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31일 오후 7시50분 경 MBC 단독 “‘가족 지키려면 유시민 비위 내놔라’… 공포의 취재” 리포트 전후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장은 11회 통화했다.

이날 한동훈 검사장-권순정 대검찰청 대변인-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은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53회 카톡을 주고받았다. 보도 다음날인 4월1일에는 윤 총장과 한 검사장 간 통화가 12회 이뤄졌고, 2일에는 17회로 통화가 더 늘었다. 단체방에선 1일과 2일 75회 카톡이 이뤄졌다. 

▲2020년 3월31일 MBC보도.
▲2020년 3월31일 MBC보도.

그리고 다음 날인 4월3일 오전 10시3분. 검사 출신의 김웅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와 조성은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대화.  

“이동재 기자가 뭐 이렇게 해서 이철이 라임에 걔 협박했다 이런 거 있잖아요.”
“음, 이철. 네네.”
“그거가 이제 이것들이 공작인 것 같고, 목소리는 이동재하고 한동훈하고 통화한 게 아니고 이동재가 한동훈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장을 해서 녹음을 한 거예요.”
“대역을 썼다는 거죠?”
“네.” 
“시나리오를 써서 대역을 썼다는 거죠?”
“그렇죠. 그렇게 해서 그거를 아마 오늘 밝힐 것 같고, 그래서 아마 고발장 초안을 아마 저희가 만들어서 보내 드릴게요. 오늘 이거 아마 이동재가 이제 양심 선언하면 바로 이걸 바로 키워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19일 MBC ‘PD수첩’을 통해 드러난 두 사람 대화에는 ‘고발사주’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다. 앞서 ‘뉴스버스’는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측근인 대검찰청 간부가 언론인과 여권 정치인에 대한 고발장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측에 건넸다는 ‘고발 사주’ 의혹을 보도했다. 고발 대상으로 ‘검언유착’ 의혹을 보도한 MBC 기자 5명이 등장했으며, 뉴스버스가 공개한 고발장에는 이들의 이름과 구체적 혐의가 적혀 있었고, ‘고발인란’만 비워둔 채였다. 

뉴스버스는 검찰이 해당 고발장을 김웅 후보를 통해 미래통합당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앞선 통화에서 김웅 후보가 말한 그 ‘고발장’이다. 그런데 통화 녹취를 보면 의문이 남는다. 김웅 후보는 “대역 녹음”과 “양심선언” 정보를 누구에게 들었을까. 더욱이 이동재 기자는 회사에 MBC 보도에 대응할 ‘반박 아이디어’를 보고하면서 “특정 인물(한동훈)과 비슷한 목소리로 녹음한 뒤 (제보자) 지씨를 만나 다시 들려주고 녹음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았는데, 김 후보는 마치 이뤄진 것처럼 말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19일 논평에서 “채널A 몇몇 당사자만 아는 사실관계를 (김웅이) 어떻게 인지하고, 이동재 전 기자의 아이디어에 불과한 계획이 마치 실행된 것처럼 언급할 수 있었을까”라고 되물은 것은 그래서 중요한 대목이다.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권순정 전 대검 대변인에게 “(4월 초 단체방에서 셋이서) 무슨 대화를 나눴냐”고 물었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 구체적으로 답변 못 드린다”는 답을 들었다. 이에 박 의원이 “(MBC기자 등) 고발장에는 육성 파일이 없다고 2번이나 언급이 돼 있다. 그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을까”라고 물었다. 권 전 대변인이 “저도 모르겠다”고 답하자 박 의원은 “한동훈 검사장은 알았죠”라고 말했다.

김웅 후보는 통화에서 채널A 내부에서만 알 수 있는 내용을 말했다. 2020년 4월3일, 그 급박한 시기에 채널A가 어떻게 대응할지 확신하고 있었다. 그의 정보원은 누구였을까. 김웅 후보 발언은 당시 채널A 고위관계자가 한동훈 검사장 또는 검찰 쪽 관계자와 여러 정보를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김웅 후보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통화 속 ‘양심선언’은 그해 5월25일 공개된 ‘신라젠 사건 정관계 로비 의혹 취재 과정에 대한 채널A 진상조사보고서’에도 없는, 폐기된 ‘선택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당시 국면을 정리해보면, 4월1일 진상조사위 구성부터 9일까지 채널A는 ‘다양한’ 대응방안을 고민했고, 결국 ‘기자 개인의 일탈’로 정리했다. 그러나 3일 김웅-조성은 통화 시점에서는 ‘한동훈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가장해 녹음한 것’이라는 이동재의 양심선언도 선택지로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동훈 목소리는 대역이었다”고 양심선언을 했다면 한동훈 검사장으로선 이동재 기자를 고소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대검 인권부는 “만약 검찰관계자의 대화 녹음이 아님에도 채널A 기자가 이를 조작해 취재에 악용한 것이라면, 해당 검찰관계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4월9일 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한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대표는 이동재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인정했기 때문에, 김웅 후보가 전달한 고발장을 쓸 이유도 사라졌다. 채널A는 ‘취재윤리 위반’ 선에서 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이동재 기자를 해고하는 방식을 택했다. 진상조사보고서 역시 철저하게 특종 욕심이 빚어낸 개인의 일탈에 초점을 맞췄다. 

여기서 다시금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윤석열 총장 징계 결정문’에서 “(검언유착 의혹 관련) 증거가 인멸되는 동안, 윤석열과 한동훈은 다수 통신 연락했다”고 밝힌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논평에서 “김웅 의원은 (조성은에게) ‘우리가 만들어서 보내주겠다. 그냥 내지 말고 왜 인지수사 안 하냐고 항의해 대검이 억지로 받은 것처럼 하라. 검찰 색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만약 MBC 보도 이후 검찰과 채널A가 ‘공동의 목표’를 갖고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정보를 주고받았다면, 당시 김정훈 보도본부장과 홍성규 사회부장, 배혜림 법조팀장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공동의 목표’가 있었다면 그것이 윤 전 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 사유가 된 채널A 사건 감찰‧수사 방해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를 따져보는 것이 공수처의 ‘윤석열 검언유착 의혹 감찰 및 수사 방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필요해 보인다. 수사결과에 따라 우리는 ‘또 다른 검언유착’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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