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가 조선일보 초청으로 조선일보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강연회를 가져 관심을 모았다. 노 당선자는 지난 11일 특별강연에서 "조선일보가 매사에 주장이 너무 세다"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사량과 기사가치 면에서 총선 이전과 이후가 너무 급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대해 최소한 독자들에게 설명은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선 노조는 강연 내용을 14일자로 발행된 노보에 게재했다.

노 당선자는 이날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김희섭)의 요청으로 조선일보 별관 2층 휴게실('조이')에서 이뤄진 강연에서 "조선일보가 너무 주장이 센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조선일보가 한국사회 변화의 흐름을 좀더 개방적이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정확하게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총선 전후 민노당 보도 급변…독자에 아무런 설명없어"

노 당선자는 "지난 4월15일 총선 혹은 4월2일 후보등록 이전의 조선일보 기사와 그 이후의 조선일보 기사에서 민노당 관련 기사가 (양적인 측면에서) 큰 대비가 된다"며 "이전의 경우 신문으로서 비판을 넘어 '민노당과 같은 당은 더 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민노당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닌가 느껴왔다"고 털어놨다.
 

   
▲ 조선노보-5월14일자
그는 "이 정도로 면 배치나 기사량이 바뀌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이런 (급격한) 지면변화에 대해 최소한 독자에게는 설명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과 조선일보의 관계에 대해 지극히 비정상적인 관계라며 개선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 당선자는 민주노동당이 조선일보와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데 대해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라며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넘어가기를,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쌍방이 더 적극적이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며 이제 적극적인 모색을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에서 강연하면 잘해야 본전"

자신의 견해와 다른 이견이 당내에 있다는 것도 언급했다. 그는 "(민노당 내에는)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와 논조에 반대가 있으며, 주변에는 피해 의식이 강한 것도 있다"면서 "문제 의식의 뿌리에는 조·중·동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함께 있는데 왜 하필 중앙과 동아는 놔두고 조선일보만 거부하냐, 그게 모순이란 것도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강연한다고 할 때 '잘해야 본전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며 "말 많은 사회에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을까, 어떤 분은 본전을 건지기 힘들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더 가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편집권 독립, 소유 경영 분리 자본주의 위배 안돼"

노 당선자는 언론개혁에 대한 입장도 내비쳤다. 노 당선자는 "아직 구체적으로 수치 하나하나까지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 독립의 문제 이런 것은 언론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하며 사회적으로 강제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이것이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영향력에 비춰볼 때 필요하며 자본주의 정신에 배치되는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는 여론독과점 금지에 대해서는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과연 몇 프로 몇 프로로 구획을 정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시장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신문을 둘러싼 미디어 환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붉은 악마와 촛불 시위, 이번 탄핵을 통해서 젊은 세대일수록 방송과 동영상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봤다"며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여파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 외에도 매력적인 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에 (신문이)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신문의 지위와 역할은 변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지금보다 심층화 고급화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한 우리 신문도 특정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노 당선자는 "우리나라 신문들도 미국처럼 특정 정당 후보를 아예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게 더 낫다"며 "우리 신문이 사실상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을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음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당선자가 조선일보에서 강연한 내용을 조선 노조가 노보에 게재한 <"조선은 매사에 주장 강해…변화의 흐름 읽어야">라는 글 전문.

조합은 지난 11일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의 노회찬 국회의원 당선자를 초청, 회사 정동별관 2층 휴게실 ‘조이’에서 특별강연을 가졌다. ‘나와 조선일보’란 주제로 오후 7시30분부터 2시간 이상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70여명의 조합원이 참석했다. 노 당선자는 조선일보에 대한 소감과 개인적 인연, 민노당의 진로 등에 대해 강연했다. 앞서 그는 조합의 강연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조선일보를 봐온 ‘30년 독자’라고 했다. 조선일보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강연 이후 계속된 질의응답의 분위기도 뜨거웠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10여명의 기자들과 회사 근처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겨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강연 내용을 미디어팀 신동흔 조합원이 정리했다. 내용이 많아 주로 조선일보와 관련된 것을 중심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노 당선자는 조선일보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많이 할 수 있지만 괜한 오해를 살까봐 자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일보가 너무 주장이 센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방송에서 물리적으로 뭔가를 하는 것처럼 신문과 일전(一戰)을 불사하는 듯한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그런 게 조선일보에서도 가끔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는 “조선일보가 한국사회 변화의 흐름을 좀더 개방적이고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정확하게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그는 “지난 4월15일 총선 혹은 4월2일 후보등록 이전의 조선일보 기사와 그 이후의 조선일보 기사에서 민노당 관련 기사가 (양적인 측면에서) 큰 대비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의 경우 신문으로서 비판을 넘어 ‘민노당과 같은 당은 더 크면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민노당이 자라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게 아닌가 느껴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정도로 면 배치나 기사량이 바뀌기까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이런 (급격한) 지면변화에 대해 최소한 독자에게는 설명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이 조선일보와 공식 인터뷰를 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과 관련,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관계”라면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로 넘어가기를,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쌍방이 더 적극적이고 좋은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며 이제 적극적인 모색을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 내에는)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와 논조에 반대가 있으며, 주변에는 피해 의식이 강한 것도 있다”면서 “문제 의식의 뿌리에는 조·중·동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함께 있는데 왜 하필 중앙과 동아는 놔두고 조선일보만 거부하냐, 그게 모순이란 것도 알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강연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잘해야 본전이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분은 ‘다섯가지 점에서 걱정이 된다’고 지적해 놀랐었다”(웃음)고도 했다. 그는 “말 많은 사회에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을까, 어떤 분은 본전을 건지기 힘들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더 가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조선일보를 보는 이유에 대해 “동의하든 하지 않든 조선일보의 논조는 내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볼 필요가 있고, 품질에 있어서도 제일 낫다는 생각에서 조선일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신문에서 민노당에 관한 기사가 더 늘어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전선(戰線)과 민노당과 나머지 보수 정당 사이의 전선 두 가지가 있다”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사이의 전선이 뜨겁고 강한 전선이며 신문 뉴스의 80%가 이곳에서 발생하지만, 앞으로는 민노당과 나머지 보수정당 사이의 전선을 더 강하고 지배적인 전선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활동의 방향이자 바람”이라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우리나라 신문들도 미국처럼 특정 정당 후보를 아예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신문들이 사실상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안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게 아니냐”고 말했다.

논의는 언론 개혁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수치 하나하나까지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소유와 경영의 분리, 편집권 독립의 문제 이런 것은 언론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하며 사회적으로 강제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는 “이것이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영향력에 비춰볼 때 필요하며 자본주의 정신에 배치되는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과연 몇 프로 몇 프로로 구획을 정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해선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서 “시장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30년 독자’답게 노 당선자는 인터넷과 방송, 무선인터넷 등의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한 환경에서 신문의 변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붉은 악마와 촛불 시위, 이번 탄핵을 통해서 젊은 세대일수록 방송과 동영상에 의존적이라는 것을 봤다”며 “그런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여파를 중요하게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신문 외에도 매력적인 볼거리가 많아졌기 때문에 (신문이)이들과 경쟁해야 한다”며 “신문의 지위와 역할은 변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지금보다 심층화 고급화로 갈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그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문은 신문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들을 늘여가야 하는 게 아닌가 본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토요일의 조선일보 북 섹션을 상당히 많이 본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의 정책과 향후 진로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최근 정당 지지율이 불쑥 올라갔지만 민노당의 정책과 이미지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인 반면 정책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이 많다”며 정책 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살려갈 계획임을 시사했다.

민노당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21세기 정치권의 최고 히트 상품은 민노당이 될 것 같다”며 “집권을 할 수 있을 지 장담하긴 힘들지만 향후 5년 이내로 전혀 새로운 질과 성격의 정당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의는 자연스럽게 민노당의 정책과 비전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는 “민노당의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경제가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 나눠먹을 파이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선, “주위에서 ‘민노당의 주장이나 정책이 이상적일 순 있어도 현실성은 없다’라는 얘기를 하는 분이 많은데, 저희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하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저희도 ‘혹시 그렇지는 않을까’고민하는 편”(웃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은 반(反)성장론이 아니며, 분배를 통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선 왜 진보진영에서 침묵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는 평화와 평등(기회균등), 인권이라는 진보적 지향들끼리 충돌과 모순이 있다”며 말을 풀어 나갔다.

그는 “평화 관점에서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야 하고 북한에 대해 간섭을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있는 것은 민노당같은 세력이 아닌가라고도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민노당 강령은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대안이 아니란 걸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북한 정부를 없애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올바른 방식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북한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 문제와 관련해선 남과 북의 주도성이 지금보다 강화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견해를 전제로 “북한 정부가 계속해서 ‘한국이 사실상 미국의 식민지 아니냐’는 식으로 힘의 절대적인 결정권이 미국에 있다는 이유로 남한을 제쳐놓고 미국을 상대하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남쪽도 미국에 위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남측이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노동운동가로 불려지길 희망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노당은 이제 운동권에서 탈피했으며, 민노당은 운동권에서 멀어질수록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노당을 만든 것 자체가 80년대 식 운동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진보 정당의 활동을 통해 권력에 접근하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얽힌 개인사를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때인 1970년부터 조선일보를 구독했으며, 국어 실력을 높히기 위해 사설을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읽고 있다고 했다. 특히 “감옥 안에서도 조선일보를 봤고, 조선일보 안보기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을 때도 봤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결정적 분수령이 됐다고 밝힌 10월 유신의 경험에서도 조선일보와의 인연을 갖고 있었다. 1972년 10월17일 유신이 발표되던 날, 그는 고등학생 신분으로 광화문으로 달려나와 현장을 확인했다. 당시 국회(현 서울시의회) 앞의 장갑차와 광화문 앞의 탱크를 눈으로 확인했다. 집에 가는 길에 사서 펼쳐 본 조선일보 가판에서 ‘국회 해산’이던 제목이 시내판에서 ‘10월 유신 선포’로 바뀐 것을 보고 그는 처음으로 신문이 판갈이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노 당선자는 “이날 가판과 시내판 신문 두 장은 지금도 집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고 재학 시절 편집국으로 직접 들어가 당시 선우휘 편집국장에게 강연을 요청할 당시의 일화도 이야기 했다. 그는 “내딴에는 ‘너희가 요즘 나라가 어떻게 되는 지 아냐’면서 친구들에게 무게를 잡으면서 선우휘 국장을 초청했는데, 정작 강연에서는 거창하고 심각한 시국강연 대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한다’고 지당한 말씀만 하시는 바람에 학급 친구들에게 낯을 들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기자는 지금도 제가 선망하는 직업이니, 자부심을 갖고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주시길 바란다”며 강연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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