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특히 우리의 언론은 ‘새삼스러움’과 ‘만시지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스위스의 휴양도시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포럼(WEF)의 ‘토막중계’에 접하면서 또 다시 우러나는 감회이다.

이른바 다보스 포럼은 오로지 무지개 빛으로만 그려졌던 세계화에 맹공의 목소리들을 울려댄다.
물론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 가운데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맹장들도 끼여있다. 이를테면 이땅에서도 널리 알려진 ‘퀀텀 펀드’의 조지 소로스나 OECD의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 등이 그들이다.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면 그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거나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를 외쳐댄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중인 자본주의나 세계화는 ‘인간의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이라는 풀이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짐짓 말하자면 사뭇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명색 우리의 지도층 인사들, 그리고 명색 여론을 선도한다는 우리의 거대 언론들은 오늘에도 내일에도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는 열창을 되풀이하고 있는 마당이 아닌가.

구태여 ‘짐짓’이라고 말한 까닭은 자명하다.
일찍이 이땅에서도 현재진행중인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맹종에 경종을 울리는 목소리들이 없었던건 아니다. 그러나 그따위 경종은 잠꼬대나 기우가 아니면 색깔론의 눈총을 받는 ‘모기소리’쯤으로 치부되었던게 사실이다. 역시 세계의 거물들이 목청을 높여야만 경종은 경종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거기서 거의 타성으로 굳어져가는 ‘새삼스러움’과 ‘만시지탄’의 감회가 솟아나게 된다.

굳이 ‘이제야’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이땅의 어떤 언론인은 이제 ‘세계화의 덫’을 내걸고 다보스 포럼에 응답한다. 그의 지적 가운데서도 눈과 가슴을 찔러오는 대목은 ‘세계화’가 어떻게 발상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어떻게 표기되었는가의 서술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세계화’는 지난번 대통령의 ‘내일 아침 기자회견용’으로 창안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특수한 ‘세계화’는 어색하게도 ‘segyehwa’로 표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이한 출생경력의 ‘세계화’는 어떤 음색과 어떤 음계의 나팔소리로 울려퍼졌던가.

나는 전혀 그 지나간 날의 언론에 돌팔매를 던지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오늘과 내일에 이어지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시장만능주의의 세계화가 더욱 걱정인 탓이다. 비록 새삼스럽고 만시지탄의 한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땅의 언론은 다보스 포럼의 외침을 새겨듣고 인간을 위한 ‘승리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구태여 윌든 벨로 필리핀대학 교수의 <어두운 승리-신자유주의, 그 파국의 드라마>까지를 들먹일 나위도 없다. “교회는 자본주의의 착취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라는 주어를 ‘언론’으로 바꾸어 듣는 겸허함이 요구된다.

오죽하면 사회주의자일 수 없는 교황이 “인류가 과거의 노예제도와 달리 더욱 미묘하고 새로운 노예제도와 맞닥뜨리고 있다”는 극렬한 표현으로 세계화가 빚어내는 인간의 황폐화를 경고하게 되었을 것인가. ‘새로운 해방신학’의 기지개가 왜 피어나는 것인지를 깊게 새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사람, 조지 소로스의 <세계자본주의의 위기-열린 사회를 위하여>에 담긴, 절박한 메시지도 깊이 음미해주기 바란다. 자본주의의 거장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그는 “시장에 대한 맹신이 자본주의의 재앙을 불러온다”고 외친다. 그는 시장만능주의를 ‘시장근본주의’로 고쳐 부르며, 그것이야말로 열린 사회의 새로운 적이라고 경고한다.

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가 ‘어두운 승리’의 길이며, 열린 사회의 새로운 적인가를 풀어 말할 지면은 없다. 다만 ‘가격’이라고 일컬어야 마땅한 금전적 가치가,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압도하거나 대신하는 사회는, 진정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일 수 없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심지어 교육과 예술, 법과 의술마저 시장가치로만 환산되는 사회라면, 무슨 주의를 들먹이기 이전에 인간이 인간다운 사회일 수 없다.

‘새삼스러움’과 ‘만시지탄’에도 불구하고 다보스 포럼은, 인간이 승리하는 문명의 길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하는 큰 계기가 되어야 한다. 한번 듣고 마는 일과성의 포럼으로 묻혀버려서는 안된다. 특히 언론과 언론인들의 눈뜸이 목말라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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