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선거전 도중에 칩거에 들어갔던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후보가 닷새만에 등장해 일정을 재개했다. 그동안 일정을 중단한 이유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멀게 느껴졌는데, 그 근본요인은 불평등한 사회를 못막은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남탓하지 않겠다고 반성했다.

심상정 후보는 17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지난 며칠 동안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정말 죄송하다”며 “저로 인해 일정 차질을 빚은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선거 중단의 이유를 두고 심 후보는 “제가 선거운동 일정을 중단한 것은 단지 지지율 때문은 아니었다”며 “선거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저와 정의당이 맞잡아야 할 시민들의 마음이 아득히 멀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그는 일정을 중단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변해야 하는지 성찰한 결과, 자신이 약속한 ‘노동이 당당한 나라’, ‘정의로운 복지국가’는커녕 불평등 심화, 시민들의 삶의 악화를 막지 못했다는 결론을 냈다.

심 후보는 “남 탓하지 않겠다. 거대양당의 횡포 때문이라고, 당이 작아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겠다.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겠다”고 반성했다. 특히 그는 “저 심상정은 불평등의 사회를 만들어온 정치의 일부”라며 “무한 책임을 느낀다. 많은 성원을 해주신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서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선거제도 개혁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가치와 원칙이 크게 흔들린 점을 들어 심 후보는 “뼈아픈 저의 오판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한다”며 “상처 입거나 실망한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거듭 머리를 숙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심상정 정의당 대통령후보가 17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심 후보는 그럼에도 깊어가는 불평등과 공고화한 기득권의 현실 앞에 약자의 삶을 지키기 위한 정의당의 역할은 더 질실해졌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심 후보는 △상황이 어렵다고 남 탓하지 않고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으며 △손해 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어려워도 피해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그는 이번 대선을 두고 △노동이 사라지고 △여성이 공격받고 △기후위기가 외면되고 있는 대선이라며 “심상정의 마이크로 녹색과 여성과 노동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진보의 성역처럼 금기시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공론화를 시작하겠다며 “금기를 금기시해서 낡은 진보의 과감한 혁신을 이뤄가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문 발표후 ‘진보가 금기해온 분야가 무엇이냐’는 기자 질의에 심 후보는 “진보에도 기득권이 있다”며 “정년 연장 문제,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 연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공론화, 연금개혁에 대한 논의”라고 거론했다.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입장을 묻자 심 후보는 “선거제도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진보의 큰 원칙과 가치만 흔들리는 결과가 됨으로써 진보정치를 성원하고 또 진보정치가 성장하기를 바랐던 많은 분들이 실망했다”며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서 이분들의 마음과 믿음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답했다.

진보후보 단일화 무산과 관련해 심 후보는 “진보 단일화는 당 주도로 그동안에 추진돼 왔고 또 일단락이 됐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그러나 지금 불평등과 기후위기 그리고 차별에 맞서 온 그런 진보 시민 재세력 간의 선거연대를 가능한 한 최선의 방법을 도모해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윤석열 두 양당후보만이 TV토론을 하겠다고 합의한 것을 두고 심 후보는 “학교에서 키 작다고 시험장에서 내쫓는 것과 뭐가 다르느냐”며 “저는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다원주의 다양성 말살한 민주주의 폭거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심 후보는 “두 후보가 공정을 말하고 있는데, 이런 TV토론이 이뤄진다면 공정을 말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며 “원래 토론은 방송사가 주최하는 것이지, 토론자 두 사람이 담합해서 하는 게 아니다. 양당 합의대로 진행된다면 선거운동 담합”이라고 맹비난했다.

현재 정의당이 이렇게 된 근본원인을 묻자 심 후보는 “진보정당의 오늘의 모습에 대해 시민의 실망이 크다”며 “심상정 후보를 봐도 불평등 이렇게 심화되고, 시민 삶 어려운데, 과연 진보정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하고 있나, 그만큼 절실한가, 그런 점에서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고 반성했다. 그는 “진보정치가 그동안 천명해온 가치와 원칙 이런 부분에 대해 더 절실하고 분명하고 겸손하게 임할 생각”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사라진 의제들이, 사라진 사람들이 곧 시대정신이라고 보고, 불평등과 차별과 기후위기 등의 목소리를 최대한 키워내는 게 저의 소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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