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로봇 학대 논란’을 어떻게 봐야할까. 일부 언론은 이재명 후보가 지난달 28일 ‘2021 로보월드’ 행사에서 로봇을 밀친 사실을 전하며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과 ‘로봇 학대’ 프레임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재명 캠프와 현장 관계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 같은 지적은 과도하다. 정작 현장에 있었던 언론은 당일 이를 지적하는 기사를 내지도 않았는데, 뒤늦게 논란이 불거진 맥락도 살필 필요가 있다.

로봇 업체에서 ‘밀치기’ 제안

현장에서 이재명 후보 옆에서 시연을 담당한 로봇 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전화 인터뷰에서 “정확히 말씀드리면 시연 자체가 로봇이 밀어도 넘어지지 않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였다”고 했다. 일부 언론이 이재명 후보가 업체와 협의 없이 돌발행동을 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연합뉴스

이 업체 관계자는 “제가 ‘밀어도 괜찮아요’라고 말씀드렸고, 밀게 됐다. 이후 밀어도 (로봇이) 넘어지지 않고 복원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미셔도 된다’고 말했던 것 같다. 이후 더 세게 밀어서 넘어뜨린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그러자 주변 분들이 ‘오오’라고 하시길래 제가 ‘괜찮습니다. 일어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복원하는 시연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 역시 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요청에 따라 로봇 테스트를 했더니 앞부분만 잘라서 로봇을 ‘폭행했다’ ‘학대했다’ 이런 가짜뉴스를 하지 않았나”라며 “난폭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 학대 논란 어떻게 봐야할까

일각에선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로봇에 ‘학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간단히 볼 문제만은 아니다. 외국에선 ‘로봇 학대’ 논쟁이 불거진 적 있고 국내에도 언론을 통해 몇차례 소개됐다. CNN은 미국 로봇 업체에서 로봇에 발길질을 하는 등의 행위를 담은 영상이 온라인에서 논란이 된 사례를 전하며 “많은 이들이 영상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며 “윤리와 미래의 로봇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보도했다.

다만 실제 ‘로봇 학대’에 대한 논의는 로봇 자체보다는 어릴 때부터 로봇을 학대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등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MIT 미디어랩 소속 케이트 달링은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로봇 학대의 위험성은 로봇이 입는 피해에 있다기 보다는, 인간 행동에 미칠 영향의 위험성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istockphoto
사진=istockphoto

이재명 후보 행위는 ‘로봇 학대’로 볼 수 있을까. CNN이 논란에서 다룬 영상처럼 로봇을 발로 차거나 주먹질을 하는 등 노골적인 폭력 행위는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수준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 레인보우로보틱스 관계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지나가는 로봇을 밀어서 넘어뜨린다면 학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장 상황 자체가 로봇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연이었기에, 밀었다고 해서 학대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로봇 뒤집은 당일, 언론은 지적하지 않아
트위터 비난→언론 인용→SNS 커뮤니티 확산 

관련 언론 보도 양상을 되짚을 필요도 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뜨거운 논란’이지만 정작 당일 언론 보도는 ‘무덤덤’했다. 지난달 28일 주요 언론사들은 “이재명 로봇 전시회 참석”(연합뉴스), “이재명 ‘사족보행 로봇 신기하네’”(뉴스1) “사족보행 로봇 살펴보는 이재명”(뉴시스) 등의 기사를 썼다. 몇몇 언론은 이재명 후보가 로봇을 양팔로 잡고 뒤집으려 하는 장면까지 사진으로 찍어 올렸지만 이를 ‘논란’으로 다룬 곳은 없었다.

현장에서 과도한 돌발행동으로 ‘논란’이 불거질 정도였다면 당일 언론에서 이를 다뤘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의소리 유튜브 채널에서 당시 현장을 생중계한 영상을 보면 전시장을 둘러본 이후 이재명 후보와 기자들이 질의응답을 했는데 관련 지적이나 질문이 나오지도 않았다.

매일신문 기사 갈무리
매일신문 기사 갈무리

정작 언론을 통해 이날 이재명 후보의 행동이 논쟁처럼 보도된 때는 행사 다음 날인 29일이고 본격적인 보도는 30일부터 시작됐다.

온라인 소셜미디어 이슈 흐름을 분석하는 팩트체크넷의 온라인 모니터 서비스로 ‘로봇 학대’를 검색해보면 이재명 후보가 행사에 방문한 날 트위터에 관련 글이 올라오고 대량으로 리트윗되면서 ‘로봇 학대’라는 말이 번졌다. 일례로 “소패가 동물을 학대하는 건 알았지만 로봇도 학대하는구나” 글은 11월1일 오후 2시 기준 476건 리트윗됐다. 다음날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한 트윗은 같은 기준으로 900건 넘게 리트윗됐다. 

해당 게시글을 리트윗한 이들은 프로필에 ‘불공정 경선’ ‘근조 송영길 민주당’ ‘문재인 다음 이낙연 대통령’ 등 이재명 후보 경선 상대였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지지하는 이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후 포털 네이버 기준으로 로봇을 뒤집는 데만 초점을 맞춘 첫 기사는 조선일보가 29일 낸 “이재명, 로봇 굴려 ‘우당탕탕’ 온라인 시끌…文 과거도 소환”이다. 이 기사에서는 “‘화제다’ ‘과격하게 다뤘다’는 반응이 나오는 가운데,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비슷한 상황에서 로봇을 조심스레 다룬 태도와 비교하는 영상까지 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조선일보 기사 갈무리

두 번째로 사안을 보도한 매일신문이 “이재명, 로봇학대 논란?…'아기 다루듯' 했던 文대통령 재조명”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로봇 학대’라는 표현을 썼고, 업체 동의 없이 우발행동을 한 것처럼 보도했다. 같은 날 한국경제, 중앙일보, 머니투데이, 위키트리, 인사이트 등이 이 행동과 온라인상 갑론을박을 기사화하며 논쟁을 키웠다.

그러자 30일~3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언론 보도를 인용한 글이 다수 올라오며 논쟁이 커졌다. 10월31일 이재명 후보의 반박 입장을 내고, 진중권 전 교수가 이재명 후보 비판 발언을 하자 언론은 또 다시 입장을 전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10월31일 관련 키워드 언급량은 정점을 찍었다.

팩트체크넷 온라인 이슈 실시간 모니터 프로그램. 단, 모든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진 않기에 추이를 살펴보는 정도로 활용할 수 있다.
팩트체크넷 온라인 이슈 실시간 모니터 프로그램. 단, 모든 서비스를 대상으로 하진 않기에 추이를 살펴보는 정도로 활용할 수 있다.

이번 논란을 확산시킨 언론의 면면을 보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는 매체이거나, 주요 언론사 가운데 출입처 취재가 아닌 SNS 받아쓰기 등 포털 대응 온라인 기사를 쓰는 ‘온라인팀’인 경우가 많았다.

관련 기사를 쓴 중앙일보 기자는 온라인 이슈 대응팀인 EYE24팀 소속, 조선일보 기자는 조선일보의 뉴스 트래픽을 높이는 기사를 주로 쓰는 조선NS 소속, 한국경제 기자는 온라인 전용 기사를 쓰는 한경닷컴 소속이었다. 이들 기자들은 각각 지난 한달 간 99건, 85건, 134건의 기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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