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12일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해 언론사 간부들은 국가적 혼란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 한국 민주주의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언론사들은 이번 사태를 맞아 회의를 앞당기고 호외를 발행하는 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점심식사도 거른 채 평소보다 회의를 앞당겨 열고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심했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는 이날 낮 12시부터 회의에 들어갔고, 조선일보도 평소보다 회의시간을 1시간 앞당겼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는 각각 <노대통령 탄핵안 가결> <노대통령 탄핵 가결>이라는 제목의 한면짜리 호외를 내 서대문 일대와 여의도 일대 및 관공서에 뿌리기도 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신문 호외 이외에 타블로이드 판형의 벽보를 회사 부근에 게시해놓기도 했다.

석간 헤럴드경제는 광화문 일대에서 <헌정사상 첫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제목의 1면 기사가 담긴 이날짜 신문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문화일보는 인쇄중인 윤전기 세우고 탄핵소식 싣기 위해 12시30분에 마감하고 늦게 신문을 발행했다.

언론사 간부들은 현 상황이 나라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을까 우려를 표명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의 한 간부는 "한마디로 우리 정치는 코미디"라며 "원인제공을 누가 했느냐를 떠나서 양쪽이 오기 정치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고 비판했다.

서울신문 편집국 고위간부는 "일단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 한마디로 구세력과 신세력이 갈등을 빚어오다 구세력이 신세력을 비튼 것"이라며 "총선에서 국민들이 어떤 세력에 손을 들어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A언론사 편집국 고위 관계자도 "참 할 말이 없다"며 "나라가 한동안 혼란스러울 것 같아 걱정"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후 헌법재판소가 판단하겠지만 (헌재) 다수 의견이 탄핵안 통과를 시키지 않는다는 것으로 안다"며 "탄핵안 통과로 인해 향후 총선의 결과가 주목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 김기홍 정치부장은 "정국이 예측 불허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탄핵안 가결이 대외신인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대통령의) 잘잘못을 떠나서 (탄핵안 가결은) 세계적인 망신"이라며 "대외신인도에 당장 큰 변화는 없겠지만 이미지는 많이 훼손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부장은 또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내부적으로 혼란스럽지 않게 (국정을)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총선을 앞두고 결국 하극상까지 왔으니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명확한 판단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김 부장은 오늘 새벽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국회 새벽 기습에 대해 "세상이 어느 때인데 참 한심한 일"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YTN 강갑출 보도국장은 "국정 중단이 안되도록 총리실에 중계차를 보내는 등 국익을 위해 보도할 뿐"이라며 "나라가 혼란스럽지 않도록 후속보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국장은 또 "이번 일로 외국에서 우리를 좋게는 바라보지 않을 것"이라며 "가능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훼손이 덜 되도록 언론이 보도를 잘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B언론사 편집국장은 "우리 정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대통령도 국회도 그 수준"이라며 "탄핵이 가능한 사안도 아니었는데 결국 선거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다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고 지적했다.
 
이 국장은 "헌법재판소가 빨리 결정을 내려서 정국을 안정시키고, 대통령이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시키겠다고 하니 총선도 순조롭게 치러서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할 것"이라며 "참담한 사태지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이게 탄핵거리가 되는지 의문이었는데 결국 양쪽 다 타협할 줄 모르다가 이런 사태를 빚은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정국이 돌아갈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직접적인 요인이 11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의 자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민일보 편집국 고위간부는 "안타깝지만 야당도 법대로 절차를 밟은 것이고, 노 대통령도 사과를 안 하고 탄핵안 가결 움직임에 대해 정면 승부하겠다고 한 것이서 탄핵에 대해 문제 삼기 어려울 것 같다"며 "어제 남 사장의 자살과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이 가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부 간부는 민주주의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는 "가결된다는 상황을 쉽게 예상하진 못했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당황할 일은 아니다"라며 "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50년간 계속돼온 한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특히 현재의 권력구조 시스템의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며 "대통령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도 문제지만 의회가 사유도 불분명한 것을 가지고 수를 밀어붙여 탄핵에 이르게 하는 식의 시스템이 이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데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 대해 양비론의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민일보의 한 정치부 간부는 "정치실종의 연장이다. 대통령도 어제 회견에서 탄핵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국회가 여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가결한 것도 문제지만 대통령이 나서서 그 문제를 봉합했어야 한다고 본다. 서로 장난치다 애밴다는 격으로 서로 과도하게 고집피우고 설마설마하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는 사태의 책임에 대해 "원인은 전적으로 상황을 이렇게 키워온 노대통령에 있는 것으로 오늘 사과를 뒤늦게 했지만 속도조절에 실패했다"며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언론이 한국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면도 관심을 갖고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큰 혼란을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서울신문 편집국 고위간부는 "국정에 공백은 없을 것이라 본다. 70 80년대라면 엄청난 정치적 혼란이나 군부에 의한 쿠테타 이런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정치적으로 비교적 안정되어 있어 그런 혼란은 없을 것이라 본다. 국무청리가 행정력이 있다는 점도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편집국 간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지켜봐야할 것"이라며 "탄핵이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요한 문제인 것 같다. 외신들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판다는 둥 주가가 폭락하고 경제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큰 혼란은 없을 것이며, 국민들의 정치수준이 높기때문에 당분간 진통은 있겠지만 큰 혼란은 없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B언론사 편집국장도 "우리 편집국이나 시민들이나 담담하다. 예전 같으면 큰일이라고 난리가 났을 법한 일인데 일부 과격한 소수를 제외하면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언론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곧 평상심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문팀(조현호·이선민·정은경·김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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