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정치인들의 시사프로그램 출연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정치인 패널의 시사프로그램 출연 보편화로 정치권이 방송사를 스피커로 활용하기 수월한 환경이 됐지만, 이 같은 출연 기회는 소위 ‘거대정당’에 편중되고 있다.

실제 주요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의 정치인 출연 10회 중 8회 이상은 이상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이다. 지난 11월1일부터 29일까지 약 한 달간 정치인이 정기적으로 출연하는 지상파 방송사(KBS·MBC)의 주요 TV 시사·토론프로그램(뉴스 제외), KBS·MBC·CBS·TBS 라디오의 오전·오후 핵심 시간대 시사프로그램 10개를 살펴본 결과 대선 관련해 출연한 정치인 약 83%가 두 정당 소속으로 나타났다.

정치인 출연 횟수는 대선 (예비)후보 또는 캠프 관계자 직함으로 출연하거나, 정당 소속으로서 대선 관련 이슈에 대해 논한 정치인들이 출연한 횟수(총 289회, 동일인 중복 있음)를 기준 삼았다. 분석 대상 프로그램은 △KBS 1TV ‘생방송 심야토론’ ‘더 라이브’, 라디오 ‘열린토론’ ‘최경영의 최강시사’ ‘주진우 라이브’ △MBC TV ‘100분 토론’,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표창원의 뉴스하이킥’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이다.

▲KBS 1TV '더 라이브' 중 '스트릿 여야 파이터' 코너 소개 이미지. 사진='더 라이브' 갈무리
▲KBS 1TV '더 라이브' 중 '스트릿 여야 파이터' 코너 소개 이미지. 사진='더 라이브' 갈무리

출연자들의 소속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정당은 47.4%(137회)에 달하는 국민의힘이다. 이달 5일까지 진행된 대선 예비후보 경선 및 윤석열 후보 선대위 구성 등의 일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이재명 후보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의 출연도 전체의 35.6%(103회)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정의당 소속 출연은 5.8%(17회), 열린민주당 소속은 4.8%(14회), 국민의당 소속은 3.8%(11회)에 그쳤다. 2.0%(6회)에 해당하는 무소속은 ‘새로운물결’ 창당을 앞둔 김동연 후보 측으로 나타났다. 그 외 정당으로는 허경영 후보가 한차례 출연한 국가혁명당(0.3%)이 유일하다.

양당에 편중된 출연진 구성은 고정 패널이 있는 코너에서 더 두드러졌다.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의 ‘최고의 정치’는 진성준 민주당 의원,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의 고정 코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중 ‘뉴스닥’은 현근택 전 민주당 대변인과 김근식 전 국민의힘 비전전략실장, ‘말.말.말’은 박성준 민주당 의원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이 출연 중이다. KBS 1TV ‘더 라이브’의 경우 ‘스트릿 여야 파이터’ 코너를 민주당과 국민의힘 2:2 패널로, ‘진품명품’ 코너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과 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으로 꾸렸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고정 출연하고 있는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사진='김현정의 뉴스쇼' 갈무리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도 우원식 민주당 의원과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의 ‘우표수집’, 우상호 민주당 의원의 ‘황야의 우나이퍼’ 등 양당 정치인의 고정 코너가 있다. 다만 ‘해뜰날클럽’의 경우 민주당(박진영), 국민의힘(김재섭), 정의당(한창민), 국민의당(김윤), 열린민주당(김성회) 등 5개 정당 소속의 패널이 한 번에 출연해 상대적으로 여러 정당을 대변하고 있다. MBC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의 경우 ‘정치프로파일링’ ‘선곡 진검승부’와 같은 코너에 민주·국민의힘 의원들이 고정 출연하는 가운데, ‘여의도 정책발굴단’엔 민주·국민의힘 인사와 함께 김동연 캠프 혹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 캠프 관계자가 번갈아 출연했다.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다. SBS는 양당 경선 전이었던 지난 9월 ‘집사부일체-대선 주자 빅3 특집’으로 민주당 이재명·이낙연, 국민의힘 윤석열 등 예비 후보를 출연시켰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대선후보 특집’은 오는 30일 이재명 후보, 내달 7일 윤석열 후보 특집을 확정했다. 지난 9월 홍준표 국민의힘 전 경선후보가 출연했던 TV조선 ‘와카남’의 경우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촬영이 계획됐으나 갑작스럽게 취소됐다고 안 후보 본인이 밝힌 바 있다. SBS가 내달 2일 새 예능 ‘워맨스가 필요해’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 출연을 예고했는데 이번 대선후보가 된 이후 예능 첫 출연이다. 

정호진 정의당 선대위 대변인은 “모든 시민이 수신료를 내는 KBS마저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양당 후보만 했다. 시간이 없어서 두 후보만 했다고 한다”며 “(대선) 후보들에 대한 언론 노출에 있어 양당 중심의 후보 또는 패널만 출연시키는 것은 대단히 편파적”이라 비판했다.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 예정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 ⓒKBS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 예정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오른쪽) ⓒKBS

후보가 정해졌음에도 언급조차 되지 못하는 정당들도 있다. 20대 국회에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기본소득당도 그 중 하나다. 오준호 기본소득당 대선 후보는 “방송·언론이 시청률과 페이지뷰 등 지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정보를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접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거대양당에 출연이 편중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정보의 편향은 정치 편향으로 이어지고 정치 지형 내에서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성의 실종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오 후보는 언론 지형의 편향을 해소하기 위해 ‘언론 주권자 배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KBS의 방송제작가이드라인은 정치·선거 방송의 형평성 기준을 신뢰도를 갖춘 여론조사로 삼을 수 있다면서도 ‘소수에 대한 배려’를 명시하고 있다. “수의 논리가 선거로 대표되는 정치 과정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정치과정에서는 더욱 소수의 의사가 충분히 존중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수는 영원한 다수, 소수는 영원한 소수로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외 정당인 진보당의 김재연 후보는 지난 8월 출마를 선언한 지 석 달이 지나고 있지만 방송에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보당 관계자는 “진보당은 8만2000명 당원 중 65%가 비정규직 당원으로 노동 중심의 평등 세상을 꿈꾸는 정당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계층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인 정당이 방송이나 언론 환경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사회 다양한 목소리가 대선의 화두가 되고, 그로 인해 모두를 위한 정책선거가 될 수 있도록 공정하고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면 좋겠다”고 촉구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일 90일 전인 내달 9일부터는 후보들의 출연 방식·빈도가 엄격히 제한된다. 특정 정당의 과대표가 일정 부분 줄어들 수 있는 동시에, 그간 지지율이나 존재감을 얻지 못한 후보는 출연 기회를 얻기 어려운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출연자 선정은) 각 언론사에서 판단할 부분이라 가이드라인 등을 둘 수는 없지만 ‘선의’에 맡기면 시청률이나 관심도를 따라가는 측면이 있어 내부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며 “선거방송 심의 규정에 명시된 형평성 취지를 맞춰줄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