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이승복 사망기사가 오보였다는 주장에 대해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조선일보 쪽 손을 들어줬던 형사재판의 항소심 결과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판사 김상균)는 지난 16일 이승복 사망기사가 오보였다고 주장했던 김주언 언론재단 연구이사와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상대로 조선일보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승복이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이승복의 형인) 이학관의 증언 내용이 뚜렷하고 다른 증인들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해 주는 이상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강인원과 노형옥(사진기자)이 이승복 사건의 현장 취재를 한 것은 사실로 인정돼야 할 것”이라면서도 “언론·표현의 자유에 의해 용인되는 범위 내의 ‘있을 수 있는’ 의혹제기라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승복 사건이 의혹조차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 아니며 △언론·표현의 자유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확립 정도를 고려해 봤을 때 충분히 의혹제기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이승복 사건은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공익성’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상당성’을 들며 명예훼손을 전제로 한 조선일보의 손배소를 기각했다.

재판부 관계자는 “이승복 사건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며 “일반적인 명예훼손 사건과 다르지 않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판결했을 뿐이다. 사회적 공론화를 할 수 있고, 피고 등이 조선일보의 보도경위에 대한 의혹 제기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게 이 판결의 의미”라고 말했다.
피고인측 김형태 변호사는 “비록 판결 내용이 애매하지만 수십년 동안 우리 사회의 반공·냉전 이데올로기의 상징이었던 이승복 신화가 언론에 의해 끌어내려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과거 헌법 차원에서조차 금기시 돼온 문제를 이제는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측은 법원의 판결은 존중하나 재판을 계속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김 전 이사와 김 전 국장의 주장에 의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우리의 입장”이라며 “항소를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98년 11월 김 이사와 김 전 국장을 상대로 각각 1억원씩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와 함께 제기했던 형사소송 1심에서 승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민사소송 판결로 이승복 신화에 대한 ‘조작’ ‘오보’ 논란이 반전의 국면을 맞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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