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지상파 방송사에서 일하는 구성원 가운데 비정규직·프리랜서가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는 구성원 가운데 비정규직이 44%에 달했고, 특히 방송작가는 모두 프리랜서로 일했다.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안정감’을 위해 시급한 과제로 고용 안정과 노동권 인정을 꼽았다. 부산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등은 지난 25일 ‘부산경남 언론사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집담회’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놨다.

부산민언련 문화기획팀이 각 지역방송사 노사와 면담 조사한 결과, KBS부산총국 전체 구성원 266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총 131명이었다. 부산경남 대표민방 KNN에선 정규직이 116명, 비정규직이 110명 일했다. 두 방송사에서 비정규직이 각각 49.2%와 48.7%로 구성원 절반을 차지했다.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MBC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 중 뉴스 프로그램 진행 장면 갈무리

KNN·부산KBS 콘텐츠 제작 투입 절반이 비정규직


부산MBC의 경우 총 직원 161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43명(36.4%)이라고 소개했으나, 2년 기간제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치고 있었다.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더 높단 얘기다. 부산민언련은 “이들 방송사에서 뉴스를 비롯한 방송프로그램 등 콘텐츠를 제작하는 구성원 43.5%가 비정규직”이라고 밝혔다.

부산민언련은 “지역방송은 KNN의 캐네내, KBS부산 부캐부캐 등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온라인 콘텐츠를 독자 제작하거나 방송 프로그램을 재가공해 공개한다”며 “하지만 온라인 콘텐츠 생산에 독자 인력을 충원하기보다 기존 직원을 디지털팀에 배정하거나 담당 프로그램 작가나 AD에게 유튜브 업로드 업무를 추가 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계약 형태로 보면 KBS부산총국은 PD 보조와 FD를 비롯해 뉴스·방송 프로그램 편집, 기술국 보조 업무 등을 파견 비정규직으로 쓰고 있었다. 다수가 20대다. 방송작가와 편집감독, VJ 등은 ‘프리랜서’로 고용했다. 부산MBC는 영상 촬영과 편집, 자료조사, 송출, 편성에 비정규직을 썼다. 대부분이 청년 비정규직이었다. 방송작가들엔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했다.

▲부산지역 방송사 비정규직 현황. 자료집 갈무리
▲부산지역 방송사 비정규직 현황. 자료집 갈무리

KNN은 기자, 제작, 기술, 카메라 등 4대 직급만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그 외 업무는 회사 가 기간제 계약직을 고용하거나 부서 차원에서 파견·용역·프리랜서 계약을 맺었다. 부산민언련은 “PD 등이 개인 담당 프로그램 제작에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고 있어 전체 비정규직 현황은 유동적”이라고 했다.

특히 방송작가는 방송사를 불문하고 전부 프리랜서 계약을 적용 받고 있다. 대구MBC와 KBS대구에서 일한 염정열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부지부장은 “지상파와 TBN교통방송을 비롯해 영남권 주요 방송사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는 약 110명이다. 100%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라고 했다.

비정규직 써서 돌아가지만 노동 가치는 인정 않아


비정규직 당사자들은 심층 인터뷰에서 회사가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봤다. 25년 미만 재직한 방송작가 A씨는 부산민언련과 진행한 심층인터뷰에서 “경력 있는 작가들의 노하우나 식견이 분명히 있는데, (회사는) 이런 부분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규직들은 자기 일을 작가들 다 시키면서 연차가 오르면 호봉을 받아 가는 거, 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외주제작사에 근무하는 B씨도 “매거진 프로그램이 새로 생겼을 때 담당 PD가 지시해 기본 제작시스템을 만들어놨다. 그런데 4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똑같은 시스템으로 제작하고 있어 황당했다”고 했다.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지난 8월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는 지난 8월18일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작가 노동조건을 정할 교섭을 KBS와 MBC에 요구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갈무리

 

다수가 고용 불안정과 회사가 자의적으로 정하는 수입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크다고 털어놨다.

VJ로 일하는 C씨는 프리랜서라는 불안정한 ‘신분’이 담당 PD나 상급자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눈치를 보는 문화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프리랜서는 계약서도 없이 구두 상으로 끝이다. 너무 위태위태하다”며 “계약직으로 뽑더라도 최소 2~3년 정도 기회를 줘야한다. 실력 발휘할 기회를 주고 기여도를 봐서 충족되면 적어도 고용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문제 말해도 개인 대 개인으로 찍혀” 조직화·노동권 인정 시급


방송작가 D씨는 “그나마 작가는 최근에 노조라도 생겼지만 리포터나 다른 프리랜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소통 창구가 아예 없다. 문제가 생겨도 아예 말 안한다. 제기를 해도 개인 대 개인이 된다. 괜히 찍히기만 하고”라고 했다.

방송작가 D씨는 “가장의 경우 생활비이기도 한데 한 번 막히면 생활에 큰 차질이 생긴다. 내가 일해서 받는 돈인데 어디로 말해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자료조사원 E씨도 “방송이 나간 뒤 평균 2~3일 후, 심한 경우 2주까지 밀린다”며 “이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알지 못하고, 미뤄져도 사유나 언제쯤 지급될지를 공식적으로 알 방법이 없다. 진짜 답답하다”고 했다.

MBC와 TBS 방송작가 출신인 이미지 언론노조 특임부위원장은 미디어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으로 두 방향을 제시했다. 개별 노동자들이 법정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는 한편,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은 회사가 서면계약 내 용역업무를 명확하게 하는 등 처우 개선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경남 지역 신문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황. 자료집 갈무리
▲부산경남 지역 신문사 정규직과 비정규직 현황. 자료집 갈무리

한편 부산경남 지역 신문사들에선 비정규직 비율이 그만큼 높진 않았지만 일부 방송사에선 디지털 부서에서 비정규직을 다수 사용하고 있었다. 경남도민일보는 디지털국 기자가 모두 정규직이었다. 반면 국제신문 디지털국은 총 14명 중 비정규직이 4명이었다. 디지털국 정규직들도 과거 비정규직에서 전환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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