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간부들은 23일 김선일씨 피살 소식에 충격과 애도를 표하면서도  추가파병 문제에 대해선 그동안 펴왔던 논조에 따라 찬반 양론으로 뚜렷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잘못된 파병 결정 명쾌하게 반대"

   
▲ 경향신문
경향신문 편집국 간부는 "파병하지 않을 경우 한미관계가 악화된다는 단순 논리보다 새로운 동맹관계를 설정하기 위해 부당한 파병을 명쾌하게 반대해야 한다"며 "그동안도 이런 입장을 견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경향신문의 한 논설위원도 "민간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어떤 테러도 용납될 수 없다"며 "경향이 파병에 반대해온 이유중의 하나가 이런 일이 발생할까 우려했기 때문인데 그게 현실화됐으니 앞으로 파병반대를 더 강조하는 쪽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명분없는 전쟁에 파병결정을 한 뒤 발생한 손실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일보 강병태 논설위원은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이라크에) 주도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베트남전 때처럼 절박하거나 현실적인 이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참전을 했다"며 "이념의 문제를 떠나 이익을 위해 참전했는데 손실이 발생한 딜레마적 상황의 본질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미 결정된 사안 일정대로 추진해야"

반면, 어차피 국가적으로 결정된 사안이고 특정사안 때문에 번복해서는 안된다는 파병원칙고수론도 만만치 않았다.

   
▲ 문화일보
문화일보 편집국 간부는 "이라크 파병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고 일정대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다만 교민대책 부분에 있어서는 철저한 대처를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정서는 악화되겠지만 주권국가로서 전체 국익을 고려해 내린 결정인 만큼 정부의 파병 고수 입장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세계일보

   
▲ ytn
세계일보 편집국 간부도 "파병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이미 국제사회에서 추가파병을 약속했다"며 "국제사회에서의 약속은 국가 신뢰도문제"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또 "우리가 미국에 잡혀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독립된 주권국가로서 책임있는 행위를 하자는 것"이라며 "이라크 재건이라는 우리의 명분을 충분히 살린 상태에서 파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YTN의 한 고위간부는 "국가가 한 번 결정한 것을 특정사안 때문에 번복하면 더 큰 혼란이 발생한다"며 추가파병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뜻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한·미관계 때문에 파병결정…변화 가능성 적어"

파병에 끼칠 영향에 대해 경향신문 편집국의 한 간부는 "정부가 여론을 압력을 받기는 하겠지만 파병 원칙을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며 "이라크와의 관계보다는 한-미 관계 때문에 파병을 결정한 게 훨씬 크기 때문에 입장을 선회할 가능성은 아주 작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서울신문 편집국 간부도 "장기적으로 정부의 파병 결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입장에서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중동 "충격적이지만 파병원칙 지켜야"

   
▲ 조선일보
한편, 어느 언론사보다 강하게 이라크 추가 파병 지지 논조를 펴왔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들은 김선일씨가 22일 밤 끝내 피살됐다는 비보가 전해진 뒤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파병 원칙이 흔들려선 안된다"는 종전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조선일보 편집국 간부는 23일 오전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정부가 국제관계와 실익 등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 어렵게 파병 결정을 내렸는데 (김선일씨의 납치 피살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테러"라며 "대단히 충격적이고 아픈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당혹스럽고 끔찍하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살인사건을 접해봤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진다"며 "우리도 솔직히 당황스럽고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 간부는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냉철하게 국익을 고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가야 하며 파병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며 "국론이 매우 심각한 상태로  분열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 언론이 분열된 목소리를 잘 여과해 한 뜻으로 뭉칠 수 있도록 정리하는 쪽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동아일보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는 "우리 정부가 코너에 몰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탄핵 때 한나라당이 그랬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몰리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간부는 "여러 사이트를 들어가 살펴보니 전망이 크게 두가지"라며 "하나는 명분을 세워서 파병을 철회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초 정한 원칙대로 파병을 하라는 것인데 이미 여론이 갈라진 상황에서 한쪽만 의식할 수는 없는 상태라 그만큼  향후 사태 흐름을 예측하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간부는 파병 찬성 논조를 펴온데 대해 "우리(동아일보)가 탄핵 때처럼 몰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확한 뉴스의 전달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
중앙일보 편집국 간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정부와 중앙일보 등 파병 찬성 입장에 있던) 여러 사람을 힘들고 어렵게 할 것"이라며 "(이라크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 진만큼 앞으로의 상황 전개를 좀더 깊이있게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솔직히 파병 반대측과 찬성측 모두 이해가 된다"며 "양쪽 견해와 입장을 존중해 충실히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지면을 만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사설 통해 '파병 찬성론' 거듭 주장

한편, 조선일보는 23일자 배달판에서 교체한 사설을 통해 충격적이지만 파병원칙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파병찬성론'을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는 <용서할 수 없는 김선일씨 살해 만행>이라는 사설에서 "충격적이고 비극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파병 결정과 원칙마저 흔들려서는 안된다. 이번 일로 파병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테러리스트들의 의도를 그대로 충족시켜주는 결과가 될 뿐"이라며 "이런 때일수록 대통령과 정부가 확고한 중심을 잡고 파병 문제가 또다시 국론 분열 양상으로 번져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김선일씨 살해 만행을 규탄한다>라는 사설에서 "남은 일은 범인을 색출해 처벌하는 것"이라며 "무고한 민간인을 상대로 야만적인 범죄를 저지른 비열한 자들은 반드시 응징을 받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라크 과도 정부와 현지 미군, 그리고 인근 중동국가와 공조해 범인 체포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앞서 22일자 <인질극은 국제적 분노 살뿐이다>라는 사설에서 "이번 일로 파병이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한 우리군의 파병은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쟁 끝에 종합적 국익을 고려해 내려진 결론"이라며 "때문에 비록 충격적이지만 이번 사태에 우리 정부와 국민이 흔들리지 않고 파병을 예정된 계획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종합적 국익을 높이고 한국민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신문팀(조현호 정은경 김종화)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