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일 것이다. 

1995년 ‘환상의 빛’으로 데뷔한 이래 ‘원더풀 라이프’, ‘디스턴스’, ‘아무도 모른다’ 등 죽음과 상실, 슬픔과 치유를 다뤘고,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등에서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특히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은 가족제도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며 가족을 재해석해 주목을 받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저서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를 펼칠 때 이러한 그의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물론 영화에 대한 내용이 책 후반부에 나오긴 하지만 일단 책을 펴면 미디어, 언론에 대한 그의 철학이 먼저 눈길을 끈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는 고레에다 감독이 오래전부터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써온 글을 지난해 묶어낸 책이다.  

▲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영화감독 말고 TV 연출 일도 했던 고레에다는 미디어에 대한 고민이 깊다. 1999년 11월 작성했던 글에서 그는 “미디어 종사자에게 지금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정의감이 아니라 그들의 태도 속에서 스스로를 보려는 자세일 것”(49쪽)이라며 ‘대체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미디어는 사회 현상을 담아 전달한다. 감동적인 이야기도 전달하지만 사회문제를 발견해 비판적인 시선에서 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레에다는 “영상 제작자(전달자)는 시청자에게 그런 사유를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거울을 앞두고 철저하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며 “교단도, 미디어도, 사회도, 감동보다 사유를 추구하는 냉철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개혁도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20년이 훌쩍 넘은 일본 감독의 글이지만 2022년 현재 한국 미디어 종사자에게 교훈을 주는 대목이다. 미디어는 자신들 역시 견제와 감시 대상이란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마치 유체이탈한 듯이 사회 곳곳을 비판한다. 비판 기사나 제작물을 만들면서 그 잣대를 자신들에게 적용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언론이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미디어 밖 사회의 문제점을 미디어에 담아 전달해, 분노를 이끌어내면 마치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만족감에 취하기 마련인데 고레에다는 이를 비판한다. 일본의 신흥 종교집단인 옴진리교는 지하철 사린사건 등 시민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자행했다. 고레에다는 미디어가 경찰·행정과 손잡고 지역주민들의 불안을 부채질하며 ‘공안의 홍보물’로 변했다고 꼬집었다. 중요한 건 옴진리교를 낳은 일본사회를 돌아보며 미디어는 옴진리교와 다르지 않은지 반성하는 자세라는 지적이다. 

▲ JTBC '방구석 1열'에 출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JTBC '방구석 1열'에 출연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또 다른 언론개혁의 주제를 고레에다가 2003년 작성한 다른 글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레에다는 “시청자로서 TV 뉴스를 보며 가장 화나는 건 정치인을 취재하는 기자의 저자세”라며 “이시하라 신타로(일본 우익 보수파 대표 인물) 같은 강압적 인물을 상대할 때면 ‘취재’라기보다 ‘삼가 찾아뵙는’ 태도이고, 도리어 ‘그런 건 이제 그만!’하고 일갈을 들으며 끝난다”(61쪽)고 썼다. 그는 질문도 추궁도 없는 이러한 취재태도를 ‘무른 추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일본은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파병을 결정했는데 일본 언론이 오히려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일본은 평화헌법 이념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도 2003년 외국에서 공격을 받으면 대응방침을 명시한 법안 3개를 통과했다. 고레에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미국지지 결단은 옳다’는 제목의 한 신문사 사설을 거론하며 신문사가 ‘미국을 비판하는 건 국익을 해친다’고 말할 수 있는지 놀랐다. 언론인의 정치권과 결탁, 기자들의 저자세 문제는 일본만의 문제도 아니고 현재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저널리스트가 정치인에게 ‘국익에 반한다’고 비판받는 건 영광이며, 오히려 그것이 본연의 모습”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국익’의 의미에 대해 짚은 대목이 있다. 제국주의로 주변국을 침략했던 일본에게 ‘국익’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바라볼 대상이다. 그는 “영화가 한때 국익과 한 몸이 돼 불행을 초래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과장스럽지만 평상시에도 공권력과 청렴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게 올바른 행동”(32쪽)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인이든 언론인이든 ‘국가’의 이익을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고레에다는 한국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연출 최승호)’을 보고 감동한 동시에 질투했다고 했다. 일본에는 ‘보도의 자유를 권력과 싸워 획득한다’는 인식이 미디어 종사자나 일반 시민에게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대목에선 한국의 언론인들이 다소 박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인상도 받는다. ‘기레기’라며 언론인 집단이 통째로 폄하 당하지만 곳곳에서 자신의 태도를 자신들이 비판하는 잣대로 돌아보는 언론인들이 있어서다. 

책에는 다양한 미디어 관련 이야기나 고레에다를 취재한 기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에피소드가 나온다. 물론 감독으로서 영화 관련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그가 동시대 감독 중 존경하는 이가 한국의 이창동 감독인 이유,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배우 키키 키린을 떠올리며 남긴 글 등이 나온다. 

일본과 한국은 같은 경험을 다른 차원에서 겪어낸 나라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부장제와 권위주의 사회라는 비슷한 사회문화를 공유하는 나라다. 한국인에게 고레에다의 매력은 이러한 ‘비슷한 차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말미에는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진행한 고레에다 감독과 정성일 평론가의 대담이 실려있다.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에 맞서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내놓는 것이라는 고레에다의 영화관, 문화관을 엿볼 수 있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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