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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얼음예술의 극치 '하얼빈 빙등제' (4)
겨울 얼음예술의 극치 '하얼빈 빙등제' (4)
[하성봉의 중국이야기]

   
▲ 2001년 12월 제3회 하얼빈빙설제 대세계는 베이징의 상징적 공원인 중화세기단의 건립을 기념한 얼음조각이 제작됐다. 얼음 조각위에 <제3회 하얼빈 빙설대세계>라는 간판과 함께 얼음 계단을 오를 내릴 수 있도록 붉은 카페트(가운데)가 깔려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 빙등제 개막이 보도되고 있다. 하얼빈의 빙등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몇 안되는 '얼음 예술'의 극치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역사적인 곳으로 독립 운동의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얼빈 빙등제는 겨울철 영하 30여도까지 내려가는 천혜의 기후조건 때문에 가능하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하얼빈은 '얼음 예술'이 발전할 '얼음'이란 토양을 갖추고 있다. 얼음은 물에서 나온다. 중국의 동북지역 최북단 헤이룽장성 하얼빈은  백두산 천지가 발원지인 쑹화강(松花江)이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따라서 하얼빈 빙등제에 사용된 얼음은 백두산 천지에서 비롯된 셈이다.

하얼빈 빙등제는 1963년부터 시작됐다. 그뒤 개방의 바람을 타고 관광객 유치차원에서 1985년부터 본격화됐다. 하얼빈의 1월 기온은 영하 15~30도,적설량 5~30㎜를 기록한다. 올해 빙설제는 5회째, 빙등제는 30회째다. 빙등제는 보통 1월초 정식으로 개막해 3월초까지 2개월여간 '얼음의 축제'가 벌어진다. 새해 5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빙설제는 30만 평방미터에 얼음량은 10만 입방미터, 눈의 양은 15만 입방미터가 사용됐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얼음과 추위'를 훌륭한 관광상품으로

   
▲ 2001년 제3회 하얼빈 빙설제에서 최고 눈 조각상을 받은 <중국불> 이 관광객들을 맞이하듯 환히 웃고 있다.
2000년 12월 하얼빈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른 아침 숙소 앞을 나섰을 때 갑자기 코끝이 '쨍'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현지인은 "코털에 묻은 수분이 한순간 '동결'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추위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거리를 거닐다 보면 차지만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매우 '쿨'(cool)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반도지역인 국내의 경우 공기속에 비교적 높은 습기를 함유하고 있어 '으시시한' 추위다. 건조한 공기가 전하는 하얼빈의 추위는 무색 무취한 강렬한 보드카 맛을 풍긴다. 하얼빈의 빙등제는 한마디로 놀라웠다. '얼음과 추위'조차도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얼음 조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적의 예술로 비쳐졌다. 하얼빈은 매년 2~3개월간 중국식 봉이 김선달의 수지맞는 '물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얼빈의 거리는 12월 중순이 되면 얼음으로 채워진다. 두터운 쑹화강의 얼음은 톱으로 잘려져 대로마다 얼음 덩어리가 배치된다. 일정기간 훈련을 받은 조각 기술자들은 끌과 망치로 얼음을 다듬기 시작한다. 하얼빈시 소속의 약 20개의 빙등조각전문회사가 확보한 조각가들이 제작에 참가한다.보통 하룻만에 얼음 덩어리는 아름다운 '크리스탈 조각 예술품'으로 태어나게 된다. 하얼빈의 가장 번화가인 중앙다제(中央大街)는 조각의 거리로 변한다. 말, 어린이, 모자상 등 온갖 형상들이 얼음을 깨고 새롭게 탄생해 거리의 좌우로 도열해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얼음 조각은 유럽의 대리석 조각과 달리 투명하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불야성 이루는 '밤의 빙등제'

   
▲ 하얼빈 빙등제 행사장인 시내 조린공원에 얼음과 형형색색 형광등이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 <얼음 중국성>이 웅장하고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낸 가운데 관광객들이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얼음조각을 감상하고 있다.
밤의 얼음조각 풍경은 환상적이다. 하얼빈 시내 조린(兆鱗)공원은 얼음 조각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빙등(氷燈)제는 '얼음'과 '등불'의 결합어다. 얼음 조각들은 형형색색의 형광등 불빛과 함께 꿈의 세계를 연출해낸다. 얼음 작품들은 조각 기술의 정교함과 함께 규모의 웅대함에 놀란다. 얼음 조각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 없다고 할 정도다. 만리장성, 자금성, 둔황 막고굴, 콜로세움 등 국내외 유명한 건물이 축소된 형태로 얼음으로 표현된다. 형광등 불빛은 투명한 얼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불빛은 얼음조각의 바깥을 비출 뿐 아니라 얼음속에 설치돼 초록, 붉은색, 노란색, 보랏빛 등 바깥으로 굴절된 갖가지 색깔을 뿜어낸다. 얼음조각에서도 중국인들의 '실용성'이 느껴진다. 그냥 먼발치서 바라보는 것 외에도 얼음 동굴과 건물처럼 안으로 들어가 실내를 돌아볼 수도 있다. 얼음문, 얼음회랑, 얼음계단, 얼음 미끄럼틀 등 직접 만지고, 딛고, 몸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얼음 미끄럼틀은 계단을 올라가 약 30m의 길이를 미끄러져 내려온다. 여름철 수영장 미끄럼틀과 같은 빠른 속도감과 스릴을 즐길 수 있다. 관광객중에는 털모자를 쓴 러시아인들도 많이 눈에 띈다. 하얼빈은 러시아와 접경으로 변경무역이 발달한 곳으로 러시아 상인과 관광객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관광객 유혹하는 거대한 '빙설제'

   
▲ 하얼빈 빙등제에서 눈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얼음 디즈니 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디즈니 랜드속에 제작된 뾰족한 얼음 첨탑, 중국불, 몽고 바오, 코끼리와 코뿔소 등 동물원과 베이징의 중화세기단 얼음조각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빙설제는 서울 여의도처럼 쑹화강 가운데 떠있는 태양도에서 열린다. 이곳은 거대한 '빙설국'을 연상시킨다. 조린 공원과 달리 광활한 야외공간에 '동화의 나라'가 연출된다. 2001년말~2002년초에는 눈조각 우승 작품인 '중국불'과 찻잔과 접시, 코끼리떼, 코뿔소와 원숭이 등 각종 동물 눈 조각들이 선보였다. 눈 조각은 강추위의 힘을 받아 조각한 형태가 한동안 그대로 유지된다. 출입구 얼음벽에는 포도, 당근과 고추 등 얼음 채소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실물과 같은 색의 물감을 먹인 얼음을 조각해 칠기처럼 얼음벽에 붙인 것으로 창의성이 돋보인다. 고드름이 종유석처럼 드리워진 얼음 동굴도 볼 만하다. 물을 뿌려 얼린 수백개의 고드름이 드리워진 얼음 동굴은 유령의 성처럼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한 곳에는 '3개대표(三個代表)를 실현하자'는 문구가 적혀있다. 빙설제에도 중국식 사회주의의 '사상과 철학'이 강조된다. 또 일본군에 대항한 항일전사들의 위령비 눈조각도 눈길을 끈다. 하얼빈은 일본군이 인간 생체실험을 한 '731 부대'가 가까운 반일감정이 높은 곳이다. 이곳 저곳을 구경하며 거대한 얼음 냉장고속을 거닐다 보면 손발과 온몸은 꽁꽁 얼지만 마음만은 즐겁다. 하얼빈은 이런 강추위로 인해 세계적인 빙상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 쇼트트랙 여자 대표선수 '양양' 자매는 하얼빈 출신들이다. 이들 빙상 선수들의 허벅지는 어릴때부터 쑹화강 얼음판위에서 단련돼 세계적 선수로 성장하는 것이다.

또 다른 명물 얼음수영…북한의 빙등제를 기대하며

   
▲ 중국 인부들이 하얼빈 중심거리인 중앙다제에서 얼음 조각상을 설치하기위해 쑹화강으로부터 잘라온 두꺼운 얼음을 다듬고 있다.
하얼빈은 빙등제, 빙설제와 함께 '둥융'(凍泳)이라는 '겨울철 수영축제'가 또다른 명물이다.  눈으로 온몸을 문지르는 러시아의 '눈샤워'와 달리 중국인들은 온몸을 얼음물에 푹담그는 '얼음 수영'을 즐긴다. 얼음 수영은 한해 내내 감기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믿음속에 북방인들의 오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이밖에 얼음위에서 반바지만 입고 오래 버티는 이색적인 대회도 열린다. 하얼빈 빙등제는 매년 3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올해 국내의 경우 내년 1월3일~2월8일간 열리는 대관령 빙설축제에 중국의 대형 얼음조각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999년 5월 초여름에는 한달간 일산 호수공원에서 영하 8도를 유지한 에어돔에서 '중국 빙등제'가 개최된 적도 있다. 하얼빈의 얼음 축제의 명성은 얼음이 한동안 녹지 않을 강추위와 관광객을 위한 얼음의 상품화로 가능했다. 북한도 겨울철 하얼빈 못지않은 강추위가 있어 빙등제 개최지로 적당하다고 본다. 북한에서 열리는 겨울철 빙등제에 남쪽 관광객들이 방문할 날을 기대해 본다.

 

   
하성봉 기자는 1987년 10월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체육부, 사회부 법조 기자를 지냈으며, 국제부 기자로  베이징 특파원을 거친 뒤 현재 국제부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001년 9월말~10월초 아프간 전쟁시 북부동맹 전쟁지역을 취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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