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뒤늦게 청와대와 한나라당-일부 언론 사이에 뜨거운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과 이들 언론은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과 관계없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가 하면, 대통령은 방송 시사토론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행정수도 이전 정당성에 관해 토론을 벌일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가적 현안으로 떠오른 행정수도 이전에 관해 전 서울대 지리학 교수인 최창조씨가 보내 온 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우리나라의 전통적 지리 사상인 풍수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른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 필자는 단도직입적으로 그 불가함을 생각해본다.

첫째, 행정수도 이전이란 말장난일 뿐이란 점이다. 행정부만 옮기면 견제 기능이 없으니 그를 수행할 수 있는 입법, 사법기관도 같이 옮겨야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어찌 행정수도인가? 명백한 천도에 해당된다. 명칭이 분명해야 명분도 사는 법인데 이는 시작부터 이름 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둘째, 역대 어느 정권보다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통일을 지향하며 외세의 간섭을 꺼리고 있는 집권 세력이 어떻게 북측의 의구심과 반대를 불러일으킬 것이 뻔한 남쪽으로의 천도를 추구하는 것인가? 북한의 장사포 사정거리를 벗어난다는 전술적 측면도 그들에게는 그 의도에 궁금증이 일 것인데, 하물며 통일을 앞두고 한반도의 남쪽으로 수도를 옮기겠다면 이는 필시 통일 후 주도권을 남측이 확고히 가지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는가 하는 전략적 고려도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미군기지까지 남쪽으로 간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북측 입장에서는 의구심을 넘어 배신감을 가질 염려까지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된다.

셋째, 우리나라에는 왕조가 많지 않아서 예를 들 것이 별로 없지만 고구려와 백제가 남천을 거듭하다가 망국의 한을 남겼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게다가 이미 바다와의 인접성이 수도 입지에서 매우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륙으로 가겠다는 절실한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되질 않는다.

넷째,  수도 뿐 아니라 도시를 건설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용수 공급이 어떨지를 따져보는 것이 최우선 고려 요소이다. 충청권에 수도를 지탱할만한 큰 강이 있는가? 금강이 있지만 이 강은 지금도 주변 목 축이기에도 부족한 형편이다. 게다가 수질도 악화 일로에 있다. 그렇다면 대규모 댐 건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터인데 환경 파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다섯째, 역사가 증명하듯이 천도는 정치적 고려가 반드시 끼어 들기 마련이다. 그 한 예로 광해군 때의 교하 천도론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그는 왕위에 오를 때부터 여러 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었던 데다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도 왕권 확립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배경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런 위기 상황을 일거에 타파할 수 있는 수단으로 천도론을 들고 나왔지만 현실주의자들의 반대로 결국 그 주창자인 이의신은 목숨을 잃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명분이야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의 퇴락된 왕조의 권위 확보와 민심 수습이라는 것이었지만 기실 광해군의 정치적 도박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평가이다. 명분은 뒷전이고 자신과 추종 세력의 안위만을 위한 계책은 책략에 머물고 만다. 결국 그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탄핵을 당하고 유배되고 만다. 책략 필패(必敗)의 역사적 교훈이다.

여섯째, 자금 조달은 어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필자 자신 잘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그 비현실성과 실현 불가능성을 피력한 바 있지 않은가.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체제상 대기업들은 그 본사를 대통령과 가까이 둘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인구 50만의 도시에 세계적 기업들이 본사를 둘 수 있겠는가? 결국 서울과 신수도 두 곳에서 두 집 살림을 꾸려갈 수밖에 없다. 이 비용은 아마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일곱째, 신수도의 위치가 수도권과 근접한 곳들이란 점이다. 게다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바로 부근을 지나는 곳들이다. 왠만한 고위 관료와 기업 임원들은 서울을 본가로 삼아 출퇴근을 할 것이 자명하다. 이때 들어갈 물류비용과 교통 문제는 어찌 할 것인가? 이렇게 되면 신수도는 낮에는 그런 대로 도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밤에는 필시 유령도시처럼 될 것이다.

여덟째, 풍수적으로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풍수에도 규모에 따라 고려 요소가 다르다는 점을 모르고 하는 주장이다. 후보지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땅을 어머니로 생각하여 모시고 받들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를 깎아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어머니에게도 어머니의 품성에 따라 다른 자식을 기를 수 있다는 사실은 밝혀 두어야겠다. 그곳은 도시가 될 수 없는 성격의 땅이었기에 지금까지 그런 용도로 사람들이 의지해 왔던 곳이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용도에 맞느냐 그르냐의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혹자는 조선이 한양에 천도할 때 한양도 그저 그런 농촌이 아니었냐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한양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국토의 요충지로서 중요성이 충분히 인식된 위에, 고려시대에는 남경으로서 이미 준 서울의 자격을 지니고 있던 곳이다.

아홉째, 천도 이유로 가장 중시하고 있는 국토의 균형 발전과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 방지를 꼽고 있지만 서울 인근에 50만 도시를 건설한다고 해서 넓지 않은 국토의 나라에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될 수 있다고 본다면 너무나 안이한 판단이다. 미국의 예를 들며 워싱턴은 50만의 인구로 수도 역할을 잘 하고 있고 뉴욕이 실질적인 세계적 패권국가인 미국의 중심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잠깐 세계지도를 꺼내놓고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미국 처지에서 워싱턴과 뉴욕은 물리적 거리는 상당할지 모르지만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깔려 있는 인식 지도(mental map)상으로는 지척인 거리다. 또한 미국과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인프라의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본다면 이 비유가 얼마나 억지스러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분명한 천도 불가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계속 추진해 나간다면 이는 새만금 건설에 의한 혼란과 자금 낭비에 비할 수 없는 막대한 후회 요인을 머지 않은 장래에 남겨주는 셈이 된다. 왜 이런 국가적 사업이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될 일인지를 백면 서생에 지나지 않는 필자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풍수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고민해 보니 이런 그림이 떠오른다. 어떻게 괜찮았던 사람도 청와대에만 들어가면 이해하기 힘들게 바뀌어 버리는 것일까? 청와대 터는 일제 총독이 조선의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밟아버리기 위해 선정한 터이다. 그곳은 조선 정궁인 경복궁 위쪽에 해당된다. 영국이 중국 일부 식민지 경략에서 쓰던 수법을 더욱 발전시킨 전형적인 식민 통치 수법으로 세워진 곳이 바로 그곳이다. 청와대 바로 뒤에 있는 북악산은 청와대 경내에서 보면 매우 아름답고 권위도 있는 서울의 주산이다.

하지만 광화문 네거리에만 나와서 봐도 그것이 얼마나 왜소하고 인왕산 같은 주변 산세에 미치지 못하는 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외로운 자리일 것이다. 그 자리는 특히 환경심리학적 요인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소지가 크다. 청와대 안에서는 내가 가장 아름답고 권위도 있으며 항상 옳다고 믿게 되겠지만 멀리서 보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탈이다. 더욱이 경내에서 남쪽을 향해 보면 시내가 환히 보이고 남산이 가까이 다가서 있기에 이 세상 형편을 다 아는 것 같고, 물론 최고급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은 분명하지만, 남산이란 걸림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는 장애물로 보일 것이다. 멀리 관악이란 큰 산이 있기는 하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니 모든 문제들이 조금의 어려움은 있지만 쉽게 넘을 수 있는 문제라는 오산에 빠질 공산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독선에 빠져 수많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게 풍수를, 요즘 말로 환경심리학을 공부한 필자 같은 사람의 유추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청와대, 즉 대통령 관저의 이전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힘을 가질 수 있는 주장이어야 한다. 나는 어느 전직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상왕 노릇을 하기 위해 조성한 일해재단 터를 대통령 관저로 제시한 바 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것을 주장했던 90년대 초의 상황이 대통령 관저의 한강이남 이전이 국민에게 줄 불안감이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이유가 되지 않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어느 기자가 지적한대로 낙향 거사에 지나지 않는 필자 같은 사람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도 문제를 걱정하는 까닭을 천도론자들은 눈여겨 보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창조/전 서울대 교수·풍수학인

 

 
지리학적 관점에서 땅과 사람의 관계를 연구해 민족의 전통 지리사상인 풍수학을 현대생활에 접목시켜 독창적인 풍수이론인 자생풍수를 개척했으며, 서울대와 전북대 교수를 역임했다. 저서 중에는 '한국의 풍수사상' '땅의 논리 인간의 논리'가 일본에서 번역, 소개되었으며 `한국의 자생풍수 1,2', 북녘의 산하를 살핀 '북한 문화유적 답사기'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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