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이 출범 10년을 맞는다. 종편 10년은 미디어 환경 격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예상보다 극심한 편파방송이 사회적 문제가 됐고, 종편 주도의 기만적 협찬 방송은 방송 전반의 상업화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았다. 조중동 보수종편에서 예상과 다른 ‘균열’을 곳곳에서 만들어내는가하면, 예능과 드라마 부문에선 괄목할 만한 콘텐츠를 남겼다. 그러나 특혜를 통한 성장과 편법적 태생 문제는 가릴 수 없는 그늘로 남아 있다. 

반쪽 종편 개국 행사

10년 전인 2011년 12월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종합편성채널 4사 공동 개국 축하쇼에 야당 인사들은 보이지 않아 반쪽 행사가 됐다. 종편에 대한 응원과 격려가 쏟아진 행사장 내부 분위기와 달리 바깥에선 전국언론노조 조합원들이 종편 출범에 반발하는 집회를 열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행사장 안에서 김황식 국무총리는 “오늘은 우리나라 방송사에 또 하나의 이정표가 세워지는 날이다. 종편 채널의 탄생은 양질의 콘텐츠 생산을 가져올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행사장 바깥 집회에 참석한 심상정 새진보통합연대 공동대표는 “종편의 탄생은 수구 보수 세력의 영구집권을 위한 구조조정”이라고 주장했다.

▲ 종편 개국식 당시 행사장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오늘
▲ 종편 개국식 당시 행사장 앞에서 열린 규탄 기자회견. 사진=미디어오늘

종편은 태생부터 ‘편법’과 ‘특혜’ 딱지를 뗄 수 없었다. 날치기 표결 강행과 재투표 논란은 시작에 불과했다. 무리하게 4개 사업자를 선정했고, 대표적인 보수 언론들이 자리를 채웠다. 선정 이후에는 △ 직접 광고영업 △ 10번대 황금채널 배정 △ 의무전송 △ 방발기금 징수 유예 등 온갖 특혜가 주어졌다.

‘종일편파’ 논란, 선 넘다

‘종일편파방송’. 종편에 붙은 별명 가운데 하나였다. ‘종일’은 ‘종합편성’이라는 성격이 무색하게 보도로 편성을 채운 문제를 드러낸다. 미디어오늘이 2013년 1월 21~27일 동안 종편 4사의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분석한 결과 JTBC를 제외한 종편 3사의 보도·시사 편성비율이 60%에 육박할 정도였다. ‘편파방송’도 심각했다. 종편이 개척한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보수성향 패널 일색의 구성과 편향적 이슈 선정으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출범 초기 TV조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낸 사실은 ‘밈’처럼 회자될 정도다.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진행자의 주관적 견해를 쏟아내는 진행이 문제가 돼 방송통신심의 제재(행정지도 포함)를 40건이 넘게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장성민의 시사탱크’와 채널A ‘김광현의 탕탕평평’이 5·18 민주화운동 북한군 침투설을 여과 없이 내보내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도 있다.

▲ TV조선 보도 갈무리
▲ TV조선 보도 갈무리

“‘시사탱크’는 MC 문제 때문에 너무 (심의 안건이) 자주 올라온다. 진행자가 왜 주관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하나.” 박근혜 정부 당시 여권 추천 김성묵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부위원장마저도 이렇게 지적할 정도였다.

손석희 영입과 JTBC 세월호 보도 

손석희가 변할 것인가, 아니면 그가 종편을 바꿔낼 것인가. 손석희 전 MBC 아나운서가 JTBC 보도부문 사장에 영입됐을 때 지배적인 견해는 ‘손석희가 변한다’였다. 하지만 예측은 깨졌다. 오롯이 손석희 개인만의 성과는 아니겠지만, 손석희 사장 영입 이후 JTBC가 전과는 완전히 다른 브랜드를 구축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결정적 계기는 세월호 참사였다. 공영방송이 정권의 압력을 피하지 못하고, 다수 종편이 유병언 일가의 가십 거리에 치중하는 가운데 JTBC는 정부와 해경의 무능을 집중 조명했고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차별성을 보였다. 한국갤럽 ‘즐겨보는 뉴스채널’ 조사에 따르면 2014년도 1분기만 해도 여타 종편과 선호도에 차이가 크지 않던 JTBC는 2015년 1분기 KBS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세월호 보도를 기점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 팽목항에서 뉴스 진행 중인 손석희 사장. JTBC 'NEWS9'갈무리
▲ 팽목항에서 뉴스 진행 중인 손석희 사장. JTBC 'NEWS9'갈무리

특히 JTBC 기자들이 팽목항에서 287일 머물며 세월호 참사 보도를 이어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손석희 사장은 당시 보도를 가리켜 ‘아젠다 키핑’ 사례로 설명하며 “의제를 설정하는 것 못지 않게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만적 광고·협찬 실태 드러낸 ‘MBN X파일’

종편의 문제는 시사·보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적 편향성 문제와 함께 방송 ‘상업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종편식 무리한 광고·협찬 영업의 실상은 ‘MBN X파일 사태’로 수면 위로 드러났다. ‘MBN X파일’은 MBN 미디어렙 영업 1팀의 영업일지를 뜻한다. 영업 1팀이 2014년 12월 1일부터 2015년 1월 20일까지 51일 동안 수행한 영업활동 387건의 기록이 담겨있다. 미주 한인 주간지 선데이저널이 해당 자료를 입수해 보도했다. 

▲ NS홈쇼핑의 한 장면.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 NS홈쇼핑의 한 장면. 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사실상 직접광고영업을 허용 받은 종편은 노골적인 협찬 영업을 했다. 영업일지에는 황당하게도 MBN ‘천기누설’ 영업 내용에 방송과 상관없는 홈쇼핑 판매액이 ‘150% 달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당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모니터 결과 해당 방송이 아로니아를 홍보한 시각, NS홈쇼핑은 "끊임없는 언론의 찬사! MBN ‘천기누설’이 오늘 아로니아의 유용성 집중보도!"라고 홍보하며 판매한 사실을 확인했다. ‘홈쇼핑 연계편성’이라 부르는 행태가 처음으로 드러난 순간이다. 이후 연계편성은 지상파에서도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방통위가 지난 3월 실시한 점검 결과에 따르면 연계편성은 TV조선 139회, MBN 108회, MBC 80회, 채널A 70회, JTBC 64회, SBS 59회 순이다.

시사·보도 영역에서 돈을 받고 홍보를 해주는 행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2014년 12월 2일자 업무일지에는 ‘경제포커스에서 자원외교에 대해 다뤄지며, 한국전력공사 부각시킬 예정’이라고 쓰여 있다. 실제 ‘경제포커스’는 공기업들의 투자실패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도 뜬금 없이 한전에 대해선 성공사례를 다뤘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협찬을 받아 노골적으로 홍보를 하는 행태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시사보도 논조까지 좌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종편식 상업화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박근혜 정부 무너뜨린 보수 종편 

종편이 JTBC와 보수종편 3사로 재편된 가운데 또 다시 ‘균열’이 만들어졌다. 2016년 언론이 최서원씨(최순실)가 비선 실세이며 국정을 농단한 사실을 보도해 탄핵 국면을 만들어냈는데, 종편의 역할이 컸다.

애초 언론의 이목은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서 시작돼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이어지는 부정부패에 집중돼 있었다. 전환점을 마련한 건 TV조선의 보도다. TV조선은 2016년 7월26일 “미르재단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에서 500억 원 가까운 돈을 모았는데,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모금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후 한겨레가 TV조선 보도를 바탕으로 미르·K스포츠재단을 조명하면서 이 재단의 실세가 최순실씨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수세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카드’를 꺼냈지만 JTBC가 최순실씨의 PC를 입수해 보도하며 상황을 반전시켰다.

▲ TV조선의 미르재단 모금의혹 보도
▲ TV조선의 미르재단 모금의혹 보도

박근혜 정부는 JTBC와 TV조선을 불편해 했다. 홍석현 전 중앙일보ㆍJTBC 회장은 재임 중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외압을 받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이진동 뉴스버스 대표(전 TV조선 기자)가 뉴스버스에 쓴 회고 기사에 따르면 방상훈 사장이 “청와대가 기자 8명에 대해 사표를 받으라고 협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TV조선 재승인 탈락 점수 사태

탄핵 국면인 2017년 3월, 종합편성채널 심사 결과를 받아든 TV조선은 ‘충격’에 빠졌다. 650점이 넘어야 승인이 가능한데, 이에 크게 못 미치는 620점대 점수를 받은 것이다. TV조선이 다른 종편보다 노골적으로 편향적 시사 토크를 해오고 관련 제재가 누적된 사실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방통위는 TV조선 승인 거부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각계각층의 비판에도 ‘조건부 재승인’ 결정을 내렸다. 

대신 이때부터 종편은 본격적으로 방통위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당시 오보, 막말, 편파방송이 문제가 됐다는 점을 감안해 종편4사에 관련 심의 제재가 연 5건 이상을 기록할 경우 시정명령을 내리고 반복되면 승인취소까지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장르편성과 적극적 콘텐츠 투자, 막말 패널 퇴출 등을 재승인 조건에 담았다. 

▲ 2017년 3월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재승인 심사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 2017년 3월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위치한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편 재승인 심사를 철저히 할 것을 요구했다.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방통위의 최종 결정을 앞둔 시점에서 TV조선은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당시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새 봄, TV조선이 새로 태어납니다” 기사를 내고 △보도·교양·예능 프로그램 1:1:1로 균형 편성 △예능·교양 등 상반기에만 10개 넘는 프로그램 제작 △출연자 심의제재 1회 받으면 퇴출 등 편파방송 개선을 골자로 하는 쇄신안을 발표했다.

뉴스과잉 TV조선, 예능으로 시청률 싹쓸이

TV조선 개국 이래 최대 위기는 기회가 됐다. 당초 TV조선은 예능 콘텐츠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비용이 적게 드는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재승인 이후 강제적으로 ‘다양한 콘텐츠 편성’과 ‘적극 투자’를 하게 되면서 타의에 의한 개편이 전례 없는 성과로 이어졌다. 

JTBC가 탁월한 보도로 전과 완전히 다른 방송이 됐다면, TV조선은 트로트 예능으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종편 역대 시청률 1~5위를 모두 TV조선의 트로트 프로그램이 차지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은 시청률 35%를 넘겼다.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

종편이 정치사회 뉴스의 중심에 서는 일도 생겼다. 채널A 이동재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 측에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비위를 제보하면 수사에 선처를 해주겠다고 압박하는 과정에서 특정인과 통화 녹취를 들려주며 검찰총장 측근 검사장이라고 소개해 검언유착 의혹이 불거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적극 수사를 주도했고,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를 막아서며 대립했다.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지난 7월16일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기자로서 취재 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면서도 검사 지위를 이용할 수 있다는 명시적·묵시적 언동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무죄’ 판결했다. 판결이 나오자, ‘검언유착’이 아닌 정권과 언론이 공모해 무리하게 프레임을 만들었다며 ‘권언유착’이라는 반발이 나와 대립하는 상황이 됐다. 

MBN 초유의 업무정지 결정

편법적 태생에서 비롯된 문제는 뒤늦게 수면 위로 드러났다. MBN은 2011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선정될 당시 약속한 납입자본금 3950억 원 중 556억 원을 임직원 차명주주를 활용해 회사자금으로 납입하고, 최초승인 시 허위 자료를 제출했다. 2014년, 2017년 재승인 심사에서도 허위 주주명부와 허위 재무제표 등을 제출했다.

이 사실은 MBN 경영진이 관련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 받으면서 드러나게 됐고 공은 방통위로 넘어왔다. 방송법 제18조에 따라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승인 및 재승인을 받은 것'에 해당해 승인 취소가 가능한 사안이었다. 방통위는 업무정지 6개월을 결정했고 MBN은 소송전에 돌입했다.

▲ 나석채 전국언론노동조합 MBN지부장이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그룹 사옥 앞에서 경영진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N지부 제공
▲ 나석채 전국언론노동조합 MBN지부장이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그룹 사옥 앞에서 경영진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N지부 제공

시민단체들은 MBN 업무정지로 종편의 불법적 탄생 과정에 다시 주목했다. 채널A의 경우 동아일보 팀장의 누나가 대표였던 자본금 1억 규모의 기업이 30억 원의 주식을 사 논란이 됐다. TV조선과 수원대의 부당거래 의혹도 있다. 종편 미디어렙사들이 처음 승인 때부터 지분제한 규정을 위반했으나 방통위가 이를 수년 간 몰랐다가 뒤늦게 문제를 시정한 사실은 방통위의 관리감독 기구로서 역할에 의문을 품게 했다.

방통위원장 종편 등록제 발언 파장

“종편·보도채널 등에 대해 허가냐 등록이냐도 검토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2020년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한 이 발언은 적지 않은 파장을 남겼다. 보도 기능을 특정 방송에만 허가하는 현행 방식을 폐지하고 일정한 기준만 갖추면 누구나 종편·보도채널에 진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모습.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모습. 사진=방송통신위원회 제공

등록제 전환을 주장하는 측에선 유튜브를 통해 누구나 뉴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방송만 벽을 세울 필요가 없고 이미 경제채널 등이 편법적 보도를 해온 상황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언급한다. 종편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종편에 쏠린 과도한 영향력을 줄일 수 있는 조치이기도 하다. 반면 보도 기능의 문턱을 낮추면 방송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무너질 수 있고 문제적 방송이 난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오히려 등록제로 바꿀 경우 현재와 같은 제도적 측면의 종편 견제와 규제가 무력화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방통위가 정치적 부담에 재승인 거부를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실효성 있는 심사를 위한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만제 원광대 언론행정학부 교수는 지난해 언론정보학회 학술대회의 방송통신위원회 후원으로 마련된 방송사 재허가·재심사 세션에서 ‘경쟁 평가제’를 제안했다. 한 종편 채널이 재승인을 거부 받게 되면 종편 진출을 원하는 다른 채널들과 경쟁시켜 선정된 매체를 승인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논의가 이뤄지는 가운데 대선을 맞게 됐다. 종편 10년에 대한 평가와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에서 대선 결과는 종편 역사에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만들어 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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