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생체 실험 도구로 사용…‘통나무’란 뜻인 ‘마루타’로 불러

전쟁은 인간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일제의 731부대는 인간 잔학상의 극치를 보여준다. 헤이룽장(黑龍江) 하얼빈(哈爾濱) 남쪽 20km지점에 설치된 731부대 유적지는 당시의 만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유적지 박물관은 ‘침화일군731부대유지’(侵華日軍七三一部隊遺址)라 적혀있다. 이 곳은 건물 지하의 어두운 조명 속에 당시의 참상이 발굴한 각종 실험 도구 등 유물과 함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내는 모형으로 만들어져있다.

   
▲ 일본군이 당시 731부대 실험실에서 유리관속에 ‘마루타’를 발가벗겨 넣은뒤 내부를 서서히 진공 상태로 만들어 시간대에 따른 변화를 지켜보며 기록을 하고 있다. 당시 마루타는 살갗이 분리되고 눈알이 튀어나온뒤 인체의 심장이 파열돼 숨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전쟁의 참화는 인간이 잔인해질 수 있는 극한을 보여준다. 일제는 인간을 생체 실험의 도구로 사용했다. 실험 대상은 감정도 눈물도 없는 ‘통나무’란 뜻인 ‘마루타’로 불렸다. 중국에서 731부대 생체 실험은 잔학성에서 난징대학살과 함께 쌍벽을 이룬다. 일본은 당시 대량살상무기로 생물·화학탄을 연구했다. 일본군은 1936년~1945년 전쟁포로 및 기타 구속된 사람 1만여 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균과 약물 실험 등을 자행했다. 일군은 애초 방역급수부대로 위장했다가 1941년 만주 731부대로 명칭을 바꾸었다. 731부대의 비밀은 일제 패망 뒤에도 베일에 갇혀 있었다. 부대 건물을 초등학교로 사용하다가 학생들이 원인 모를 피부병에 집단 감염돼 입원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불거졌다. 일본군은 1945년 패망 시 범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부대 시설물과 실험 장비를 폭파한 뒤 도망갔다. 당시 살아남은 150여명의 마루타들은 모두 처형됐다.

   
▲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 남쪽 20km지점에 위치한 일본군의 생체실험치 731 부대 부지에는 현재 ‘침화일군제731부대유지’(侵華日軍七三一部隊遺址)라 적힌 731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생체실험대상인 ‘마루타’(통나무)들의 피맺힌 원한이 서린 곳으로 세계 반파시즘 교육의 기지가 되고 있다.
도덕성을 상실한 과학자들은 공명심을 위해 전쟁을 활용한다. 세균학 박사 이시이 시로[石井] 중장(中將)은 1930년 초 유럽 시찰을 통해 세균전의 효용을 알고 이에 대비한 전략을 적극 주창했다. 그는 731부대 예하에 바이러스·곤충·동상·페스트·콜레라 등 17개의 생물학 무기 연구반을 뒀다. 각각의 연구반에는 인간 ‘마루타’를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했다. 1940년 이후 매년 마루타들을 600여명씩 동원해 최소 3천여 명의 조선·중국·러시아·몽골인 등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6년~1943년 부대 내 인체 표본만 해도 페스트 246개, 콜레라 135개, 유행성출혈열 101개 등 수백 개에 이른다. 생체실험은 세균, 생체해부, 생체냉동, 생체원심분리 및 진공, 신경, 생체 총기 관통과 가스 실험 등이다. 731 부대 박물관에는 당시 마루타의 고통을 모형으로 만들어 일제의 잔학상을 고발하고 있다. 각종 인체 실험은 설명만 봐도 끔찍하다. 냉동 실험은 겨울철을 이용했다. 마루타들은 벌거벗은 채 혹한에 던져진다. 동북지역 하얼빈은 겨울철 영하 30여 도를 기록한다. 마루타들은 초속 5m 강풍 속에서 얇은 옷을 입은 채 들것 위에 반듯이 누워 맨 발, 젖은 신발, 젖은 장갑, 음주, 공복 등 갖가지 상황에 따른 실험대상이 됐다. 일본군들은 마루타 인체의 반응과 변동상황을 시간대별로 기록한다.

1940년 이후 매년 최소 3천여 명 희생…냉동실험·진공실험 등 잔인함 극치

   
▲ 731박물관 지하에는 당시 독가스탄 노출에 따른 생체 피해를 측정하기위해 방독면을 착용한 마루타 모형들이 쇠창살속에 갖힌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섬뜩하게 하고 있다.
진공 실험은 유리관 속을 서서히 진공으로 만들어 살갗이 근육과 분리되고 눈알이 튀어 나온 뒤 마지막으로 인체의 심장이 터져 숨지는 순간을 기록에 남겼다. 생체 총기 관통은 수 백 개의 쇠 구슬 파편이 든 폭발물을 터뜨린 뒤 인체를 관통하는 상태를 실험한다. 세균 실험을 위해 전달 매개체로 쥐, 뱀, 곤충 등 움직이는 생물을 활용했으며 철장 속에 이들을 배양했다. <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가 2001년 12월 생존한 731부대 일본군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생존자의 증언은 이렇다. “직접 5명의 건강한 중국인을 ‘재료’로 페스트균 실험에 참가했다. 중국인 5명 가운데 4명에게 세균감염 예방백신을 주사한 뒤 또다시 페스트균을 주사했다. 한달 뒤 혈액을 채취해 화학검사를 한 결과 백신을 주사하지 않은 사람이 먼저 발병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인체 해부를 했고 필요로 하는 장기를 적출 했다. 또 중국인이 잠이 들면 한시간 동안 맹장을 적출 하는 실험을 했다. 그 뒤 톱으로 뼈를 자르고 기관지를 절단하는 실험을 했다.이 중국인은 해부를 하는 동안 신음소리를 멈추지 않았고 심장에 공기를 주사하는 실험을 몇 차례 진행하자 비로소 죽었다.”
 
   
▲ 일본군들은 ‘마루타’들을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한뒤 숨질 경우 화장터에서 쓰레기태우듯 소각처리했다. 일본군들은 패망시 범행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실험 장비 등을 폭파한뒤 도주했다. 현재 731 부대 부지인 ‘침화일군제731부대유지’(侵華日軍七三一部隊遺址)에는 부서진 화장터 일부가 그대로 서 있다.
이런 만행은 731 부대 내 실험실에서만 저질러지지 않았다. 개발된 생화학무기들은 일반 민간인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실제 일본군은 중국 내에서 생화학탄을 실험했다. 페스트균의 전파로 인한 피해지는 총 8곳에 이른다. 1940년 10월에는 난징의 1644 세균전 부대와 함께 중국 닝보(寧波)에 페스트균을 대량 살포하여 100명 이상을 사망하게 했다. 1941년 봄에 후난성(湖南省)의 한 지역에 페스트 벼룩을 공중 살포해 중국인 400여명을 희생시켰다.  1940~1944년 당시 저장(浙江)성에 디프테리아, 페스트, 탄저균 등 화학탄 3만여 개를 저장했다는 기록도 발견됐다. <베이징 칭녠바오>(北京靑年報)는 2003년 9월 한 주민을 인용해 “당시 일본 군의들이 실험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페스트에 걸린 백부의 주검에서 내장을 꺼내 그릇에 담아 가져갔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군은 1938년~1945년까지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에서 생체 세균실험을 한 사실이 2001년 7월 새로 드러났다. 일본군 세균부대는 세균실험을 위해 약 1천명을 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 민간인들 상대 실험도…일본, 중국인 유족들 등 정부차원 배상 거부

731망령의 그림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03년 8월4일에는 치치하얼(齊齊哈爾)에서 독가스탄이 터져 4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폐품수집상이 쇠톱으로 공사현장에서 캐낸 5개의 금속통중 한 개를 절단하다 폭발했다. 리구이전(당시 33살)은 온몸에 겨자탄을 뒤집어 쓴 채 화상을 입는 중상 끝에 숨졌다. 당시 사건은 또다시 중국인들의 공분을 샀다. 일본은 패망 시 남은 무기를 중국 땅에 묻고 도주했다. 일본인들이 대륙 땅에 버린 포탄은 20만발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치치하얼 포탄은 그중 하나며 더구나 화학탄이다. 독가스로 첫 사망자가 발생하자 중국 네티즌들은 일본 상품 불매와 보상 촉구 운동을 벌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731의 생체실험 정보가 그대로 미국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종전 후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부대원들은 세균전 연구결과를 모두 미군에 넘기는 조건으로 전범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면책됐다. 미국은 일본의 연구 성과물을 고스란히 입수한 셈이다. 이 생화학무기는 약 5년 뒤인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 나타났다. 731 박물관쪽은 당시 미국이 화학탄을 북한 땅에서 실험한 의혹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일본 법원은 2002년 8월 생체 실험장 ‘731부대’가 세균전을 벌인 사실을 57년 만에 처음으로 인정했다. 법원은 중국인 유족 등 180여명이 제출한 배상과 사죄 청구소송에 대해 731의 존재를 밝혔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배상은 거부하고 있다. 일본 법정은 헤이그 조약이 개인의 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전후 일본에서 국가 배상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사항은 국가에 배상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전쟁은 인류 공멸의 길…731부대 희생자들의 ‘혼’ 지금도 ‘평화’ 외쳐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대량살상무기 개발로 삼았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제국주의의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침략적’ ‘비인도적’이다. 731부대의 인체 실험과 이라크 전쟁은 이를 반영한다. 일본이 ‘대동아 공영’(大東亞共榮)을 명분으로 내걸고 침략전쟁을 감행했으나 패망했다. 미국은 ‘반 테러와 세계평화’를 내걸었으나 반 인권적인 살상과 학대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2004년 5월 폭로된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에서의 포로들에 대한 성 학대 등 비인간적인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은 731 유적지를 세계 유산으로 신청해놓고 있다. 731 유적지는 세계 전쟁사상 최대 규모의 세균 전쟁 유적지다. 중국 당국은 특유의 역사 문화자원으로 애국주의 교육과 세계 반 파시즘 교육의 기지로 삼고자 한다. 731부대는 길이 보존돼야 한다. 당시 희생된 ‘마루타’들이 세계를 향해 ‘전쟁 반대’와 ‘평화’를 목청껏 외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