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언론들이 2일 일제히 보도한 '북, 정치범 대상 생체실험 BBC 보도'의 신빙성에 의혹이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신문들은 이날 BBC가 1일 오후 9시(한국시각 2일 오전 6시) 시사프로그램 <이 세상(This World)>에서 방영한 '악으로의 접근(Acess to Evil)'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을 인용해 <"북,정치범에독가스 실험"(국민일보 2일자 10면)> <영BBC "북, 수용소서 생체실험"(동아일보 2일자 2면)> <"북, 정치범 가족에 생체실험"(조선일보 2일자 2면)>  <"북, 정치범대상생체실험"(한국일보 2일자 2면)> 등으로 관련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내용은 1999년 주중 북한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하다 한국으로 망명한 권혁(가명) 씨가 피랍탈북인권연대를 통해 BBC에서 "수용소 근무 당시 새로운 화학무기를 실험하기 위해 가스실에서 어린이와 부녀자 등을 포함한 수감자들이 가스실에서 실험용으로 살해됐다"고 폭로한 진술을 골자로 하고 있다.

   
▲ 조선일보 2월 3일자 4면 가판에 보도된 '이관서' 사진.
그러나 연합뉴스는 2일 오후 3시께 송고한 <'北 생체실험' BBC 보도 신빙성 의문…'이관서' 문서 진위여부 의혹>이란 기사에서 "생체실험을 증언한 탈북자 권혁씨는 이 방송이 보도한 것처럼 정치범수용소에 보안요원이나 베이징(北京)주재 북한 대사관 정보요원으로 근무한 적이 없으며 생체실험에 대해 어떠한 증언을 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우리나라 정보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피랍탈북 인권연대가 공개한 '이관서'라는  문건이 북측의 관련 기관에서 만들어졌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너무  많다"며 몇 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연합뉴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로 △문건에 인쇄된 글씨들은 종이가 구겨져 훼손이 됐음에도 펜을 이용해 손으로 적은 본문은 훼손되지 않음 △문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보위부 제22호관리소'라고 붉은색 직인이 찍힌 것과 관련, 북한의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보위부'이며 '국가보위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음(통일부가 작년말 발행한 '북한권력기구'표에도 북한의 정보기관을 국가안전보위부로 명시) △북한의 생체실험을 증언한 탈북자 권씨는 정치범수용소 등에 근무한 적이 없고 탄광 경비를 맡아보던 사람임 등을 들었다.

연합뉴스가 이같은 의혹을 제기한 배경에 대해 박노황 연합뉴스 남북관계부장은 "지난 일요일 밤(1일)에 '이관서' 문건을 입수한 후 그냥 무비판적으로 내보낼 것인가,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 진위여부를 가린 후 보도할 것인가 고심하다 후자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박 부장은 또한 "이번 논란의 두 증거는 '이관서'와 권혁 씨인데 둘 다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며 "BBC를 인용보도한 언론들로 인해 많은 국민이 생체실험을 사실로 믿은 이 때, 우리라도 진위여부를 가려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2일 보도 이후 북한에 정통한 취재원을 통해 △'이관서'에 찍힌 것과 달리 북한은 공인(公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함께 쓰지 않음 △'생체실험'이 있다해도 그렇게 쓰지 않고 '3호실험' 등으로 은어 표기함 등을 밝혀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3일 동아일보와 세계일보는 각각 사설 <경악스러운 북 생체실험 보도> <북의 생체실험 보도가 사실이라면> 등을 올리며 북한의 '반인륜적 범죄행위'를 성토하고 나섰다.

특히 동아일보는 "구소련이나 민주화 이전의 동유럽 국가에서도 없었던 야만적인 국가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집단이 북한 정권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북한이 반인륜 범죄를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북 태도를 비난했다.

한편 조선일보는 3일자 가판 4면의 <정치범 생체실험 북 내부문건 공개> 기사에서 '이관서' 본문을 공개하며 한 탈북자의 증언을 인용해 "이 문서가 제22호 관리소에서 정치범을 호송할 때 사용하는 문건이 확실하다"며 "제22호 관리소 근처 '죽기골'에도 생화학부대로 추정되는 특별구역이 존재했다"고 보도했으나, 배달판에서는 이 기사를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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