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쓰이고 있는 것같지는 않으나, 아무튼 요즘 ‘화두’라는 말이 유행이다. 흔히는 주제라는 뜻쯤으로 쓰이는듯 하지만, 더러는 쟁점의 색깔을 담아 쓰이기도 한다. 선의 세계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역시 ‘화두’란 속의 세계에서도 잘 붙잡히지 않은 것인가보다. 누군가가 현대적 또는 세속적 ‘화두론’을 한바탕 펼쳐봄직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화두’를 말하고자 ‘화두’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화두’에 답하지 못해 답답한 선승처럼 답답한 일이 하도 많아, 그저 묻고 묻고 또 물어본다는 뜻을 숨김없이 밝히기 위해서다.

인상적으로 말한다면 언론 종사자들이 애용 또는 남용하는 ‘화두’라는 용어는, 상당히 무겁고 거창한 주제와 쟁점을 표현하는데 동원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제2건국’이랄지 빅딜’이랄지, ‘정계개편’이랄지, 그쯤은 되어야 ‘화두’의 반열에 끼여들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도 같다.

여기서부터 묻고 묻고 또 묻고만 싶은 나의 물음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모두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제2건국’은 그저 건국을 다시 한번 하기 위해서인가. ‘빅딜’이나 ‘정계개편’은 또 무엇을 위해서인가. ‘빅딜’은 오직 ‘빅딜’을 위해서, ‘정계개편’은 오직 ‘정계개편’을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누구나가 웃음을 던질게 뻔하다.

독일 헌법 제1조는 그들의 나라가 겨레의 기본인권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존립하는 것임을 선포한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국가가 구성된다는 그들의 선언은 두고 두고 머리와 가슴에 박혀든다. 우리의 헌법은 비록 다른 구조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기본권 조항들이 밝히는 국가와 인간의 관계는 그 비슷한 기조 위에 서 있다면 잘못일까.

그러나 현실은 그따위 ‘환상’의 세계와는 무관한가 보다. 거창한 ‘화두’들이 언론의 화면과 지면들을 장식하는 와중에서도, 인권유린과 용공조작이라는 ‘반국가’‘반헌법’의 작태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구태여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은, 오늘은 오로지 묻고 묻고 또 묻는 자리에 머물고 싶어서이다.

이를테면 저 부산·울산지역의 민주·노동관계 인사들을 대량 구속했다는 이른바 ‘한민전 영남위원회’사건도 물음의 행렬을 충동하는 방아쇠가 된다. 울산 동구청의 민선 구청장을 비롯한 연루 인사들은 물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경찰은 그들이 남한의 사회주의화를 위해 지하혁명조직을 결성하고 반국가 활동을 펼쳐왔다고 지목한다. 김정일 보위투쟁도 벌였다고 말한다. 아직은 사법의 판단이 내리지 않았으므로 누구도 속단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인가. 의문을 더욱 자아내는 것은 경찰의 작태이다.

우선 지하혁명 조직의 이름도 뻔질나게 바뀌어진다. ‘반제청년동맹’‘반제청년동맹중앙위원회’(위장명‘동창회’)‘한민전 산하 영남지역 위원회’라고 부르다가 어느덧 ‘조선노동당 영남지역당’ 또는 ‘조선노동당 남부지역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몇년동안의 추적끝에 붙잡아냈다면서도 이름조차 확정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인가.

헷갈리는 이름의 문제를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더욱 가관이며 더욱 알 수 없는 사태는 그뒤에 이어진다. 경찰은 구속인사들도 참여해서 벌였던 북한동포돕기운동을 ‘김정일 보위투쟁 행사’로 몰아친다. 김정일 보위투쟁을 위해서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벌이고, 거기서 모은 돈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으로 보냈다는 뜻이리라.

백보를 양보해서 같은 북한동포 돕기운동이라고 할지라도, 그런 뜻을 담고 참여한 이들이 있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김정일 보위투쟁으로 직결시킬 수 있는 것인가. 북한동포 돕기운동에 나섰던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분노를 삭이며 기자회견의 자리도 마련하고 성명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땅의 언론은 좀처럼 그들의 분노와 이 사건의 내막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의 일은 ‘화두’의 반열에도 끼일 자격이 없다는 것인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이른바 ‘동창회 사건’이라고도 속칭되는 그 사건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유린 사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은 압수수색영장도 없이 집안을 마구 뒤지고 기물을 파괴하고 물건을 훔쳐갔다고도 한다. 중병 피의자의 치료도 외면하며 부부의 구속으로 어린 아이를‘고아’의 신세로 전락시켰다고도 한다.

때문에 부산·울산지역은 물론 전국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대통령께서는 이 불법사태를 알고 계십니까?” 그러나 대통령은 물론 언론도 묵묵부답이다. 인권은 여전히 ‘화두’의 자격을 못 갖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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