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간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문화 주권 논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는 한-중 양국이 같은 한자 문화권으로 땅과 강 등 명칭과 풍속에 공통점이 많은 데 따른 것이다. 최근 발생한 단오제(端午祭) 기원논란은 ‘문화 주권논쟁’의 대표적인 경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음력 5월5일 단오제를 치른다. 문제는 한국이 ‘강릉 단오제’를 오는 2005년 유네스코에 세계 무형문화 유산으로 신청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됐다.

‘강릉 단오제’ 세계무형문화유산 신청놓고 한·중간 기원 논란

중국 당 기관지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지난 5월 저우허핑(周和平) 문화부 부부장(차관)의 말을 인용해 “중국의 전통 명절인 단오절을 다른 나라가 먼저 등록하면 조상을 뵐 면목이 없어진다”면서 대서특필했다. 중국내 다른 언론들도 단오절 세계문화 유산 등록 추진 사실을 앞다투어 보도했고 네티즌들은 ‘문화 약탈’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단오절은 중국에서 기원해 한국·일본·동남아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중국 고유의 문화재산”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논쟁의 발단은 한-중 양쪽에서 모두 5월5일 단오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중국의 단오제는 초(楚)나라 시인 쥐위안(屈原)의 죽음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기원전 340~278년 전국시대 사람인 쥐위안은 ‘어부사’(漁父辭)에서 “온 세상이 혼탁하지만 나 홀로 맑고 깨끗하며, 모두가 술에 취해 있지만 나 홀로 깨어 있다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라는 유명한 애국충정의 시를 남기고 투신자살해 중국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쥐위안은 나라에 희망이 없자 5월5일 돌을 품고 후난(湖南)성 상수이(湘水)의 지류인 ‘미뤄수이’(삼수변+日 羅水)에 몸을 던졌으며 강남(江南) 지역의 중국인들은 해마다 5월5일이면 그를 기려 용선(龍船) 경주를 벌이고 갈대 잎으로 싼 송편을 ‘미뤄수이’ 물고기에게 던지는 행사를 벌인다. 하지만 강릉의 문화유산 신청은 대관령 산신제와 풍어제(豊漁祭), 난장 등의 무형문화재를 등록하려는 움직임이다. 강릉 단오제는 유·불교와 무속이 혼합돼 토속신앙과 각종 놀이가 어우러지는 향토축제이자 무형문화재로 중국과 내용상 완전히 다르다.

이런 단오제 기원 논쟁은 양국 간의 ‘문화 쟁탈전’의 후속전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 중국은 음력 8월15일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추제’(仲秋節)로 쇠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중추절에 정상 근무를 하며 휴일이 아니다. 가족끼리 모여 달을 바라보면서 ‘위에빙’(月餠)으로 불리는 달콤한 튀긴 달떡을 먹고 매사가 원만하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러나 한국의 ‘중추절’(추석)은 조상의 묘소에 절을 올리고 며칠 간의 휴일이 주어지는 국내의 최대명절이다. 중국식대로라면 ‘중추절’은 양국 간 제2의 ‘문화 주권’ 논쟁을 일으킬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또 서울의 중국식 표기인 ‘한청’(漢城)과 한민족의 강인 ‘한장’(漢江)도 ‘문화 주권’ 논쟁에 휩싸였다. 중국인들은 서울을 ‘한청’(漢城)이라고 표기하고 부른다. 이는 서울이 본의 아니게 ‘한(漢)나라 도시(城)’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한성은 역사적으로 서울을 ‘한양’(漢陽)이라고 부른데 기인한다. 특히 1992년 한-중수교 뒤 서울시가 ‘서울’을 ‘한성’(漢城)이라고 공식 표기해온 관례에 따라 중국이 이를 따랐기 때문이다.

‘한청’(漢城)·‘한장’(漢江) 등 한(漢)자 표기  ‘문화 주권’ 논쟁 휩싸여

   
▲ 한민족의 대표적인 강인 ‘한강’(漢江)은 애초 ‘큰 강’이라는 뜻으로 ‘漢江’으로 표기했으나 중국 한(漢)나라를 연상시킨다는 여론이 있다. 학자들은 ‘韓’자에도 ‘크다’라는 뜻이 있어 ‘韓江’으로 바꾸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부근에는 현재 우리의 한강과 이름과 한자가 같은 ‘한강’(漢江)이 존재한다. 이곳 사람들은 한강의 북쪽지역 일대를 ‘한양’(漢陽)이라고 부르고 있어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2003년 7월 한강에 큰 홍수 피해가 나자 어린이가 물에 잠긴 집을 가리키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서울을 ‘한청’(漢城)으로 부르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한국의 ‘서울’을 ‘한청’(漢城)으로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한국인중에는 ‘한청’(漢城)이란 표현이 중국인들에게 ‘중국 왕조에 대한 조공관계’와 중국인들에게 역사적인 우월감을 부추기지 않을까 우려한다. 원래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한청’(漢城)은 중국인들과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중국이 ‘한청’(漢城)대신 ‘서울’로 부르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는 한-중 수교 뒤 10여 년이 지난 상태에서 적절한 문제제기로 보인다. 이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세운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로 풀이된다. 한국이 원어민의 발음대로 중국 수도를 ‘베이징’(北京)으로 부르고 일본 수도를 ‘도쿄’(東京)로 각각 호칭하는 형평성 측면에서도 맞는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의 표기 개선 안으로 ‘서우얼’(首爾) ‘서우우얼’(首午爾)로 압축해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대표적인 강인 ‘한강’(漢江)도 마찬가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한강은 애초 ‘큰 강’이라는 뜻으로 ‘漢江’으로 표기했으나 역시 중국 한(漢)나라를 연상시킨다는 여론이 있다. ‘한강’(漢江)은 한글창제 이전에 글자를 빌려와 ‘漢江’이 됐다. 몇 년 전 한의사들의 주장에 따라 ‘한의원’도 ‘漢醫院’에서 ‘韓醫院’으로 바뀌었다. 학자들은 ‘韓’자에도 ‘크다’라는 뜻이 있어 ‘韓江’으로 바꾸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중국 후베이(湖北)성의 우한(武漢) 부근에는 서울의 한자어와 동일한 ‘한장’(漢江)이 있다. 이곳  ‘한장’은 ‘창장’(長江)에서 갈라져 나와 북쪽으로 흐르는 지류로 2003년에는 홍수가 날 정도로 큰 강이다. 또 `한장’의 북쪽 지역 일대를 조선시대 서울의 옛 이름인 ‘한양’(漢陽)이라고 부르고 있어 더욱 헷갈리게 하고 있다. ‘한강’(漢江)도 한자의 수정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2001년 9월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서 열린 제6차 화상(華商·화교상인)대회 만찬에서 옆에 앉은 한 중국 기자가 “한국의 태극기를 본적 있다”며 주역(周易)의 태극과 8괘(八卦) 의 형태적 공통점을 지적했다. 당시 중국 기자는 한·중간 문화적인 공통점이란 중립적 의미로 접근했으나 대화가 남긴 뉘앙스는 달랐다. 굳이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태극기의 모태는 중국 주역(周易)’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실제 주역은 중국에서 점복(占卜)을 위한 원전(原典)과도 같은 것으로 현재도 도교(道敎) 사원에서 ‘태극’모양을 흔히 볼 수 있다.

주역의 태극모양과 태극기도 논란…‘문화 주체성’ 교육 강화할 때

   
▲ 중국은 한국의 태극기가 주역(周易)의 ‘타이지’(太極) 모양에서 비롯됐다며 태극기의 기원도 중국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태극과 한국 태극기는 형태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한국으로 여행 온 관광객들이라면 ‘한청’(漢城) ‘한장’(漢江) 등 명칭에서 “중국에도 있다”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 주체성’교육이 더욱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동북 공정’사건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양국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교류를 하면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반도국가로 역사적으로 대륙과 해양으로부터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주체적이고 독특한 한국 문화를 창조해왔다. 산둥(山東)성 타이산(泰山)에도 태극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태극과 한국 태극기는 형태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쿵쯔’(孔子)의 유교 사상은 중국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국내에는 가장 원형에 가까운 유교 사상이 남아있으며 우리의 일상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한국인들의 애국심과 경로사상이 유교의 ‘충효사상’(忠孝思想)에서 비롯됐다며 부러워한다. 또 중국의 젊은이들은 한자의 문자언어인 ‘젠티쯔’(簡體字)를 배우다 보니 한자의 원형인 ‘번티쯔’(本體字)를 모른다. 따라서 중국의 고서적은 한국 학자들이 중국 학자들 보다 해독 실력이 좋은 편이다. 최근 국내 방송 드라마 ‘북경 내사랑’에서 ‘속국 발언’이 문제된 적이 있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가 깊어질 수록 ‘문화 주체성’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그런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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