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스우파’ 멤버들이 등장한다. 여성 댄서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최근 막을 내렸지만 지상파·유료방송 등 TV채널부터 온라인에 이르는 콘텐츠에 댄서들 출연이 이어지고 있다.

‘스우파’에 대한 인기는 신드롬이라 표현되고 있다. 지상파·케이블·종합편성 채널 프로그램의 TV화제성을 분석하는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스우파’는 8월24일 첫방송 직후부터 ‘비드라마 TV화제성’ 순위 1위로 진입, 9주 동안 1위를 이어갔다.

‘스우파’에 참여한 8개 크루 중 ‘웨이비’의 리더 노제가 안무를 창작했던 음원 ‘헤이 마마(Hey mama)’ 챌린지 열풍도 이어지고 있다. 틱톡에서의 ‘#heymama’ 해시태그는 2일 현재 2억3000만회 넘게 조회됐다. 유튜브에선 각 댄서들이 남긴 ‘스우파 어록’ ‘스우파 유행어’ 클립영상이 Mnet 공식 채널 기준으로만 건당 수십만에서 수백만회 조회를 넘고 있다. 여성 코미디언들이 댄서들을 패러디한 ‘스개파(스트릿 개그우먼 파이터)’도 덩달아 인기를 모으고 있다.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Mnet '스트릿 우먼 파이터'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여러 방송사들은 경쟁적으로 ‘스우파’ 댄서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달 29일 EBS ‘자이언트 펭TV’에는 리더 아이키를 비롯한 ‘훅’ 크루 멤버들이 출연했다. 이달 들어서도 인기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스우파 멤버 출연을 홍보하고 있다. 오는 5일 MBC ‘나 혼자 산다’엔 ‘홀리뱅’ 크루 리더인 허니제이, 6일 tvN ‘놀라운 토요일’엔 노제와 아이키 출연이 예정됐고, 7일 SBS ‘집사부일체’는 여러 크루원들이 출연하는 ‘춤사부일체’ 편으로 방영된다.

이는 보통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리 여덟 크루 모두 고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탈락한 ‘웨이비’는 그 덕에 지난달 11일 ‘스우파’ 멤버로서 가장 먼저 지상파 콘텐츠인 MBC라디오 ‘아이돌라디오’에 출연했다. 파이널 미션을 앞두고 탈락한 ‘프라우드먼’은 같은달 19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네임’과 컬래버레이션한 안무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Mnet도 이런 인기를 의식해 이 두 크루와 YGX 등 탈락 크루의 비하인드 영상을 적극 공개하고 있다.

승패나 순위와 관련 없는 이들의 인기는 출연한 댄서 개개인의 역량과 매력이 결정타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2일 “경쟁 형식 프로그램에서 실질적으로는 어떤 출연자가 나오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라이벌 구도가 형성돼도 그에 놓인 인물 자체의 매력이 있을 때 형식이 빛을 발하는데 ‘스우파’는 이런 캐릭터가 정말 다량으로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MBC '나 혼자 산다' 예고 영상. 사진=MBC 유튜브
▲MBC '나 혼자 산다' 예고 영상. 사진=MBC 유튜브

실제 스우파의 구성 자체는 과거의 경쟁 중심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다. 8개 크루가 서로를 한껏 견제하고 ‘약자지목 배틀’을 한다. 미션을 하나하나 거치는 과정에서 전체 크루의 순위가 시시각각 공개되고 이들의 무대를 평가하는 ‘저지’(judge)의 심사 뿐 아니라 유튜브 미션 영상에 대한 글로벌 인기 투표와 좋아요 수를 통합해 탈락자를 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드러난 기존 서바이벌과의 차이는 굴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 편집에 농락당하지 않겠다면서 유튜브를 통해 출연진간의 ‘친목’ 영상을 적극 발굴하고 소비하는 시청자 등을 꼽을 수 있다. 약자로 지목된 ‘YGX’의 리더 리정이 “내가 약자? 난 한 번도 약자였던 적이 없는데”라며 자신감을 드러내는 발언은 과거의 경쟁 프로그램에서라면 금기시 됐을 태도임에도 ‘스우파 명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는 댄서들이 경쟁의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보여주는 ‘어른스러움’에 대한 호응으로도 이어졌다. ‘홀리뱅’ 리더 허니제이가 미션에서 실패한 뒤 “평가하려고 나온 사람이 아니라 평가를 받으려고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거나, 유튜브 조회수 평가에서 밀린 ‘라치카’ 리더 가비가 “내가 언제 이런 사랑을 받아봤다고? 지금 이게 슬퍼할 일인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발언들이 결과를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면모로 ‘명언’에 올랐다.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네임'과 여성 댄서 크루 '프라우드먼' 컬래버레이션 영상. 사진=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지난달 1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네임'과 여성 댄서 크루 '프라우드먼' 컬래버레이션 영상. 사진=넷플릭스코리아 유튜브

아울러 제작진이 경쟁을 위해 제시한 미션 주제를 전복하는 장면이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특히 여성으로만 이뤄진 각 크루가 남성 댄서를 초청해 무대를 꾸미는 ‘맨 오브’ 미션에서 두드러졌다. ‘프라우드먼’은 쟁쟁한 남성 댄서들을 섭외한 크루들과 달리 드랙퀸 퍼포머인 ‘캼’을 초청했고, 자신들이 짧은 커트머리에 바지를 입은 채 ‘여성선언문’에 맞춰 춤을 췄다. 이후 탈락한 이 크루의 리더 모니카는 “저희는 저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소감을 남겼다.

정덕현 평론가는 “서바이벌 오디션은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같은 거다. 탈락자는 치워진다. 그런데 ‘스우파’는 출연한 인물들이 자기 목소리를 냈기에 뒤로 갈수록 시청자들도 승패에 관심이 없어졌다”며 “제작진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그림이 나오는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굉장히 큰 카타르시스로 작용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이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건 ‘오징어게임’ 같은 판이지만 댄서들이 스스로 최고였다고 인정하면서 서바이벌 구조를 뒤집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EBS '자이언트 펭TV' 갈무리. 사진='자이언트 펭TV' 유튜브
▲지난달 29일 EBS '자이언트 펭TV' 갈무리. 사진='자이언트 펭TV' 유튜브

‘스우파’가 방영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과 한계들도 있다. 본방송과 관련 없이 댄서들이 화를 내고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편집된 예고 영상, 긴장감 조성을 위해 편집된 발언 등 시청자들이 유튜브나 SNS에서 ‘증거’를 찾아가며 걸러냈던 ‘악편’(악의적 편집)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스우파’가 인기를 끌자 갑작스럽게 스핀오프 콘텐츠인 ‘스트릿 걸스 파이터’ 제작이 강행되면서 댄서들에게 사전 조율 없이 일정이 통보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앞으로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자극적인 경쟁 구도는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쯤에서 끝까지 최종승자와 패자를 가려야 했던 파이널 미션을 돌아본다. 3위로 탈락한 ‘라치카’는 “잘 모르겠고 우리가 제일 잘 했고 우리가 제일 멋있었어. 그럼 된 거야”라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스우파’에 참여한 댄서들은 모두 “대한민국 댄서들”에 대한 응원을 보냈다. 연대로 막을 내린 ‘스우파’는 결국 프로그램의 흥행이 왜 출연진의 승리라 불리는지 마지막회를 통해서도 증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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