끼치는 정보는 아니라서 행정기관이 검열할 대상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손지원 변호사는“명예훼손 정보도 불법정보이지만 고도의 법률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불법정보라 해도 이 같은 정보를 방통심의위가 심의하는 점이 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앞서 오픈넷은 5·18 역사왜곡처벌법 논의 국면에서 “국가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이를 부인하는 표현행위를 형사 처벌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는 수단으로써 재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손지원 변호사는 “국가가 역사나 사상에 대해 진실을 정해 이와 어긋나는 표현을 허위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유족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선동하는 내용이라면 어느 정도 금지할 필요성이 있지만, 단순히 5·18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왜곡한다는 이유만으로 표현을 함부로 금지하는 건 반민주적인 성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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