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이윤율의 전반적인 하락 국면 속에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일련의 정책조합으로 구성됐다.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신자유주의는 첫째 국제적으로는 글로벌 공급망, 글로벌 가치사슬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확대 둘째, 국내적으로는 비정규직, 외주, 하청 등 노동 유연화 셋째, 글로벌 금융 체계의 확장과 금융개방 넷째, 공공부문 민영화와 사회복지의 시장화로 요약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시장 자유주의나 주주 친화 정책이 아니라 세계화와 자유무역, 노동 유연화의 확대 등 노동 착취도의 증가와 금융화, 민영화 등 수탈의 확대를 통해 독점자본 및 (독점자본과 은행자본의 융합인) 금융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책전략이다.

그런데,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인 Ford와 GM이 반도체 칩을 직접 생산한다는 소식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역전되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가 과도하게 확장된 글로벌 공급망을 강타하고 반도체 칩과 같은 중요 원자재의 재고가 부족해짐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아니라 기업 내에서 생산을 통합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외부 충격과 업계 내 치열한 경쟁이 결합하여 이들 거대 기업은 지원을 위해 국가 정부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 화웨이와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국가 안보 문제로 제기했지만, 미국 기업의 시장 지위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인식된다. 미국은 반도체 부족을 막기 위해서라며 미국 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에 재고와 주문, 판매 등에 관한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겠다는 방침인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기업의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 마이크로칩, 반도체. 사진=gettyimagesbank
▲ 마이크로칩, 반도체. 사진=gettyimagesbank

이처럼 자유 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난 2년 동안 보아온 종류의 충격에 노출된 글로벌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주요 제조업체는 공급 확보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고,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국에서도 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리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의 충격(코로나19, 비축 및 전략적 구매, 기후 위기)은 앞으로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커 정부의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신자유주의와 국가, 국가독점자본주의

반도체 칩뿐만 아니라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대응에서 국가의 전반적인 산업개입, 시장개입이 확대하면서 소위 ‘국가의 귀환’ 또는 ‘케인스주의의 복귀’를 얘기하기도 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국가개입은 오바마 민주당 정부로의 교체와 맞물려 언론에서도, 학계에서도 케인스주의의 복귀로 이해되거나 그런 전망이 쏟아졌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어져 온 조치이지만) 바이든 민주당 정부로의 정권교체와 함께 국가의 시장개입이 확대하자 케인스주의의 복귀, 국가의 귀환이 다시 얘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내외 수준에서 노동 착취도 강화와 금융 수탈은 물론이고 민영화와 같은 국민적 자원에 대한 수탈을 통해서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윤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만큼 반동적인 성격이 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1990년대 후반 이래로 지속적인 저항에 부닥쳐 왔고, 노동 유연화의 확대로 각국 노동자들의 저항도 거세게 일어났다. 금융위기 이후로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같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금융화, 금융자본에 대한 반대도 물결을 이룬 가운데,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한 민영화 반대투쟁도 지구 곳곳에서 조직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저항과 여러 경제적 사회적 위기 속에서도 세계 경제질서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자본의 새로운 축적조건을 마련하기보다는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산업 순환의 고리와 파고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중국 등 신흥국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생산성도 지속해서 감소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생산성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했고, 금융팽창을 통해 부채 주도 성장만을 구가한 채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사실상 파산을 선고했다. 또한 현재의 공급망 조정, 자유무역의 퇴조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후퇴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고 부활했는데, 그것도 다름 아닌 국가에 의해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대응은 거의 동일했다. 중앙정부의 재정투입과,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및 유동성 공급으로 거시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촉진하면서 유가증권 매입 및 보증 등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고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방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 주식을 인수해 국유화하거나(2008년 금융위기), 국유화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구제금융을 지원했다(코로나19 위기).

▲ 2008년 9월 미국계 대형투자은행(IB)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메릴린치의 전격적인 매각 등 미국 금융시장이 위기에 휩싸이면서 국내 증권시장이 동반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진 가운데 9월16일 금융위로부터 영업정지 통보를 받은 소공동 리먼브러더스 뱅크하우스 서울지점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 2008년 9월 미국계 대형투자은행(IB)인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메릴린치의 전격적인 매각 등 미국 금융시장이 위기에 휩싸이면서 국내 증권시장이 동반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진 가운데 9월16일 금융위로부터 영업정지 통보를 받은 소공동 리먼브러더스 뱅크하우스 서울지점에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는 한편에서 주기적 과잉공황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위기에 직면한 금융자본을 회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국가개입 프로그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케인스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 실은 신자유주의 재건 프로그램이었다. 케인스주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재정 확대와 경기 부양 정도인데, 이것은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이 없거나 일시적인 형태의 경기 부양, 신자유주의 정부의 위기관리 정책의 성격이 다분히 강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의 귀환’과 같은 오해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의 역할을 오해하거나 보지 못한 문제가 크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국가와 대척점에 있는 시장 자유주의로 오해했거나 그렇게 평가되길 의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업경제에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시장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주의 또는 케인스주의로의 회귀가 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위기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시장 자유주의가 아니다. 특히 국가의 역할에 있어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재정지출을 줄여 시장과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작은 정부론’은 일종의 허구일 뿐이다.

작은 정부론의 대명사인 미국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는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쌍둥이 적자로 정권 내내 허덕였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행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작은 정부라던 공화당 정부에서 재정지출은 민주당 정부 때보다 훨씬 더 늘어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작은 정부론은 시장개입 불가와 재정지출 축소가 목적이 아니라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복지를 시장화하기 위한 근거로만 사용되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적인 시장 자유주의와 달리 국가에 의한 시장질서 회복을 목표로 했다. (특히 독일과 유럽의 질서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본류로 사고된다) 국가가 시장개입을 하지 않거나 방임한 채 시장 자율에 맡긴 것이 아니라, 시장에 질서를 부여하고 유지하는 형태로 개입의 방향을 바꿨다.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급망 구축도 국가주도의 FTA 등 무역 협상에 의해 완성되고 유지되었으며, 국가의 (무역)정책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영역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관련된 영역이다. 그뿐만 아니라 금융 세계화와 금융개방도 각국의 금융정책의 방향과 제도를 확장하고 글로벌 수준에서 일치 시켜 나감으로써 완성됐다. 노동 유연화와 민영화 정책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비정규직화와 외주화 등 노동 유연화는 노동법 개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민영화는 말 그대로 정부의 정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 유연화와 민영화 진행 과정에서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에 대한 국가의 폭력적 진압 없이는 이런 정책들은 불가능했다.

신자유주의 재건과 부활

신자유주의는 독점자본과 (독점과 은행자본이 융합한) 금융자본의 이윤을 배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와 결합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변종일 뿐, 국가독점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자본주의 단계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모두 각국 독점자본의 육성과 지원, 투자 및 이윤 보장 정책이고 국가는 이를 위한 질서유지, 게임 룰 형성 및 위기관리 역할을 하고 있다.

▲ 12월1일 인천공항에서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5천123명으로 집계됐다. 5천 명을 넘긴 것은 처음이다. 최근 남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유럽, 북미 등으로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 감염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복지부와 질병청은 나이지리아 방문 뒤 코로나19에 확진된 인천 거주 부부를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부부는 백신 접종 후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 귀국 후 지난달 25일 검사 결과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연합뉴스
▲ 12월1일 인천공항에서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이날 0시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5천123명으로 집계됐다. 5천 명을 넘긴 것은 처음이다. 최근 남아프리카를 시작으로 유럽, 북미 등으로 코로나19 새 변이인 오미크론 감염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복지부와 질병청은 나이지리아 방문 뒤 코로나19에 확진된 인천 거주 부부를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부부는 백신 접종 후 나이지리아를 방문했다. 귀국 후 지난달 25일 검사 결과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연합뉴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델타 변이나 오미크론 변이처럼 다양한 변이가 발생하지만 본질에서 코로나19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변종이 자본 운동의 방향에 따라 케인스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본질이 국가독점자본주의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델타 변이처럼 세계 경제 질서의 우세 종이 되고 또 약화하더라도 국가 개입주의 또는 국가독점자본주의는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원래 있었다. 그러니 귀환도 복귀도 아니다.

다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후퇴, 공급망 현지화와 관련하여 독점자본의 이윤 보장 체제를 생산의 세계화에서 현지화로 바꾸고, 자유무역에서 지역 간 블록화로 변경하고 있다. 물론 이것도 국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생산체제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생산의 세계화는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비용을 줄이려는 시도로써 국내(domestic)에서 노동 유연화와 목적이 같다. 즉, 세계화는 노동 유연화의 일종이며 노동의 착취도를 증가 시켜 독점자본의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 때문에 세계화의 후퇴와 생산의 현지화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인 생산체제의 목적이 바뀌지 않았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재건 프로그램에 따라 약화한 것이 아니라 더 강화되고 있다. 여러 차례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금융 세계화는 바뀌지 않고 확장했다. 여기서도 금융시장에 대한 국가개입은 더 강화되었고 중앙은행 특히 미국 연준에 대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의존성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고 금융체계나 금융시장의 역할이 변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목적과 역할 그대로 금융자본의 보호와 확대를 위해 기능하고 글로벌 금융 수탈을 강화하고 있다. 다만 전보다 더 강력한 중앙은행의 보호 아래서 기능한다.

노동 유연화와 관련해서도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 긱(gig) 노동 등 더 유연화한 노동 형태가 등장해 확산하고 있고 노동시장의 분절화도 확대하여 노동자와 독립자영업자의 경계에 선 노동도 확산하고 있다. 각국 정부는 이런 노동 형태를 근절시키기보다는 노동조건을 일정하게 정규화하는 것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해 플랫폼 노동의 확산에 기여하고 유지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더불어 한국을 포함하여 미국, 유럽 등 대부분의 선진국 경제에서 국가재건 프로그램은 독점자본의 이윤확보와 그를 위한 시장 확보에 치중해 있다. 반도체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계획과 수천조 원에 달하는 미국의 인프라 투자계획도 그렇고 한국판 뉴딜의 국가투자계획도 모두 재벌과 독점기업의 독점이윤 보장과 시장 확대에 맞춰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 산업 전환 지원 등 재벌과 독점자본의 지원 계획보다 쥐꼬리만 한 공공 지출 확대로 국가의 귀환이나 공공성 확대를 얘기할 일은 아니다. 국가의 귀환, 케인스주의의 복귀를 말하면서 마치 신자유주의의 반동적 성격이 없어졌거나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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