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한 탈북자가 숙소인 경기도 모처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 말 두차례에 걸쳐 400여명의 대규모 탈북자들이 국내로 입국하는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탈출 경로 등을 보도해 당국으로부터 신중한 보도를 요청받는 등 탈북자 보도의 기준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탈북자 문제가 처음 알려진 것은 경향신문이 지난달 23일 1면에 <탈북자 수백명 내주 한국 온다>는 머릿기사를 보도하면서 부터다.

경향신문은 “아시아 국가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 수백명을 다음주 중 한국으로 한꺼번에 데려오는 방안을 추진중인 것으로 22일 알려졌다”며 “정부가 탈북자 300∼400명이 머물고 있는 아시아 국가 정부와 협상을 벌여 이같이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뒤이어 다른 언론들도 이 사안에 대해 탈북자들이 동남아를 거쳐 입국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정부는 당초 계획과는 달리 이 사실이 공개돼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데 언론에 알려지게 됐다”며 “어느 체류국도 언론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고 있었는데 언론이 너무 불필요한 내용까지 보도해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자극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번에 입국경로 등 보도되지 않아야 할 사안이 너무 보도돼 정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번 일로 인해 장관급회담이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보도했던 경향신문의 조호현 외교안보팀장은 “당초 우리가 보도하기 2주전에 이미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체류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내부적으로 남북관계와 기사의 중요성을 놓고 논의한 끝에 추가 취재를 해서 23일자로 보도하게 된 것”이라며 “이미 다른 언론도 일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안 쓸 수도 없었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또한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도 쓸 때는 써야 한다”며 “좋은 내용만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기자들의 생각은 좀 다르다. 한 중앙일간지 통일부 출입기자는 “탈북자 문제는 국내 입국하기 전까지 당사자들의 신변 안전을 보호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이젠 탈북자의 입국 시 어떻게 언론보도를 해야 할 지를 한번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KBS, MBC, SBS 등 방송3사와 YTN 기자들은 △사건이 터진 뒤 체류국의 국명을 쓰지 않고 △입국 당일에 중계차를 내보내지 않으며 △대신 두 차례에 걸쳐 2개사 카메라 기자를 1명씩 2개조로 내보내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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