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시 정주행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다. 7년 전 종영한 ‘뉴스룸’이란 미국 드라마다. 뉴스룸은 뉴스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가상의 방송국 ACN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드라마를 새삼 다시 꺼내든 이유는, ‘멋있는 언론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언론이 질타받고 ‘기레기’라는 비아냥이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뉴스룸에 등장하는 언론인의 모습을 보면서 언론계 종사자인 나도 효능감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드라마 뉴스룸은 언론인인 주인공들의 미화를 위한 장치로 ‘저널리즘 원칙’을 쓴다. 삼각확인, 실명 보도 등 가장 기본적인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려는 그들의 모습은, 복잡한 연애사에 휘말리거나 스캔들에 휘말리는 다소 찌질한(?) 모습에도 그들을 ‘진지한 언론인’으로 인식하게 하는 요소다.

▲ 미국 HBO 드라마 ‘THE NEWSROOM’
▲ 미국 HBO 드라마 ‘THE NEWSROOM’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의 사망 보도다. 총격 사건으로 기퍼즈 의원이 총상을 입고 생사를 헤매자 NPR을 비롯한 CNN, FOX, CNBC 등 언론이 일제히 기퍼즈 의원 사망 소식을 보도한다. 하지만 ACN 뉴스 제작진은 총격 사실만 전하고 사망 소식은 전하지 않는다. 경찰이나 의사로부터 사망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기퍼즈 사망 소식을 보러 다른 채널로 향하는 시청자가 늘어나는 상황에도, “지금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매초마다 1000명이 채널을 변경해”라는 한 스태프의 비난에도 PD는 사망 소식을 보도하지 않는다. 마침내 기퍼즈 의원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식이 전해지고, 타 언론의 사망 보도는 오보로 밝혀지게 된다. ‘진실이 아닌 건 보도하지 않겠다’는 책임 있는 언론인의 자세가 잘 그려진 에피소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6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공군 여중사 성폭력 사망 사건과 관련한 유족의 제보를 묵살했다는 MBC 기사가 삭제됐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숨진 여중사 유족의 제보를 묵살했다는 기사에 대해, 하태경 의원실은 ‘유족 제보를 받고 유가족과 통화하고 국방부 측에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는 취지로 언론중재위 조정 신청에 나섰고, 조정 결과 결국 MBC 기사는 조용히 삭제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유족 제보에 대한 하 의원실의 대응과 관련한 취재를 조금만 더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기사를 슬그머니 삭제하거나 수정하고, ‘다른 언론도 같은 오보를 퍼다 날랐으니까’ 하며 자위하는 ‘아님 말고’식 기사가 퍼지기 쉬운 세상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2019 언론인 조사’에서 언론인의 91.2%는 오보가 발생하는 원인을 ‘기자의 사실 미확인 또는 불충분한 취재’로 꼽았다. 언론인도 안다. 진실을 전하지 못하는 무책임한 보도의 원인은 언론인 본인과 불충분한 취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러한 보도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취재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속보·단독 경쟁, 거짓을 포함한 발화까지 옮겨 쓰는 ‘받아쓰기 보도’, 기사 삭제와 수정이 자유로운 인터넷 환경 등 갖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기자 바이라인이 달린 기사 앞에선 결국 핑계일 뿐이다. 진실 검증이 안 된 무책임한 기사를 보낼 것인가 내보내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건 결국 기자의 몫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혹자는 ‘의혹’ 수준의 사실을 보도하는 것도 언론의 역할이라 말할 수 있겠다.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사실도 공익성과 파급력을 생각해 드러내야 할 때가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언론인 본분을 저버린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구분하는 건 (드라마 뉴스룸에서도 강조되는) ‘책임감’이란 거다. 의혹을 보도하더라도, 언론인은 추가 취재와 검증을 통해 의혹 이면의 진실을 발굴해 기사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1보에서는 사건을, 2보, 3보에서는 추가로 취재된 사실을 얹어가는 기사 보도 방식은 저널리즘을 ‘진실을 발굴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한 번에 진실을 드러낼 수 있는 완벽한 기사는 없다. 기사를 쓰는 언론인들은 알 것이다. 내가 정말로 ‘진실 검증’을 위해 노력했는가? 추가적인 취재를 할 수 없는 언론 환경을 탓하며 ‘쉬운 취재’를 한 건 아닌가? 기사를 내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아님 말고’를 생각하진 않았는가?

언론인을 다른 정보 생산자들과 구별하게 하는 기준은 그가 ‘진실확인자’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다. ‘아님 말고’ 식 기사를 쓰는 한, 언론인은 진실확인자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드라마 뉴스룸에서 봤던 책임 있는 언론인들을, 현실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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