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교육’을 하고 싶다며 교육부에 ‘성명’을 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모임(KATOM)은 지난달 23일 성명을 통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실효성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방안을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언론의 왜곡보도, 허위정보와 혐오표현 등 디지털 미디어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2022년 교육과정 개정에서 밀려날 우려가 제기되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미디어 교육 강조하더니, ‘AI교육’이 뒤덮나

교육부는 2022년, 7년 만에 교육과정을 개정한다. 오는 10월 말 공청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거친 후 11월 교육과정 총론 초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그간 강조해온 것과 달리 이번 교육과정 개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설 자리는 좁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우려가 나온다. 앞서 지난 4월 교육부가 2022 개정 교육과정 추진 계획을 발표했는데 ‘AI교육’ ‘디지털 소양 교육’ 등이 전면에 부각돼 있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미디어 내용의 편향 등 전반의 문제를 파악하고, 숨은 이해관계와 의도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을 말한다. 언론 왜곡 보도, 허위정보, 뒷광고(기만적 광고), 혐오표현 등 오늘날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미디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이다. 

부산 주감초등학교의 활동형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부산 주감초등학교의 활동형 뉴스 리터러시 교육 현장. 사진=금준경 기자.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현재까지 발표된 내용을 보면 디지털 소양, 디지털 기반 교육이라는 용어가 사용돼 있다”며 “이러한 용어는 변화하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접근, 이해, 창조, 참여라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포괄적 역량이 아닌 디지털 기술 활용이나 윤리나 에티켓 등으로 좁게 해석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육부는 2022년 국어과 교육과정 재구조화 논의에서 미디어 교육에 연계된 ‘언어와 매체’ 영역을 삭제했다. 이와 관련 전국국어교사모임 매체 연구회는 “매체 교육 발전의 퇴행”이라고 비판하는 입장을 내고 관련 교육 확대를 요구하기도 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해온 이성철 주감초등학교 교사는 “기술과 산업의 관점과 영역에서만 문제를 풀어가려는 모습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교육과정에서 각 교과별로 미디어를 활용하거나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는 등의 내용이 적지 않다. 상당 부분 미디어를 활용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정작 본질이 되는 미디어를 어떻게 이용하고 비판적으로 분석할 것인지 핵심적인 개념과 지식은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이성철 교사는 “미디어를 이용해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아이들 간의 격차가 크고 어떤 아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가져와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온라인 혐오표현과 진실되지 않은 정보에 학생들이 노출돼 있기도 하다. 학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유튜브 스마트폰 화면. 사진=gettyimages
유튜브 스마트폰 화면. 사진=gettyimages

이른바 ‘기술 교육’ 중심 요구에 언론도 가세하고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관련 업계·학계 관계자들을 인용해 ‘인공지능’ ‘코딩’ 교육을 강조하는 보도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어느 분야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지는 가치 판단 영역이지만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한 문제를 언급하면서 ‘인공지능’ ‘코딩’이 강조된 디지털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일례로 YTN은 지난 7월18일 “디지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니면 단순한 의견인지 식별하는 능력은 우리 청소년이 25.6%로 최하위권이었다”며 허위정보 판별 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다뤘다. 그런데 YTN은 대안으로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의  “AI도 만들 수 있고 메타버스 세상도 만들 수 있는 그런 인재가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발언을 전하며 산업적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교육부 연구도 ‘리터러시 역량’ 강조
총론 제시·체계적 교육과정 개설 필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전보다 활성화됐지만 공교육의 중심에는 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시청자미디어재단 등 미디어 기관 중심의 교육을 바탕으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관심 있는 교사들이 국어 등 일부 연계 가능한 교과, 자유학기제,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변방’에서 교육해온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관 중심 교육이 확대되고 현재까지 9개 지역 교육청이 미디어 교육 관련 조례 제정에 나서는 등 진전이 있지만 교육과정 총론에 반영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교육과정 총론에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빠지는 건 그간의 교육부 연구 결과 및 입장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2019년 교육부는 ‘학교 미디어 교육 내실화 지원계획’을 통해 미디어 교육 지원을 밝혔다. 같은 해 정책연구를 통해 향후 개정될 교육과정 총론에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 포함돼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2020년 관계부처 합동으로 디지털 미디어 교육 강화를 골자로 한 정책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총론에 포함돼도 ‘미디어’ 독립 과목을 개설하긴 어렵지만 특화단원을 구성하는 등 기존 과목의 연계 단원을 강화하고 수업 시수를 확대해 초중고 학생에게 보편적으로 교육을 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교과 연계 예시 교재 갈무리. 해외 소식을 전한 언론보도를 통해  외신 원문과 한국 기사의 제목이 어떻게 달랐는지, 각 기사 제목은 어떤 대목에 집중했는지 등 여러 교과와 연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다.
교과 연계 예시 교재 갈무리. 해외 소식을 전한 언론보도를 통해  외신 원문과 한국 기사의 제목이 어떻게 달랐는지, 각 기사 제목은 어떤 대목에 집중했는지 등 여러 교과와 연계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할 수 있다.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는 교육부에 △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핵심 역량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명시하고 구체적 교육 방향과 내용을 제시할 것 △ 범교과 차원에서 통합 가능한 구체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정 제시 및 수업 시수 확보해 전국 모든 학생들이 공식적으로 미디어 리터러시를 받을 수 있게 할 것 △ 각 교과와 연계할 수 있도록 단원과 성취기준을 제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정현선 경인교대 미디어리터러시연구소장(국어교육과 교수)은 미디어 교육 공교육화의 국내외 현황과 과제를 담은 교육부 이슈 리포트를 오는 20일 발간할 예정이다. 정현선 교수는 이슈리포트를 통해 총론에 ‘미래교육 비전으로서 미디어 교육 강화 명시’ 또는 ‘핵심역량에 미디어 역량 추가’ 등을 제안하고 지속적 정책 추진을 위한 기본계획 마련, 체계적인 교사 및 예비교사 교육 방안 등 후속 정책을 요구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 사진=민중의소리
유은혜 교육부 장관. 사진=민중의소리

정현선 소장은 “교육과정 총론은 교육 과정의 큰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를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주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라며 “헨리 젱킨스 교수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키우지 않은 채 온라인 교육을 개설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에 가깝다’고 했다. 미디어에 대한 근본적 이해 없이 기술적으로만 사용하게 한다면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언론학계 역시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방송학회 미디어교육특별위원장을 지낸 김경희 한국언론학회장(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은 “AI교육이나 소프트웨어 교육은 대체로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는 교육이다. 활용 교육이 물론 중요하지만 비판적 이해 없는 활용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미디어 교육을 총론에 넣고, 모든 초중고 학생이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교육과정 문제를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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