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창간 84주년을 맞은 조선일보의 향후 진로에 언론계 안팎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외부의 비판 뿐 아니라 조선일보 내부에서도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방상훈 사장은 이런 안팎의 기류를 감안해 5일 창간 84주년 기념식에서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조만간 조직과 시스템 개편 등 내부 정비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움직임은 조선일보의 사회적 의제 설정력과 여론 주도력이 과거에 비해 현격히 약회되면서  '보수' 계층을 결집하는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체 평가와 맞물려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말 조선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노보에 기고한 글에서 "2000년대에도 우리 사회와 민족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준비가 돼있지 않다"며 '새로운 보수'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조선일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화와 토론의 부족을 지적하며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시스템 전반의 문제를 재점검하고 생존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부 토론 부재 시스템 개선 시급"

조선일보의 일부 젊은 기자들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보나 노보를 통해 조선일보의 권위적인 조직체계와 시스템, 내부 의사소통의 부재 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해 6월13일자 사보에는 공채 42기들이 수습기자를 마치면서 <"반대편 목소리도 겸허히 귀기울여야">라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조선일보의 '일방적 의사소통 구조'와 '닫힌 보수 우익이라는 외부의 평가',  '강자의 편에만 서는 논조' 등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어 지난해 11월7일자 노보는 <"말 못하고, 막히고…미치겠다">는 글을 통해 기자와 데스크·국장간 대화부재, 일방적인 지휘체계 등 조선일보의 내부 문제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또 지난 1월16일자 노보에서는 조선일보 출신 대학교수 권만우씨가 <"회사 떠나려는 사람 많아…">라는 글에서 '계보에 따른 인사'와  '겸손하지 못한 기자들' 등 조선일보의 내부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조선 내세우지 않고도 취재할 수 있는 능력키워야"

참여정부 출범 뒤 정부부처 등 주요 이슈 생산영역의 접근과 취재가 잘 되지 않는 점도 내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과거에는 '조선일보 기자'라고 말하면 웬만큼 통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며 "기자들도 야성을 키워야 하고, 데스크들도 변화한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사회의 변화를 관망만 할 게 아니라 변화를 수용해 우리(조선일보) 것으로 만드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당장 뭘 어떻게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발전과 비전을 위한 구체적 논의가 현재 진행중"이라고 덧붙였다.

'친일신문' 외부비판 "수용할 것은 수용"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도 조선일보의 변화를 압박하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법안 통과로  일제치하 조선일보의 친일논조에 대한 사회일반의 문제제기가 더욱 거세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일보 내부에서는 '친일신문'이라는 외부 비판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객관적인 조사가 이뤄질 경우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친일신문이라는 외부 비판에 대해 '실제로 우리가 얼마나 친일논조를 보였는지 한번 검증 해보자는 의미에서 지난해 11월 당시 기사를 포함해 각종 자료를 조사했다"며 "이미 나온 얘기 이외에 새로 나온 것은 없지만,  진상규명법에 따라 객관적으로 조사가 진행돼 결과가 나온다면 수용한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3월 말 방우영 당시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부터 출범한 방상훈 사장 체제가 입지를 굳히고 있는 점도 내부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는 요인이다.

방우영 회장의 일선퇴진과 함께 류근일·김대중·안병훈 등 조선일보 논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사들이 퇴직 또는 2선으로 물러남에 따라 경영과 편집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조선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내부의 큰 불만 요인 중 하나가 류근일·김대중 등 원로 필진들이 지면에 너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선일보 내부에서는 원로 필진들의 입김이 강했던 논설위원실과 편집국 사이에 미묘한 입장 차이가 감지되기도 한다.

'정치권력이 코드가 맞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동원해 (조선일보와 같은) 독립언론에 총공격을 가하고 있다'는 주장을 담은 창간 84주년 사설에 대해 편집국 기자들이 비교적 냉담한 반응을 보인 까닭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창간 기념 사설에 대해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그동안 기자협회보 등 외부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나, 최근 기자들 내부의 분위기와는 좀 배치되는 것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사설이 나오고서야 알았다"며 "전적으로 논설위원실에서 작성한 것으로 일체 간섭이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안팎으로 변화 요구를 받고 있는 조선일보가 향후 어떤 진로선택을 할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방상훈 사장은 5일 창간기념사를 통해 조선일보의 변화 방향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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