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미스테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집단은 단연코 정치인이다. 도덕성만 신뢰 못하는 것이 아니다. 능력도 신뢰하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정책 전문성도 없을뿐만 아니라 정무적 판단력조차 낙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술집 테이블 위에 거론되는 모든 정치인은 다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 각 분야의 궁극적인 마지막 단계가 정치인 아닌가? 잘나가는 변호사, 유명한 기자, 능력있는 관료, 존경받는 사업가의 마지막 코스는 정치인 이다. 전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만 통과할 수 있는 모든 관문을 다 통과한 ‘끝판왕’이 정치인이다. 그런 끝판왕이 우리 모두가 무시할만큼 능력 없는 집단이라면 미스테리도 이런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었다. 대부분의 언론이 한 목소리로 지역화폐 발행액은 정부원안 6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여당이 국회 예산안 통과 직후 30조원으로 증가했다고 말했으니 30조원 증가는 팩트가 되어서 언론에 실린다.

▲ 지역화폐 발생량이 정부원안 6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가했다고 표현한 기사.
▲ 지역화폐 발생량이 정부원안 6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가했다고 표현한 기사.

여당이 30조원 발행한다고 하니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총괄본부장은 이를 반대하는 말을 한다. “지역화폐 발행을 위해 책정된 30조원 예산을 삭감하고 코로나19 피해 복구 예산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런데 이는 틀린 말이다. 지역화폐 발행액이 30조원이라는 말은 지역화폐 예산액이 30조원이란 말이 아니다. 지역화폐는 10% 할인된 지역상품권을 자기돈으로 사는 제도다. 즉 10만원짜리 지역상품권을 9만원 주고 살 수 있으니 그 10%인 1만원만 정부 예산이다. 그러니 지역화폐 발행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30조원이 아니라 3조원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자기 돈 9만원을 내고 구입한 10만원짜리 상품권을 국가가 뺏어서 다른 곳에 쓸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부지원 금액은 3조원조차 아니다. 국회 심의과정에서 확정된 내년도 지역화폐를 위한 중앙정부 예산 지출액은 6천억원에 불과하다. 중앙정부가 할인액 4%만 지원하고 지방정부가 6%를 지원하는 구조다. 결국,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라도 구조조정이 가능한 금액은 30조원이 아니라 중앙정부 예산액 6천억원이 전부다.

그런데 더 놀랍게도 중앙정부 예산지원액 6천억원으로 발행가능한 지역화폐 금액은 30조원이 아니라 15조원이다. 15조원의 10%는 1.5조원이다. 이중 중앙정부가 6천억원(4%), 지방정부가 9천억원(6%)을 지원하는 구조다.

결국, 여당은 단돈 6천억원 예산으로 15조원만 발행지원 하면서도 30조원을 발행한다고 ‘뻥튀기’를 했다. 그리고 야당은 불과 6천억원으로 30조원을 발행 지원한다는 뻥튀기를 지적하기는커녕 30조원 ‘예산’을 다른 곳에 쓰자는 ‘슈퍼 뻥튀기’ 로 응수했다(여당은 중앙정부 지원액은 비록 6천억원이지만 지방정부 지원을 통해 30조원을 발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역화폐 지원을 지방정부에 강제할 수는 없다).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2년 예산안 편성 및 추석 민생대책 당정 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22년 예산안 편성 및 추석 민생대책 당정 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능력 끝판왕들의 왕중왕인 여당 원내대표인 윤호중 의원의 황당한 발언도 발언이지만, 이를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야당 원희룡 정책총괄 본부장이 이런 뻥튀기 발언에 낚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야당이 정상적으로 비판한다면 “6천억원으로 15조원만 발행 지원하면서 30조원 발행한다는 말은 뻥튀기다”가 되어야 한다. “예산 30조원을 지역화폐에 쓰는 것은 낭비다”는 말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덤 앤 더머’가 연상되는 논리싸움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미스테리다. 왜 능력 끝판왕이 지역상품권 구조조차 이해하지 못할까? 아니 과연 이해 못한 것이 맞을까? 혹시 이해하지 못한 척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여야가 정 반대의 말로 싸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당은 재정지원을 ‘충분히’ 많이 한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재정지원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둘은 같은 말이다. 재정지원이 많은 것처럼 인식되기를 바라는데는 여야가 같다. 여야의 의도적 정치적 목적에 따라 속는 사람은 언론과 국민일 수도 있다.

▲ 9월1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모란민속 5일장의 한 생선가게에 지역화폐 및 신용카드 사용 가능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 9월14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모란민속 5일장의 한 생선가게에 지역화폐 및 신용카드 사용 가능 안내문이 걸려 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사실은 ‘덤 앤 더머’가 아니라 어쩌면 정치인들은 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 아닐까? 단지 6천억원을 쓰면서 30조원을 발행할 수 있다고 뻥튀기를 하기만 하면 ‘지역사랑 상품권 30조원 발행’이라는 제목이 의심없이 달린다.

그럼 ‘덤 앤 더머’보다 더한 더미스트(dumbest)는 저런 정치인들의 발언을 비판 없이 받아 쓰는 언론 아닐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