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망을 이용하는 넷플릭스가 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무임승차론’이 힘을 얻으면서 국회의 입법 논의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 한국을 방문한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정부·국회·언론을 만나면서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망사용료 내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무임승차론’은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인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SKB)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의 통신망을 이용하면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SKB는 넷플릭스 이용으로 인한 트래픽이 폭증하는데 넷플릭스가 사용료 협상을 거부한다며 지난 2019년 방송통신위원회에 갈등 중재 재정신청을 했다. 그러나 이듬해 넷플릭스는 법원에 SKB가 요구하는 망사용료 지불 책임이 없음을 확인해달라며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글로벌 CP들이 국내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유발하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 10~12월 일평균 트래픽 발생량을 분석했더니 구글이 25.9%로 가장 많고, 넷플릭스가 4.8%로 뒤를 이었다. 네이버(1.8%), 카카오(1.4%), 콘텐츠웨이브(1.2%) 등을 합쳐도 넷플릭스에 미치지 못했다. 올해 2분기 일평균 트래픽 상위 10개 사이트 중 유튜브, 넷플릭스 등 글로벌 CP사 평균은 전체의 78.5%(김상희 국회 부의장, 과기정통부)로 집계됐다.

▲넷플릭스의 '2021 콘텐츠 전송을 위한 협력방안' 보고서 중 OCA 개념도
▲넷플릭스의 '2021 콘텐츠 전송을 위한 협력방안' 보고서 중 OCA 개념도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얼라이언스(OCA)라는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로 트래픽을 줄여왔다고 주장한다. 여러 통신망을 거쳐 미국 본사의 데이터를 가져오는 대신, 일본·홍콩에 있는 캐시 서버에 한국 이용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데이터를 저장해뒀다 한국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이용률이 치솟는 피크시간대를 피해 진행한다는 이유로 OCA를 ‘새벽 콘텐츠배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내 ISP 중 LG유플러스, KT는 OCA를 이용하고 있다.

반면 SKB는 넷플릭스가 일본·홍콩에서 자사 통신망에 ‘접속’해 인터넷전용회선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는 입장이다. SKB의 네트워크 자원 이용에 대해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SKB는 “‘전송은 무상’이라는 인터넷의 기본 원칙은 존재하지 않고, (SKB의) 전송망을 이용해 데이터를 송수신할 권리는 일반적으로 유상으로 부여되는 것”이라며 넷플릭스가 망잉 이용하는 것에 관한 이득을 “부당이득”으로써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제20민사부)는 지난 6월 넷플릭스가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기각했다. 다만 전적으로 SKB 손을 들어줬다고 보기엔 한계가 있다. 넷플릭스의 주장처럼 “복수의 지역에 CP의 OCA를 설치하여 트래픽을 경감시키거나 각종 공사비용과 설비의 업그레이드 비용 등을 상호 분담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에 관한 대가가 지급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은 당사자들이 “협상에 의하여 어떠한 방식을 택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망사용료 지급을 강제할 법적 근거는 미비하다.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망을 이용하는 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가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돼 있을 뿐이다. 이에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이 부가통신사업자가 트래픽 발생량 등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을 금지행위로 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망사용료를 강제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 ⓒNetflix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 ⓒNetflix

한국 콘텐츠제공사업자를 중심으로는 ‘역차별론’이 제기된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CP사들이 망사용료를 지급하는데 글로벌 사업자인 넷플릭스만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관점이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연간 수백억원대 망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글로벌 플랫폼은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는 등 정부에서도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인식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망사용료에 대한 원칙이 모호해질 수 있는 지점이다. 넷플릭스의 주장들이 모두 합당하지 않을지라도 ‘누구나 차별 없이 인터넷망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망중립성 원칙이 쉽게 훼손돼선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영식 의원안에 대한 과방위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부가통신사업자들을 이용자 수 등에 따라 차별 취급하는 행위이므로,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 영세 기업들은 넷플릭스 규제를 위한 법안의 피해를 뒤집어 쓸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소규모 OTT 업체인 ‘왓챠’ 측이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기술이 없어서 4K나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을 안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망 이용 비용” 부담을 토로한 것이 일례다. 최근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관련 개정안에 “국내외 CP에게 동일한 효력이 보장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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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만 망사용료를 안 낸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일 딘 가필드 넷플릭스 정책총괄 부사장이 국내 언론 간담회에서 “망사용료를 한국 외에 지불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단언했지만, 거짓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미국 AT&T·버라이즌·TWC와 프랑스 오렌지 등엔 사실상 망사용료인 ‘착신망 이용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이다. 이에 넷플릭스 관계자는 “추론일 뿐”이라며 “외신을 인용한 주장들은 넷플릭스가 망이용대가를 지불했기에 더 이상 (ISP와) 싸우지 않는 것 아닐까라고 추정하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공방이 장기화되는 동안 소비자는 뒷전이다. 일찍이 넷플릭스와 SKB간 갈등이 넷플릭스 구독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돼왔다. 현 국면이 요금 인상의 명목으로 작동한다면 통신비용을 지불하는 소비자가 이중 부담을 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지금의 논란이 소비자 권익 저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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