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사측의 사장 임명동의제 철회 요구로 무단협 사태를 맞은 지 한 달을 맞이했다. 과거 재승인과 정부 임기에 맞춰 달리해온 SBS 측 태도에 비출 때 이번 노사 갈등도 쉬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구성원들은 쟁의행위를 채비하는 가운데 당초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독립을 감시하는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는 지난달 2일 무단협 상태에 놓였다. SBS는 앞서 언론노조 SBS본부와의 단협 개정 협상에서 SBS 사장과 SBS A&T 사장, 보도 책임자 임명동의제 조항을 삭제할 것을 요구한 뒤 언론노조 SBS본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단체협약 해지를 통고했다. 방송사 사상 소유·경영 분리와 방송 독립성을 처음 명문화한 제도가 현재 무효 상태라는 의미다.

▲지난 10월28일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서울 목동 SBS사옥 로비 농성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SBS본부 홈페이지
▲지난 10월28일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서울 목동 SBS사옥 로비 농성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SBS본부 홈페이지

초유의 무단협 상황이지만 구성원들은 사측의 노조 적대 움직임이 새롭지 않다. 태영 측이 정권 교체와 재승인 시기에 따라 노조와 갈등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SBS는 1991년 태영건설을 지배주주로 개국했다. 노동조합은 8년 뒤인 1998년 설립됐다. SBS는 2004년 중간평가제를 도입했다. 그에 앞서 SBS에서 정치·자본 권력을 고발하는 뉴스가 큐시트에서 갑자기 빠지고, 대통령 순방 기사가 수시로 잡히고 청와대 간부 지시로 대담프로그램이 편성됐는데, 구성원들이 이를 막을 장치를 요구한 결과다.

▲2009~2011년 언론노조 SBS노조 농성 모습. 사진=SBS본부 홈페이지
▲2009~2011년 언론노조 SBS노조 농성 모습. 사진=SBS본부 홈페이지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사측은 미디어법을 비롯한 언론악법 저지 총파업에 참가한 노조원을 징계했다. 이후 2010년 신입사원 연봉제 도입을 시도하고 2011년엔 최상재 전임 언론노조위원장 대기발령을 강행했다. 언론노조는 이 때마다 농성과 피켓 시위 등으로 이를 철회시켰다.

박근혜 정부 때도 노사관계는 악화일로였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윤세영 회장의 ‘박근혜 정부 비판 자제’ 보도지침과 SBS 예능프로그램을 이용한 태영 소유 인제스피디움 띄우기 등을 폭로하고 나섰다. 2017년은 정권 교체와 방송사 재승인 심사가 맞물리는 시점이었다. 사측은 그해 12월 재승인 심사를 앞둔 10월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에 합의한다. 노사는 이듬해 임명동의제를 단협에 못박았다.

정부 말기가 찾아오면서 사측 태도가 다시 변했다. 지난해 말 방통위의 SBS 재승인 직후 사측이 단협에서 임명동의제 삭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후 방통위가 지난 9월 TY홀딩스에 자회사이자 SBS 최대주주였던 SBS미디어홀딩스 흡수합병을 승인했다. 사측은 올초부터 임명동의제 철회를 고수하면서 지난달 초 무단협 사태에 이르렀다.

▲SBS는 2019년 3월 언론노조 SBS본부의 반대 시위를 물리적으로 봉쇄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주장하는 이사를 좌천했다. 당시 SBS 이사회가 사측의 물리적 봉쇄 상황에서 강행됐다. SBS본부 노보 갈무리
▲SBS는 2019년 3월 언론노조 SBS본부의 반대 시위를 물리적으로 봉쇄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어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주장하는 이사를 좌천했다. 당시 SBS 이사회가 사측의 물리적 봉쇄 상황에서 강행됐다. SBS본부 노보 갈무리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SBS는 민주당 정권 초기와 재승인 심사를 앞둔 해엔 공정방송과 방송독립을 위한 합의를 하는 등 양보하는 제스처를 보이다, 재승인 직후 또는 정권 말기엔 다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길 반복해왔다. 올해가 바로 그 해인 데다, MBN이 방통위의 업무 정지 처분을 행정소송으로 무력화하는 모습을 보며 규제기관 권고마저 거스르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태영이 자산 규모 10조원인 대기업 지정을 앞두고 방송사 매각 채비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매각에 앞서 SBS에 대한 경영권을 강조하기 위해 노조 약화에 나서는 행보 아니냐는 분석이다.

방송법 8조3항은 자산 규모 10조원이 넘어서는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사 지분을 10% 이상 초과 소유하지 못하도록 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년 5월 중 상호출자가 제한되는 자산 규모 10조 이상 대기업 집단을 발표하는데, 올해는 호반그룹이 대기업으로 분류되며 광주방송 대주주 자리에서 내려왔다. 내년에는 태영이 대기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태영에서 쉽게 방송을 내놓을까 싶다. 태영은 방송국을 보유한 덕에 이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라며 매각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박 교수는 “10조원 규제를 받지 않기 위해 계열사 분리매각을 한다던지 노력할 여지가 있고, 지금까지 SBS 노사관계를 볼 때 구성원 저항을 생각하면 (매각에 대비해)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기가 현실성 있을 거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 9월15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1인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지난 9월15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정형택 언론노조 SBS본부장이 1인시위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이런 가운데 방통위가 SBS와 TY홀딩스에 내민 재승인 조건 이행 감시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2일 성명에서 “한달 전 ‘소유 경영 분리와 방송 공정성 실현’이라는 대원칙 아래 ‘임명동의제’라는 제도를 지키라는 구체적 권고를 한 것이 바로 방통위”라며 “자신들이 내린 조건과 권고가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제도마저 없애는 퇴행이 벌어지는데도 방통위는 잠자코 있다”고 비판했다. SBS본부는 방통위가 사측의 재허가·승인 조건 불이행에 대해 철저히 감독할 것을 촉구했다.

무단협 상황은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측은 지난달 27일 교섭에서도 사장과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철회 요구를 고수했다. 박정훈 SBS 사장은 첫 본교섭 이후로 4차 교섭 때까지 아예 출석하지 않고 있다.

시한은 11월12일이다. 언론노조는 SBS본부는 이날 TY홀딩스 주주총회가 끝나면 사측이 인사를 단행하고, 임명동의제를 비롯한 단협이 무효가 된 상황을 활용해 대주주 입맛에 맞는 인사를 SBS 사장과 방송 책임자 자리에 임명하리라고 보고 있다.

이에 언론노조 SBS본부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정형택 본부장은 “단체협약 파기라는 칼을 들이대는데 우리는 맨몸으로, 빈손으로 대화만을 요구할 수 없다”며 “단체행동은 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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