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가을. 작년 이맘때 쯤 부천시에 공공 전기자전거 ‘일레클’이 생겼다. ‘부천시에도 서울의 따릉이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자전거를 타며 도시를 누비는 기분을 만끽하려 일부러 서울에 갔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어려운 코로나 시기, 자전거 타며 소소하게나마 콧바람 쐴 수 있으면 좋으니까.

일레클은 전기 자전거 업체 이름으로 민간사업자이다. 그러니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따릉이’ 시스템과는 다르다. 요즘 지자체에서 공공 자전거 시스템이 활발히 도입되면서 적자 규모가 커짐에 따라 부천시처럼 민간 공유자전거를 도입하는 추세라고 한다. 민간 사업자가 자전거 대여반납 시스템 등 플랫폼 전반에 대한 관리를 해주니 지자체는 손실을 줄이고 민간 사업자는 비싼 대여료를 통해 지속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전기 자전거인 일레클의 비용은 1시간에 9400원으로 1시간에 1000원 인 따릉이 보다 열 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다.

공공 자전거 첫 라이딩을 위해 없던 할 일을 만들고 집을 나섰다. 일레클을 사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일레클 앱을 다운 받아야 한다. 앱을 통해 자전거가 어디에 세워져있고 또 어디에 자전거를 반납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다 멈칫 놀랐다. 내가 가고 싶던 곳은 부천시 원미동. 부천의 구도심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레클 서비스가 운영되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레클 사용은 부천 중동 신도시 주변으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사실 원미동은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선명하지 않아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등 뒤에 오는 차를 확인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 도로는 고사하고 사람이 차의 위협 없이 걸을 수 있는 거리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걸음걸이가 느린 노약자, 휠체어를 탄 장애인, 체구가 작은 어린이의 경우 언제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 자전거까지 달린다면 도로는 위험천만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부천시민 모두가 공공 서비스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행선지를 바꿔 중동 신도시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중동에는 자전거 거리도 있고 큰 공원도 있으니 자전거 타기에 편하리라 기대했다.

▲ 부천시 중동 신도시 위주로 서비스 되고 있는 공공 자전거. 사진=이혜원
▲ 부천시 중동 신도시 위주로 서비스 되고 있는 공공 자전거. 사진=이혜원

그런데 자전거를 탄지 불과 5분 만에 거리의 무법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단 자전거의 속도가 무척 빨랐다. 전기 자전거가 일반 자전거보다 빠른 건 당연한 건데, 이 속도는 마치 빠르면 안 되는 데 빠른 것처럼 어색하고 민망한 속도였다. 게다가 지나갈 때 ‘웽~’하고 나는 소리가 나서 그런지 사람들이 겁을 먹고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네 친구에게 공공 자전거 일레클을 타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난 그거 싫어. 도로에서 마주치면 몸이 움츠려들어.”라고 답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좁고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다보니 운전을 하는 내가 불안해서 금방 자전거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유모차를 끄는 아주머니, 요구르트 판매 가판대, 포장마차, 뛰어다니는 어린이, 그리고 비둘기까지... 나의 자전거 운전에 이 모든 것이 방해 요인이 되었던 것처럼 거리를 걷는 이들에게 나는 얼마나 피하고 싶은 존재였을까!

▲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공공 자전거. 사진=이혜원
▲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공공 자전거. 사진=이혜원

공공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건 살기 좋은 도시는 안전한 거리가 먼저 확보되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공공 자전거라는 정책이 모두에게 ‘복지’가 되기 위해선 거리 정비 및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떼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자전거가 쌩쌩 달릴 수 있는 도로 뿐만 아니라 거리를 걷는 시민들도 불편함 없이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무언가 판매할 사람이 있다면 그들 역시 차와 각종 탈것으로부터 떨어져 물건을 팔 수 있어야 한다. 어린 아이가 차와 자전거의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지 않고 마음껏 뛰어다니고, 넘어지며 자랄 수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가 발 디디고 서있는 곳은 한 집 건너 한집이 있고 자전거 도로와 차도, 인도가 분리되어 있는 한적한 도시가 아니다. 밀집된 아파트와 좁은 인도,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오고 가야 하는 포화도시다. 그러나 공공 자전거 서비스가 섣부른 선택이었다거나 지역에서 퇴출당해야 할 불쾌한 존재로 여겨지지는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이 서비스 도입을 계기로 어떤 점을 더욱 개선하면 좋을지 알 수 있는 지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상을 살면서 만족을 느끼는 게 특별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 자전거 몇 대가 놓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기 좋은 도시’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을 하곤 한다. 동네에 도서관이 있고 독립영화 전용 상용관이 있으며 맘껏 뛰고 운동할 수 있는 공원이 있다는 사실이 힘든 하루 끝에서 꽤 큰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 한 시민의 일상에 스며들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이 실현됐을 때 한 개인이 느끼는 정책의 효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따라서 현재 시행중인 공공 자전거 시스템을 통해 그 너머의 것을 질문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는 어떤 도시인가. 공공 자전거가 ‘있는’ 도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공 자전거를 타는 시민도 길을 걷는 시민도 각자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도시. 그리고 공공 자전거를 매개로 신도시와 구도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도시.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공존의 싹을 틔워낸 ‘공공 자전거 도입 2주년’을 맞이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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