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교양과 예능은 물론 막강한 취재력의 뉴스로 무장한 종합편성방송”(조선일보 1면)
“종편 개국으로 젊은층에게 꿈의 일자리로 불리는 방송 및 언론 관련 일자리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중앙일보 1면)
“정권에 따라 편파 보도 논란을 불렀던 TV 뉴스 분야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동아일보 사설) 

▲2011년 12월1일자 조선 중앙 동아 매경 1면. 디자인=안혜나 기자.
▲2011년 12월1일자 조선 중앙 동아 매경 1면. 디자인=안혜나 기자.

10년 전 오늘, 종합편성채널 개국에 맞춘 조중동 지면은 자사 홍보로 가득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 하단에 ‘종편 개국 항의’ 백지 광고를 냈다. 이명박정부는 그해 공영방송 장악과 더불어 종편을 통한 ‘친정권 방송’ 체제를 완성했다. 겉으로는 ‘글로벌미디어’양성을 떠들었지만, 실제로는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종편을 통해 ‘눈엣가시’ 같은 공영방송의 여론선점능력을 낮춰놓겠다는 의도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중간광고 허용, 광고시간 확대, 직접광고 영업, 황금 채널 부여, 방송통신발전기금 유예 등 각종 특혜를 안겼다. 그 결과물은 개국 첫날 TV조선 박근혜 인터뷰에서 등장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였다. 종편 등장 이후 10년은 그야말로 ‘TV전쟁’이었다. 남긴 것은 무엇일까. 

▲2011년 12월1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2011년 12월1일자 TV조선 보도화면 갈무리. 

첫째. 종편은 지상파 시청자를 가져갔다. 2012년 지상파채널 프라임시간대 시청률(19시~23시, 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방송 가구 기준)은 그해 양대 공영방송의 공정방송을 위한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46.6%, 유료방송 14.6%, 종합편성채널 2.5%로 나타났다. 하지만 5년 뒤인 2017년 지상파는 35.9%로 떨어진 반면 종편은 8.2%로 3배 이상 끌어올렸다. 2020년에는 지상파 28.4%, 종편 10%를 나타내며 비지상파채널이 지상파채널 시청률을 넘어선 첫해가 되었다. 

종편은 지상파의 중장년층 시청자 공략을 위해 쉼 없이 지상파 출신 인재 영입을 이어갔다. 개국 초반에는 MBC 예능 PD들의 JTBC 이직이 눈에 띄었다. 채널A의 경우 이영돈 PD를 제작본부장으로 영입하며 ‘먹거리X파일’ 등이 흥행하기도 했다. TV조선은 MBC 출신 송창의 PD를 제작본부장으로 영입하는가 하면, 2018년에는 서혜진 SBS PD를 영입한 뒤 예능에서 큰 성과를 냈다. MBN은 2015년 김주하 앵커를 영입해 현재까지 메인뉴스 앵커를 맡기고 있다. 

▲닐슨코리아 지상파, 유료방송, 종합편성채널 프라임시간대 시청률 추이. 디자인=안혜나 기자.
▲닐슨코리아 지상파, 유료방송, 종합편성채널 프라임시간대 시청률 추이. 디자인=안혜나 기자.

둘째. 종편은 모두 생존했다. 2011년 12월 개국 첫 한 달 간 채널시청률은 JTBC 0.528%, MBN 0.383%, 채널A 0.375%, TV조선 0.339%(AGB닐슨,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였다. 당시 조선일보마저 4개 종편 승인은 광고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미디어업계에선 최소 1~2곳은 5년 내 폐업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전망은 전망으로 그쳤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종편이) 자유는 케이블처럼 누리고 특권은 지상파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가져갔다. 정치와의 결탁에 의한 특권 확보, 정치의 오락화 및 방송의 정파화를 통한 시장 분할, 그로부터 얻어낸 신문-방송 시너지 영향력 등을 통해 상업적으로 생존할 기반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일부 종편은 ‘보수편향 뉴스만을 할 것’이란 전망에 ‘반례’를 만들어내며 생존을 모색했다. 가장 강력한 반례를 만들어낸 건 손석희였다. 그가 2013년 5월 JTBC 보도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JTBC는 ‘합리적 진보’의 노선을 달렸다. 손석희는 자신의 책 ‘장면들’에서 “평자들은 내가 기득권 언론에 복무하게 될 것이라는 논지로 나를 공격했지만, 나는 ‘내가 실천할 저널리즘’을 방패로 그 공격을 견뎌냈다”고 했으며 “내가 그 ‘장사’의 ‘도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도구’였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2013년 채널A가 1980년 5‧18 광주 남파 북한군 최초 인터뷰로 허위정보를 유포하며 소모적인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뒤, 해당 허위정보를 바로 잡은 건 2021년 JTBC였다. 

▲2016년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2016년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셋째. 종편 이후 뉴스의 영향력은 분산됐다. JTBC는 2014년부터 △아젠다키핑 △팩트체크 △앵커브리핑으로 뉴스 트랜드를 바꾸고 삼성의 노조 무력화, 세월호 참사, 국정원 대선 개입 등을 꾸준히 보도하며 ‘비공식 공영방송’의 역할을 했다. “조중동 종편채널은 정부권력과 뿌리를 나누며 진실을 외면하고, 1% 특권층만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전국언론노동조합 2011년 12월1일 투쟁선언문)이란 전망은 지상파에도 대입 가능했다. 2014년 KBS 양대노조 파업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장의 ‘뉴스룸’ 출연은 JTBC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시청자들은 지상파의 공정보도가 무너진 상황에서 “지상파도, 종편도 아닌”(손석희) JTBC에 기댔다. 

2016년 10월 국정농단사태의 스모킹건이 된 ‘최순실 태블릿PC’ 특종을 내놓으며 JTBC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압도적인 신뢰도‧영향력을 유지했다. 이는 종편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서사로 남았다. TV조선은 JTBC 특종 다음날 ‘최순실 의상실 영상’을 보도하며 탄핵보도 국면에 동참하기도 했다. 10년 전 지상파3사 중심의 방송뉴스 의제선점 능력은 9개사 메인뉴스로 분산되었다. 지난 9월 한 달 기준 메인뉴스 시청자수(닐슨코리아, 수도권 전 연령대 기준)에서 지상파3사는 211만 명, 종편4사는 105만7000여명을 나타내 지상파의 2분의1 수준을 보였다. 10년 전 종편 반대 투쟁에 나섰던 한 언론학자는 “10년간 뉴스 지형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면서 “레거시 미디어에서 보수의 목소리는 확실히 늘어났다. 유튜브에서의 주장이 종편의 중계 보도를 통해 확대되는 경향도 있다”고 평가했다.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

넷째. 종편과 지상파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일단 IPTV 등 유료방송 가입가구가 늘면서 종편에 대한 접근성이 지상파 수준이고, 무엇보다 개국 초반 ‘종편은 드라마와 예능으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깨졌다. ‘스카이캐슬’ ‘이태원클라쓰’ 등을 흥행시킨 JTBC는 ‘부부의 세계’로 지난해 최고시청률 28.4%를 기록했다. 작품성도 놓치지 않고 있다. JTBC ‘눈이 부시게’ 주연 김혜자는 2019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았다.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지난해 3월 35.7%라는 시청률 신기록을 세웠고, 올해 3월 ‘미스트롯2’ 최종회 시청률도 35.2%를 기록하며 방송가의 트로트 열풍을 주도했다. 한 지상파 고위관계자는 “10년을 거치며 드라마‧예능에선 우열이 없는 정도”라고 평가했다. 낮 시간대 시사프로그램은 여전히 문제로 지적받고 있지만 ‘5대 얼짱 여성 정치인’을 주제로 외모 품평을 진행해 법정제재를 받았던 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2013) 따위 방송을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호통 진행으로 전시분위기를 연출하며 ‘한국의 폭스뉴스’를 꿈꿨던 엄성섭 TV조선 앵커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방송에서 하차했다. 

무엇보다 10년 전 지상파와 종편이 예상하지 못했던 넷플릭스‧유튜브 등 OTT의 등장은 이들을 ‘레거시’라는 한 덩어리로 묶어버렸다. 이제 유사한 시청층을 갖고 있는 지상파와 종편은 함께 늙어가고 있다. 한 시청률조사기관 관계자는 “10대 이하가 실시간 TV를 안 본다. 장기적으로 TV산업의 위기”라고 전한 뒤 “고령화라는 인구구조 변화 속 TV 사이즈가 달라졌고, OTT의 등장으로 젊은 층의 배반과 노년층의 충성도가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와 종편은 실시간TV 시청률을 놓고 경쟁하는 것을 넘어 시공간에서 자유롭고, 편성이라는 틀을 벗어난 OTT에게 플랫폼 자체를 내어줄 위기에 처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방통위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방통위

다섯째. 종편은 퇴출되지 않는다. “조‧중‧동‧매‧연을 폐기 처분하기 위한 1차 작업으로 모니터 감시를 시작하고, 2차 작업으로 종편채널에 대한 특혜를 제도적으로 금지시킨 뒤, 정권교체 후 1년 내에 날치기 언론법을 원천 무효화시켜 궁극적으로 종편채널을 제거할 것”(2011년 11월29일 박석운 민언련 대표)이라고 했던 그 시나리오는 현실로 등장하지 않았다. MBN이 종편 출범 당시 투자자본금 556억 원을 편법 충당하고 수년간 회계 조작을 벌이고 은폐한 사실이 드러났다. 명백한 방송법 18조 위반으로, 승인 취소도 가능했으나 방통위는 고심 끝에 6개월 영업정지 처분했다. MBN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결론은 대선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방통위 상임위원들 전원은 MBN에 ‘조건부 3년 재승인’을 결정, 17개 조건을 부여하기도 했다.

TV조선의 경우 ‘오보·막말 편파방송에 따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법정 제재를 매년 5건 이하로 유지하라’는 재승인 조건 위반을 회피하고자 ‘꼼수 소송’에 나선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이 없다. 이런 탓에 재승인제도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는 “종편을 재승인할 것이냐 말 것이냐라는 문제로 규율하는 게 아니라 강력한 경제적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불공정행위를 명확히 하는 질서와 규율을 설치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상당한 벌금을 부과하는 게 차라리 낫다. 규제기관의 실효성 없는 ‘재승인’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적 유불리에 의해 비즈니스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질서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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