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언론인의 통신자료를 수집해 사찰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정보인권 시민단체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가 입장을 내고 정치권에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이하 언론노조 민실위)도 입장을 내고 공수처를 비판했다.

진보넷은 20일 오후 논평을 내고 최근 불거진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 등 언론인 사찰 의혹을 언급하며 “한 두 해 문제가 돼 온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에는 제도 개선을 외면해온 정부와 정치권에 그 책임이 있음이 분명하다”며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통신자료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 남기명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법무부장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이 지난 1월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제막식에서 현판식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 남기명 공수처 설립준비단장(왼쪽부터),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추미애 법무부장관,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초대 처장이 지난 1월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 제막식에서 현판식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통신자료는 이름, ID, 주민등록번호, 이메일주소, 핸드폰 번호 등의 이용자가 누구인지 신상 정보를 알려주는 자료로 수사기관이 법원의 허가를 받지 않고 자료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언론인에 대한 무분별한 통신자료 제공 문제가 불거져 언론·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법적 대응을 한 바 있다.

통신자료는 감청과 달리 통신 내용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특정인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공범 가능성이 있는 통화 상대방의 정보를 파악한다는 명목으로 언론인과 연락이 오고 간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언론인의 취재원 정보를 파악할 수 있고, 역으로 언론인과 통화한 상대방의 통신자료를 조회했을 수도 있어 사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2020년 통신자료 제공 건수는 548만4917건에 달한다. 이와 관련 진보넷은 “1200만 건 제공으로 정점을 찍었던 2014년 이후로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연간 500만건 이상을 기록해 왔다”며 “가입자 정보에 해당하는 통신자료와 같은 메타데이터는 통신내용에 비하여 오랫동안 보호받지 못해 왔다. 그 결과 정보수사기관이 정당한 범죄수사를 넘어 언론인, 정치적 반대자들을 사찰하고 탄압하는 데 통신자료가 오남용되어 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진보넷은 “국민의 정보인권은 현실 정치적인 유불리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며 “국회는 지금이라도 그간 발의된 통신자료 제도 개선 입법안을 적극 검토하고 즉각적인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 지난 9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9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진보넷은 법원 허가 없이 수사기관이 통신자료를 제공 받을 수 있는 점과 당사자 통지 제도가 미비한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보넷은 “가장 큰 문제는 수사기관이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요청하기만 하면 법원의 허가 없이도 통신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이라며 “통신사의 경우 수사기관의 요청에 아무런 저항없이 가입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신원 정보를 제공해왔다. 특히 취재원의 신원을 보호할 필요가 있는 언론인에게 있어 통신자료 제공 제도는 큰 위협이 되며, 궁극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내부 고발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 영장주의 위배, 제도 남용, 통지절차 부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통신자료를 비롯한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집권 당시 시민사회는 법원과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현행 제도가 적절하다는 취지의 결정을 해왔다. 

앞서 지난 16일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논평을 내고 “수사 목적에 따라 일부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저인망식 통신자료 조회는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민실위는 “특히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여러 언론 매체의 법조·정당 출입 기자들과 민간인에 대한 통신자료를 무더기 조회한 것이 그렇다”며 “명확한 조사목적에 대한 설명과 사전 동의 없이 언론의 취재행위를 검열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과거 검찰의 구태를 바로 잡겠다고 만든 공수처가 ‘창조적인 저인망 수사’ 구습에 젖어서야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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