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지난해 여야 합의로 통과된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검열법’이라 몰아세우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일부 커뮤니티 여론에 호응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를 필두로 ‘n번방 방지법’이 커뮤니티, SNS 검열법이란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가 10일 시행된 법안을 두고 “통신의 자유를 심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고 n번방 사건에서 유통경로가 되었던 텔레그램 등에 적용이 어려워 결국 실효성이 떨어지는 조치”라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12일 “‘n번방 방지법’으로 혼란과 반발이 거세다”며 동조했고, 하태경 의원은 13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전검열법 이대로 괜찮은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현재 언급되는 ‘n번방 방지법’은 지난 10일 시행된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말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플랫폼(부가통신사업자)의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의무화한 법안이다. 매출액 10억 원 이상,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 명 이상이거나 2년 이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불법촬영물 등 시정 요구를 받은 부가통신사업자가 대상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과 SNS, 커뮤니티, 인터넷 개인방송 등 87개사가 해당된다.

국민의힘도 동의, 압도적 찬성했는데…돌연 “검열법” 규정

방송통신위원회 시행령에 따라 ‘n번방 방지법’ 대상 사업자는 △불법촬영물(불법 촬영·편집·가공·합성,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유통을 인식한 즉시 삭제·접속차단 △상시적 신고 기능 마련 △불법촬영물 등 해당하는 검색 결과 제한 △불법촬영물 게재 처벌을 미리 고지 △불법촬영물 여부 판단이 어려운 경우 임시 차단·삭제 후 방통심의위에 심의 요청 등을 해야 한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12월4일 오전 부산 수영구 부산시당에서 열린 선거대책회의에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12월4일 오전 부산 수영구 부산시당에서 열린 선거대책회의에 함께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법안은 지난해 5월20일 20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재석 178인 중 170인 찬성,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재석 177인 중 174인 찬성으로 통과됐다. 반대표를 던진 소수 의원 가운데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소속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과거의 국민의힘이 동의하고 합의한 결과로 ‘n번방 방지법’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통과된 법안이 유예기간을 거쳐 시행되기까지 1년7개월이 걸렸다. 그간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국민의힘이 갑자기 이를 ‘검열법’이라며 탄생해선 안 됐을 법안으로 취급하는 게 의아한 이유다.

물론 입장이 바뀔 수는 있다. 실제 법안 개정 이후로 시민사회에선 다방면의 후속 조치나 재개정 요구가 이어져왔다. 방통심의위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불법촬영물은 걸러낼 수 없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필터링 기술 등의 불완전성으로 오류가 발생하면 사업자의 부담 뿐 아니라 이용자의 권리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업계 안팎 우려도 있다.

통신의 자유 측면에서는 사단법인 ‘오픈넷’이 지난 3월 해당 법안들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업자에 의한 ‘사적 감시와 검열’ 강제는 기본권 침해가 크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자보다 사업자를 더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어 책임·형벌의 비례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실효성 논의 전에 정치적 논쟁화…언론도 심층 보도해야”

그러나 이번 국민의힘 주장은 이런 지적들에 대한 숙의로 보기엔 일부 커뮤니티 여론에 호응하는 양상으로 펼쳐졌다. 카카오톡 채팅방에 고양이 동영상을 올리려다 검열 당했다는 커뮤니티글이 올라오자 11일 이준석 대표는 “고양이 짤을 올렸는데 누가 들여다봐야 된다는 것 자체가 검열시도이고 통신의 비밀을 침해하는 행위”라 주장했다. 다음날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귀여운 고양이, 사랑하는 가족의 동영상도 검열의 대상이 된다면 그런 나라가 어떻게 자유의 나라겠나”라며 “검열의 공포”를 운운했다. 이런 주장이 기사화되면서 ‘고양이도 검열한다’는 주장이 확산된 것이다.

▲'n번방 방지법'에 따른 특정정보 필터링 작동 체계(왼쪽)와, 최근 온라인에서 '고양이 동영상 검열'이라면서 논란을 부른 이미지. 자료=방송통신위원회
▲'n번방 방지법'에 따른 특정정보 필터링 작동 체계(왼쪽)와, 최근 온라인에서 '고양이 동영상 검열'이라면서 논란을 부른 이미지. 자료=방송통신위원회

이 ‘고양이 검열’은 과장·오도된 부분이 많다. 카카오톡에서 불법촬영물 필터링은 일반채팅이 아닌 오픈채팅에만 적용된다. 윤 후보 등이 검열 대상이 될 것처럼 표현한 고양이 동영상은 어떤 채팅방에서든 문제 없이 공유될 수 있다. 필터링 절차 또한 영상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플랫폼에 게시되는 영상의 특징값(DNA)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관리하는 불법촬영물 DNA와 일치하는 경우 불법촬영물로 식별돼 게재가 제한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준석 대표가 ‘사적 검열’을 이유로 법안을 비판하면서 ‘텔레그램에 적용되지 않는’ 한계를 지적한 것도 사실관계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통위는 13일 “인터넷사업자의 사적 검열 우려를 피하기 위해 전기통신사업법상 기술적·관리적 조치는 ‘일반에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에만 적용된다”며 “(텔레그램은) 해외사업자라서 적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적 대화방에 해당해 적용되지 않는 것”이라 밝혔다.

이에 ‘n번방 방지법’ 재논의를 촉구해온 국회의원들도 국민의힘을 비판하고 있다. 8일 지난 법안 제정의 한계를 논한 토론회를 주최했던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3일 “성착취 불법촬영물 유포를 막을 어떠한 대안도 말하지 못하면서 어렵게 시행된 불법촬영물 필터링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행동으로 갈등의 정치를 조장하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를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토론회를 함께 주최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12일 “정당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다면 법 시행 첫날부터 자당이 합의한 법안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물어뜯을 수 없다”며 “필요한 것은 무책임한 선동정치가 아니라 책임감 있는 숙의정치”라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지난해 11월26일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관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지난해 11월26일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서초동 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13일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모니터링 해보니까 (검열 여부를) 테스트하는 대화방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여성들을 성적 대상화한 이미지를 유포하고 공유하고 희희덕대면서 이거는 왜 검열 안 되냐, 이거는 왜 되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사실상 2차가해가 조장된 분위기를 꼬집었다.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위해 오히려 법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전했다.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에 참여한 조은호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미디어오늘에 “최근 불거진 논의에는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의무,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내용이 빠져있다”며 “이 법이 피해자의 일상회복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개정해야 실효성이 있을지를 확인하거나 논의하기도 전에 구체화되지 않은 가능성과 몇몇 사례만을 토대로 정치적 논쟁화하는 것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위한 대안이자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마련한 법령을 정치적 논쟁을 위해 소모한다는 느낌이 든다”고 우려했다. 

언론이 국민의힘발로 정쟁화된 ‘n번방 방지법’을 대선 공방 이슈로만 전해선 안 된다는 당부도 이어졌다. 조 변호사는 “언론도 이 법령이 디지털 성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과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워하는 시민들의 안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더 심층적으로 보도하면 좋을 것 같다”며 “디지털 성폭력은 성별, 연령,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시민의 일상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이다. 화장실에서 지하철에서 집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와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전체 시민의 문제로 이 사안을 접근하면 좋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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