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편집국 간부들을 사업·제작국 등으로 발령을 낸 데 대해 노동조합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편집부 강상대 부국장을 제작국 국장대우 부국장으로, 김광현 독자서비스센터장을 광고국 부국장 겸 광고영업부장으로, 최장원 사회부 차장대우를 사업부 차장으로 전보 발령했다. 홍휘권 종합편집부장은 퇴사해 조선일보의 일부 섹션 편집을 대행하는 김에디터닷컴 사장으로 갔고 방준식 스포츠레저부장도 스포츠조선 부국장으로 옮길 예정이다.

조선일보 노조(위원장 김희섭)는 26일 발행한 노보에서 "회사측은 2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편집국에서 땀을 흘린 기자들을 전혀 생소한 곳으로 발령하면서 일부 당사자에겐 이 사실을 공표 2∼3시간 전에 전격 통보했다"며 "자신이 왜 그리로 가야 하는지, 회사측이 자신을 그리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당사자들은 알 도리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 조선노보 3월26일자 687호
노보에 따르면 한 고참기자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며 "회사가 진정 내게 다른 일을 맡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표를 쓰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간부는 "아, 이렇게 끝나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노보는 전했다.

부장급 이상 간부들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편집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한 때 동요가 일기도 했다. 또 회사가 한 부서의 부·차장을 한꺼번에 계열사로 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타사의 간부급 인력을 스카웃하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에 불만을 표시하기 도 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정확한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느꼈을 서운함과 자존심의 손상, 이를 지켜보는 후배들의 허탈함을 회사에서 한번쯤 더 생각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편집국의 한 기자는 "앞으로는 체온이 느껴지는 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노보는 전했다.

회사측은 이번 인사에 대해 "모든 기자들이 국장·부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회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고 여기엔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는 복안도 깔려있다"고 노조는 전했다.

다음은 노보에 실린 글 전문이다.

체온이 느껴지는 인사가 되야 한다

회사는 지난 24일 편집국 내 소폭 인사를 단행했다. 전격적으로 이뤄진 이날 인사에서 회사는 일부 간부와 고참 기자들을 계열사 임원이나 비(非)기자직군 등으로 발령했다. 인사는 회사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그 절차와 시스템에서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회사측은 20년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편집국에서 땀을 흘린 기자들을 전혀 생소한 곳으로 발령하면서 일부 당사자에겐 이 사실을 공표 2~3시간 전에 전격 통보했다. 자신이 왜 그리로 가야하는지, 회사측이 자신을 그리로 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당사자들은 알 도리가 없었다.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던 한 고참 기자는 “회사가 진정 내게 다른 일을 맡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표를 쓰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간부는 “아, 이렇게 (기자 생활이)끝나나…”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같은 모습을 지켜보는 후배들의 허탈함도 더할 수 밖에 없었다. 부장급 이상 3명의 간부를 한꺼번에 떠나보낸 편집부의 기자들 사이에선 한 때 약간의 동요가 일기도 했다. 또 회사가 한 부서의 부·차장을 한꺼번에 계열사로 보내려하면서 한편으론 타사 간부급 인사를 스카우트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을 놓고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인사 직후 편집국 건물 휴게실 ‘조이’에서의 화두는 “나 (기자로 일할 날이)몇 년 남았지”였다고 한다.

회사측은 이에 대해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기자들을 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기자들이 국장, 부장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회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분야에서 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여기엔 인사 적체를 해소하려는 복안도 깔려 있다.

그러나 회사측이 진정 이같은 뜻을 가지고 있었다면, 최소한 당사자들에게 미리 취지를 설명하고 그들이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줬어야 했다고 조합은 본다. 20여년 일한 곳을 떠나 다른 일을 하라면서 “지금 답을 하라”고 할 때 선뜻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특히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정확한 내용도 모르는 상황에서 당사자들이 느꼈을 서운함과 자존심의 손상, 이를 지켜보는 후배들의 허탈함을 회사에서 한번쯤 더 생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이에 대해 “일부 부서의 인사가 계획대로 매끄럽게 잘 안되는 와중에 자꾸 구구한 억측이 나왔고, 그래서 급하게 발령을 내다보니 당사자들에게 미리 생각할 여유를 주지 못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 직후 회사측이 당사자들과 해당 부서를 상대로 전후 배경을 설명하면서 편집국 기자들의 허탈함은 조금씩 삭고 있다. 그렇다보니 왜 이런 과정이 먼저 이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짙게 남을 수 밖에 없다.

회사측은 그간 누누이 인화와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조해왔다. 편집국의 한 조합원은 “앞으로는 체온이 느껴지는 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제에 회사측이 인사 절차에 대한 문제와 인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대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