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들이 부천 초등생 사망사건 보도를 너무 성급하게 내보내  경찰 수사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확한 확인 없이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을  범인처럼 기사화해 인권을 침해하거나, 증거가 확보돼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수사발표를 독촉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것이다.

   
▲ 경기 부천남부경찰서 안재경 서장이 지난 18일 남부서 강당에서 "지난달 30일 변사체로 발견된 부천 초등생 2명을 죽였다고 자백한 용의자가 있어 조사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적인 사례가 16세 소년 박모 군의 경우이다. 부천 남부경찰서(서장 안재경) 수사본부는 지난 18일 오후 2시 조사중이던 박군의 자백을 받아내 긴급체포했다. 하지만 박군이 진술을 번복하고 목격자의 진술내용과 박군의 머리모양 등이 일치하지 않아 19일 귀가시켰다.

이 과정에서 조간신문과 방송은 각각 19일자와 18일 저녁 '경찰이 중학생 박군을 용의자로 보고 검거했다'고 앞다퉈 보도했다가 19일 경찰이 박군을 풀어주자 20일자엔 '무리하게 수사했다'고 일제히 경찰을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부천 초등생 살해 용의자는 중학생?>(경향 19일자) → <실적 '강박'에 졸속수사 '망신살'>(20일자 사회면 톱)
<부천 초등생 살해 중학생 소행?>(국민) → <진술 의존 '무리한 수사' 논란>(20일자 사회면톱)
<"혼자서 둘을… 가능했을까">(동아) →<중학생 한마디에… 무리한 수사>(사회면 톱)
<부천 초등학생 살해 중학생 용의자 검거>(세계) → <물증없는 무리한 수사논란>(20일자 사회면 톱)
<'부천 초등생 살해' 중학생이?>(서울) → <성급한 경찰>(20일자 사회면 톱)
<부천초등생 살해사건 중학생 용의자 검거수사>(한국) →<물증없이 자백만 의존 경찰 무리한 수사논란>(20일자 사회면톱)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는 상대적으로 20일자에는 기사를 작게 처리했다.

<부천 초등생 살해범은 중학생?>(조선) → <부천 초등생 살해혐의 중학생 귀가조치>(20일자 단신처리)
<경찰, 중학생 용의자 조사>(중앙) → <부천 초등생 살해 중학생 용의자 석방>(20일자 1단)
<"부천 초등생 죽였다 중학생이 범행 자백">(한겨레) → <"형 의심받을까 거짓말"살해번복 중학생 석방>(20일자 사회면 2단)

이런 언론보도에 경찰은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학생의 진술밖에 없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미리 얘기했는데도 방송 등 일부 언론이 계속 치고 나오고, 일부 기자들이 '왜 붙잡아 놓고 숨기느냐'며 수사발표를 재촉해 어쩔수 없이 초기 단계에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한 수사본부 관계자는 19일 오후 "박군을 데려다 수사해보니 용의점이 드러나 자백을 받았지만 유력한 용의자라고 하기엔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기자들이 '왜 데려다 놓고 발표하지 않느냐, 은폐하는 것 아니냐'며 재촉해 서둘러 발표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A일간지 부천주재 기자는 "실제로 이번 사건의 경우 신문과 방송에서 공식적인 확인과 화면을 요구하며 수사발표를 공개하라고 경찰을 지나치게 압박한 게 사실"이라며 "이런 재촉 때문에 경찰이 서둘러 발표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수사본부 관계자도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언론이 무리하게 앞서 보도하다 보니 수사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물론 알권리도 중요하지만 언론을 통해 수사상 필요한 기초 증거들이 다 공개돼 실제 진범이 자신의 증거를 인멸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A일간지 기자도 "수사를 앞질러간 언론보도 때문에 수사가 진전되지 못한 측면도 있다"며 "박군을 긴급체포한 뒤 증거확보에 수사력을 모아야 하는데도 긴급체포 단계서부터 치고나오다 보니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신문은 언론의 이런 성급한 보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이례적으로 20일자 사설에서 "경찰 스스로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는데도 굳이 서둘러 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게다가 일부 언론에서 박군이 평소 불량배들과 자주 어울렸고, 허리띠로 친구들의 목을 조르는 장난을 많이 쳤다는 등의 내용까지 보도한 것은 너무 지나쳤다"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박군의 자백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을 싣는 등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전체적으로 박군을 범인으로 단정하는 듯한 방향으로 기사를 처리했다. 동아일보는 19일자 <용의자 가족 "미성년 연행" 반발>에서 "미성년자인 박군의 진술만을 믿고 범인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어린이청소년포럼 강지원 대표의 의견을 인용보도했다. 이에 대해 수사본부 관계자는 "우리는 박군을 범인으로 단정한 적이 없다"며 "10대의 자백에 놀아난 것이 아니라 자백 내용의 진위를 밝히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이 멋대로 만들어낸 용의자도 많다는 지적이다. 한 언론사의 부천주재 기자는 "문막집 사는 김모씨의 경우(4일자 보도) 경찰이 용의선상에만 올려놨는데도 언론들이 취재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범인인 것처럼 기사화했다"며 "언론이 용의자를 양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언론의 정도가 뭔지 되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성급한 수사발표를 부추긴 언론이 '무리한 수사' '성급한 경찰'이라는 비판을 자격이 있냐는 얘기다.

다른 부천 주재기자는 "경찰의 수사를 무리하다고 보는 것은 언론의 과장"이라며 "박씨를 조사한 내용은 모두 녹음과 녹화를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도 "녹음과 녹화도 해놨고, 부모나 가족에게도 24시간 이내에 모두 통보하는 등  절차를 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군 가족이 경찰에 했다는 항의도 사실은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했다는 게 경찰의 주장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박군의 가족이 수사본부로 찾아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묻는 도중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항의했는데도 19일자 언론들은 마치 경찰에게 항의한 것처럼 보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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