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방송 등의 시청자·독자위원회가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소위 ‘언론개혁’ 방안으로 ‘시민 참여’를 이야기하지만 법, 제도적 근거로 구성된 위원회조차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과 전국민언련네트워크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를 개최했다. KBS, MBC, SBS, TBS, MBN, KNN, KBS부산총국, KBS전주총국, 대전MBC, CJB청주방송, 한국일보, 한겨레, 옥천신문 등에서 시청자 또는 독자위원회에 참여했던 전·현직 독자위원들이 한 데 모여 머리를 맞댄 자리다.

지금의 방송법은 국내 방송사업자 상당수가 시청자위원회를 운영하도록 규정하며, 시청자위원의 권한을 포괄적으로 부여하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만 시청자위원회를 두고 있는 방송사는 종합편성·보도전문편성·홈쇼핑사업자 등 55개사에 이른다. 2018년 기준 621명의 시청자위원들은 방송 편성에 대한 의견, 방송사 자체심의규정 및 프로그램 내용에 대한 의견제시·시정요구, 시청자평가원 선임, 기타 시청자 권익보호와 기타 시청자 권익보호와 침해 구제에 관한 업무 등을 할 수 있다.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그러나 실제 시청자위원으로 활동한 이들은 이미 규정된 위원회 취지도 충분히 구현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방송사가 구성한 시청자위원회 한계…확장된 역할 고민해야

정미정 TBS 시청자위원장(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방송사 중심으로 구성·운영되는 시청자위원회에서 소극적인 위원회의 한계를 짚었다. 예컨대 과거 KBS시청자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KBS의 불황형 흑자에 기획재정부가 국가배당을 요청한 사안을 다루려 했으나 사측은 물론 시청자위원조차 ‘월권 아니냐’며 만류했다는 것이다. 그는 논의가 가능하다는 방송통신위원회 유권해석까지 받았음에도, 시청자위원간 투표로 안건 상정이 불발됐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 위원은 “법과 제도에 의한 강제는 최소한으로 하고 방송사 자율에 맡기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재의 운영행태를 보면 사업자들은 최소한의 규제수준에 충족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OTT로 향하는 시청자 흐름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더 다양한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시청자 권익보호 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부 시청자위원들은 시청자 권익과 연관되는 노사 현안에도 시청자위원회 역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SBS 시청자위원(한신대 평화교양대학 교수, 민언련 정책위원)은 일례로 2017년 10월 SBS 최대주주와 노사가 합의했으나 최근 사측 요구로 폐지 위기에 놓인 임명동의제를 거론했다. 그는 이를 두고 “노사 양측 간의 문제가 아니라 민영 지상파방송인 SBS가 방송의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사회적 약속’”이라며 “특히 2020년 재허가 심사에서 방통위가 ‘방송의 사적 이용’에 대한 우려를 SBS에 표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명동의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대주주의 이익으로부터 독립된 보도를 행하도록 마련된 장치로 시청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바가 큰 제도”라고 강조했다.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탁종열 MBN시청자위원(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의 경우 “MBN은 자본금 편법 충당으로 6개월 영업 정지 행정 처분을 받고, 재승인 심사 결과 3년간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는데, 재승인 조건에 사외이사 선임 시 시청자위원회가 추천하는 자를 포함하도록 하고 노조 추천으로 시청자위원회를 구성할 것 등’이 포함됐다”며 “시청자위원 선임에 노동조합 추천 권한을 명문화해 방송사 내부의 비판과 견제가 방송사 외부에 있는 다양한 시청자들의 시청권과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도록 시청자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시청자위원회 내부에서도 다양성 부족…효능감 강화해야

지금까지의 시청자위원회가 정말로 다양한 시청자를 대변하고 있느냐는 자문도 이어졌다. 손주화 KBS전주총국 시청자위원(전북민언련 사무처장)은 “지역방송 활력은 지역사회와 밀착하고 지역민 관심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 시청자위원회 내에서도 시,군 등 지역 대표성을 강화할 요소를 넣어서 지역민의 효능감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 세종, 충남을 아우르는 대전MBC의 경우 시청자위원회에 대전 지역 인사가 편중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기동 대전MBC 시청자위원(대전충남민언련)은 “KBS대전총국이나 민영방송인 TJB 역시 제한적이다. 시민사회 추천을 받아도 대표 등 중심으로 가고 있고 계층, 세대 등이 반영되지 않은 채 지역사회 유지나 50대 이상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 특성이 나타난다”며 지역시청자위원회 내부의 구성도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역 방송사들은 시청자위원회를 재허가 과정에서 심사 받기 위한 요식행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 매달 회의 진행은 꼬박꼬박 하지만 이와 연계해 시청자평가원이나 옴부즈만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은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고려조차 하지 않는 모습이 보인다”며 지역 방송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시청자위 위상 못미치는 독자권익위…“역할 강화 모색해야”

신문사들도 각각의 독자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독자권익위원회(한국일보), 독자권익보호위원회(조선일보), 열린편집위원회(한겨레)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기능과 역할은 유사하다. 다만 방송법에 근거한 시청자위원회에 비해 위상이나 역할이 미치지 못한다는 한계가 지적된다. 독자권익위 활동과 회의내용을 지면 및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신문사로 서울신문,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이 있다.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11월23일 민주언론시민연합·전국민언련네트워크가 주최한 ‘시청자·독자위원회 현황과 과제 모색’ 토론회.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유튜브 생중계 갈무리

이명재 자유언론실천재단 기획편집위원(민언련 정책위원)은 △명망가 위주의 위원 구성 △대표성·전문성 부족 및 우호적 독자 위주 선임 △월 1회 회의로 한달간의 지면 평가, 사후 평가 사실상 부재 △신문사측의 형식적인 답변 △구성원의 무관심과 거부감 등을 주요 신문사 독자위원회의 공통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명재 위원은 내년부터 새롭게 달라지는 정부광고 집행 기준인 ‘사회적 책임’ 지표의 하나로 독자권익위원회의 설치·운영 여부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독자위의 적극적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편집권에 대한 기자들의 이해와 인식을 높여야 한다. 편집권의 과잉과 빈곤이라는 양면적 현실에서 ‘편집권의 독점적 귀속’ 관점에서 벗어난 사고가 필요하다”며 “(각 사의) 편집위, 공보위가 ‘내부자 논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면서 내부의 편집권 침해 압력에 대한 외부의 지원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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