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858기 폭파사건의 사건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지난 3일 내려졌다. 사건 발생 뒤 지속적으로 당국의 조작 의혹을 제기해온 유가족측은 이 사건을 보도했던 언론에 대해서도 "사건의 실체와 진상규명 보다는 표피적인 현상을 다루는 데 그쳤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KAL858기가족회(회장 차옥정) 신동진 사무국장은 5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사건 초기에는 정부발표에만 의존해 오보를 쏟아냈고, 의혹이 제기된 뒤 언론의 관심은 사건의 진상규명 보다는 김현희에만 있었다"며 "심층적인 취재가 정말 아쉽다"고 밝혔다.

다음은 신동진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과 사건일지.


-사건기록 공개 판결이 내려졌는데.
"이를 계기로 17년 동안 유가족들이 고생하며 추적해온 사건을 전면 재조사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당시 언론의 역할은 어땠나.
"사건 초기 때는 엄청난 오보를 쏟아냈다. 사망자 시신이 한구도 발견되지 못하고, 아무런 증거가 흔적도 없었음에도 '기체가 발견됐다'는 식의 보도가 남발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자체적인 취재를 통한 진상규명은 소홀했다."

-KAL858기 가족회 등 유가족 활동이 시작된 뒤 보도는 어땠나.
"우리가 의혹을 제기하고 활동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된 데는 일본 언론에 의한 게 많았다. 사건에 대한 새로운 자료나 의혹이 제기된 것은 국내가 아니라 일본 언론에 의해 밝혀져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물론 지난해 연말 천주교 인권위원회 신부들이 성명을 낸 이후 언론에서도 한 때 관심을 갖긴 했지만 이 사건의 경우 다뤄져야 할 내용이 방대하다. 이 때문에 사건의 실체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현상만 보도하는데 그쳐왔다. 심층취재가 전혀 되질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김현희 사진이 조작됐다는 내용도 일본 언론을 통해 등장했다. 적어도 국민적 의혹을 풀겠다면 직접적인 확인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같다. 또한 무작정 김현희에만 매달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김현희를 만나려 하다보니 정작 당사자가 잠적하고 만 뒤에는 언론에서 관련기사는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주로 언론의 관심은 김현희에만 쏠려있다는 말인가.
"사건 초기부터 그랬다. 언론의 관심은 김현희에만 있었다. 노태우 정권 때 언론을 통해 나타난 김현희는 거의 연예인 수준이었고, YS 때는 '책 냈다' '안보 강연한다'는 등의 가십성에만 매달렸다. 그나마 지난 DJ 정권 때는 활동이 없으니 신문 지면에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다. 표피적으로 보도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자 관행이라고 이해한다 해도 이 사건은 그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번 판결에 대한 보도는 어떤가.
"5일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폭파시점에 대한 내용이 정부발표와 판결문 내용이 다르다는 점만 간단히 다루고 말았다. 조금더 관심이 있었다면 판결문만 자세히 읽어봐도 그런 내용은 찾아낼 수 있는데 좀 아쉽다. 어쨌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단순히 팩트 전달 뿐만이 아니라 사건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정부가 신속하게 정보를 공개할 수 있도록 촉구할 수 있도록 언론이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언론에 바라는게 있다면.
"검찰이 항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공개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언론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올해가 진상규명을 이루는 계기가 되는 해로 정할 수 있도록 언론도 도와 달라. 무엇이 맞는지를 추적하는 역할을 부탁드린다."

 

   
▲ KAL 858기 가족회원들이 지난해 12월19일 오전 서울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KAL858기 폭파사건의 진상을 밝혀줄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 연합뉴스

▲87년 11월29일: KAL858기 사건 발생. 29일 오후 2시1분 인도양 상공에서 KAL858기 실종, 방콕과 최후 교신 뒤 실종된 것으로 보고. 바그다드 아부다비 방콕 서울(8시 40분 도착 예정) 승객 115명의 생존 미확인.
△11월30일 오전: 정무 외무부 제2차관보 등 현지조사반 급파. 바레인측은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 수색, 육상수색작업 진전 없음. 관계당국 및 KAL858기 측 인도양과 뱅골만 상공에서 공중폭파 가능성 시사. 당시 홍콩측은 기체내부 문제로 추락가능성 시사, 미국측 역시 추락가능성 시사.
△12월1일: 아랍 에미레이트 주재 한국대사관, 남한 입국이 금지된 요주의 인물인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 2명이 바그다드에서 탑승하여 아부다비에서 내렸다고 정부에 보고, 검거. ‘하치야 신이치, 하치야마유미’ 연행 후 조사 중 음독자살을 기도했다고 발표.수색구조반은 추락지점인 밀림을 수색하였으나 수색작업 진전 없음.
△12월2일: 당시 청와대 비행기에서 내린 2명의 추정인물이 북한계로 추정언급, 대북한 안보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 지시. 정부 재판관할권과 신병인도 요청. (보통 국제범죄의 경우 범인 체포나라, 피해국의 순으로 재판관할권이 부여. 따라서 당시 신병인도는 바레인과 일본이 자신들의 관할권을 포기해야만 가능.)
△12월3일: ‘하치야 신이치’는 북한 스파이의 중요관계자로서 ‘미야모토 아키라’와 동일인일 가능성 시사. 이에 일본경찰은 ‘신이치’와 ‘아키라’는 다른 인물임을 확인.
△12월4일: 마유미 회복
△12월5일: 3명의 수사요원 파견, 바레인 수사 간접지원 및 정확한 신원과 행적 등 수사방향과 범인 인도 합의. 치안본부는 ‘미야모토 아키라’를 배후인물로 추정.
△12월7일: 바레인에서 사실상 수사 종결, 정부는 북한의 88올림픽 방해 책동으로 사건 분석.
△12월9일: 정부, 현지조사단 철수 결정(KAL858기는 실종 처리) 당시 KAL858기 유족,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침묵시위.
△12월11일: KAL858기 잔해로 추정되는 물체 발견. 방콕측은 신빙성이 희박하다고 반박.
△12월15일: ‘하치야 마유미’ 신병인도. 일본측 음성조사결과 ‘하치야 마유미’는 북경어권 출신. 즉, 조선족일 가능성 시사. 미국방성은 발견된 잔해추정물체가 KAL858기의 잔해가 아니라고 보고.
△12월16일: 대통령 선거 실시.‘하치야 마유미’ 신상확인 조사 본격착수(안기부 주관), 북한 테러공작임을 확증적으로 표현.
▲88년 1월15일: ‘하치야 마유미’, 김현희라는 이름으로 TV기자회견. 본인이 KAL858기 폭파범이며 북한 김정일의 사주로 88올림픽 방해, 선거분위기 혼란 야기, 남한내 계급투쟁 촉발을 목적으로 KAL858기를 폭파했다고 발표.
△1월21일: 미국, 대북한 제재조치로 테러국으로 단정. 북한외교관과의 교류지침 철회, 북한인의 미입국 제한 강화, 세계의 규탄유도를 위한 상징적 대응 발표.
△2월4일: 일본 조청련, 김현희의 자필선서문은 안기부의 조작이라고 기자회견. 미국, 88올림픽 개최시기에 맞추어 팀스리리트 훈련 실시에 대해 협의.
△2월11일: 한·일 정부 UN안전보장이사회 소집 요구, KAL858기 폭파사건 북한 규탄 논의.
△2월17일: UN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 거부
△2월22일: 북, IOC위원 경질.
▲89년 2월3일: 서울지검, 김현희에 대해 6차례 조사(88.12.2~89.1.23) 결과 발표. △살인죄 △항공기폭파치사죄 △국가보안법 적용하여 불구속 기소.
▲90년 3월27일: 대법원 사형선고
△4월12일: 김현희 극히 이례적인 특별 사면 조치
▲91년 6월2일: 수기 "이제 여자가 되고 싶어요" 발간, 사건 당시 진술과 80여곳 엇갈리는 내용 포함.
▲97년 12월28일: 김현희 전직 안기부 요원과 결혼, 개명. 행방묘연.

-출처: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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