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톰 로젠스틸 미국언론연구소장을 만난 적 있었다. 그 당시에도 언론은 무너지고 있는 광고 시장을 억지로 유지하려 영혼을 팔았고, 정파성에 물들어있었다. 이에 대해 로젠스틸이 했던 말이 아직 기억에 남는다. “대중이 저널리즘을 신뢰하도록 만들기 위한 방법은 언론이 세운 규범 말고는 없다.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또는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저널리즘 규범을 포기하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이 저널리즘이라는 직업을 망치는 행위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의 네 번째 개정판이 올 7월 미국에서 발간됐다. 2001년 초판이 나온 지는 20년, 2014년 세 번째 개정판 나온 지는 꼭 7년 만이다. 개정판에는 7년간 저널리즘이 마주한 위기와 환경 변화가 담겨있다. 이 책이 설명하는 큰 흐름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독재적 정치인들의 언론 자유 위협, 둘째는 플랫폼 기업들이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향, 셋째는 사회의 양극화와 의식의 극단화 추세다.

▲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네 번째 개정판
▲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 네 번째 개정판

첫 번째 흐름인 ‘독재적 정치인들의 언론 자유 위협’은 두 언론인이 이번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맥락과 동일하다. 상을 받은 마리아 레사와 드미트리 무라토프 모두 언론 자유를 위해 독재자에 맞섰던 언론인이었다. 책에 따르면, 이제 독재 권력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언론을 대체해버린다. 유사 웹사이트를 만들어 사이비 저널리즘을 공급하거나 동영상 보도 자료를 제작·배포하거나, 기자에게 금전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이다. 이렇게 언론을 대체할 다양한 도구를 통해 독재 권력은 ‘언론이 생산한 정보는 가짜뉴스’, ‘기자는 시민의 적’이란 낙인을 언론에 찍는다.

두 저자는 플랫폼 기업들이 민주주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경향을 두 번째 변화 흐름이라 짚는다. 책에 따르면, 플랫폼 기업들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디지털 생태계를 장악하며 사람들을 끊임없이 소집단으로 쪼갠다. 이는 광고를 팔기 위한 표적 마케팅의 일환이다.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선정적이고 감정을 자극하는 정보들은 또 다른 문제다. 이렇게 플랫폼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 여러 문제를 외면하면서, 공중은 분열되고 공론장이 사라지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플랫폼의 이기주의가 결국 민주주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세 번째 흐름은 사회 양극화, 의식의 극단화 추세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 대통령 영향으로 인종과 성별, 진보와 보수, 부자와 가난한 사람, 늙은이와 젊은이 등으로 사회가 양극화하고 분열하는 중이다. 이 상황에 두 저자가 강조하는 건 ‘공공 포럼’을 만들어내는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저널리즘과 민주주의 미래를 위협하는 양극화 과정에 암묵적으로 참여해왔음을 인정하고,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것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널리즘이 마주한 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들은 위기에 빠진 분야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제는 “그 분야를 초기부터 이끌어왔던 근본적 가치들을 기억해 내는 일”이라 말한다. 저널리즘의 첫 번째 의무는 ‘진실’이며 저널리즘이 가장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시민들이라는 기본 원칙을 세우는 일 말이다.

▲ 톰 로젠스틸.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 톰 로젠스틸. 사진=한국언론진흥재단 제공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지적한 저널리즘의 위기는 한국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변화한 환경에서 한국 언론의 자유 또한 쉽게 위협받을 수 있으며 플랫폼의 ‘필터버블’과 선정적 정보 유통은 현재 진행 중인 문제다. 정치 갈등과 세대 갈등, 젠더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언론이 이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 언론에도 ‘저널리즘 기본 원칙’이라는 처방이 필요하다.

‘저널리즘 기본 원칙’ 네 번째 개정판의 번역본이 12월10일에 나올 예정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01년 초판부터 이번 4판까지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한국어판 저작권을 확보해 언론계에 이 책을 보급해왔다. 3판에 이어 4판도 이재경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가 번역했다. 이 책이 우리가 물려받은 이 저널리즘이라는 직업을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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