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2.17 ‘사교육 경감대책’이 발표된 후 전국의 입시학원은 앞다투어 아주 신속하고도 발빠르게 ‘EBS수능 보충강의’라는 타이틀의 강좌를 개설했다. 대책 없는 사교육 금지가 또 다른 사교육을 낳고 학부모들의 지갑은 다시 한번 입시학원들을 향해 열리고 있다.

필자가 사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현직 강사이기에 교육현장에서 체험하고 있는 생생한 이야기를 하나 할까한다. 지금 필자의 제자인 A고교생은 하루 평균 14시간 정도를 학교에서 보낸다. 방과 후 학원에서 2시간, 집에 도착하여 심야 ‘EBS 수능 방송’을 1시간 시청 후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에는 학원에서 ‘주말종합반’을 수강한다.

이 학생과 얼마 전 입시 상담을 하면서 필자는 마음이 무척 아팠다. 상담의 내용은 “하루에 잠을 평균 3시간 정도 밖에 못 자니까, 학교에서 종일 비몽사몽간에 수업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잠을 실컷 잤으면 좋겠는데 학원의 종합반을 수강하지 못하면 뒤쳐질까봐 불안해서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고통받고 있는 상황은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교 교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월27일 보충수업 도중 쓰러져 사망한 한 고교 교사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추가 근무로 인한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일선 교사들도 고초를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교육 정책당국자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방과 후 수준별 보충학습’에 서울지역에서는 학원강사 초빙을 사실상 금지시키겠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그 이유를 공교육 교사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실제 학원 수강생들과 상담해보면 한결같이 일선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은근히 보충학습을  수강하지 말 것을 간접적으로 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사교육 대책인지, 교육 부총리를 위시한 정책당국자들은 시행초기인 지금 꼼꼼히 되짚어 보기 바란다.

우리의 공부하는 자녀들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진정 공교육을 살리려면 그 공교육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의 행정 잡무 해소 등으로 대변되는 실질적인 처우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학벌 위주의 사회를 반대하고 다양한 특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인정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공교육을 구하는 길임을 교육 정책 당국자들은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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