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구 상도2동 159번지 일대. 지난해부터 시작된 철거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는 이 곳에 이주대책 없는 강제철거를 반대하는 철거민들의 농성장인 철탑이 외롭게 서있었다.

11일 오후 3시 무렵 이 철거현장에는 넓은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고 약 7곳의 초소에는 용역직원들이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고 있었다. 철거 현장 곳곳에서는 포크레인이 철거 잔재물을 치우고 있었고 현장 입구에 세워진 컨테이너에는 전경 몇몇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농성 현장 파악을 위해 이 곳을 찾은 서경원 전 평민당 의원은 철탑 진입을 위해 이 곳 저 곳 전화 통화를 시도한 뒤 철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취재진은 전국철거민연합 이태교 고문, 이진숙 사무차장과 함께 '사제총쏨! 위험! 통행금지' 라고 적힌 바리케이드를 넘어 철탑 안으로 진입했다.

   
▲ 상도동 철제 골리앗 입구에 철거용역직원들이 설치한 바리케이드 앞에서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이진숙 사무차장은 철탑 진입 전 이 곳의 철거 경과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사무차장은 "상도동 철거는 지난해 초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대해 원만한 문제해결을 요청하는 공문을 시공사측에 수차례나 발송했다. 언제부턴가 조직폭력배가 상주하기 시작했고, 애들에게까지 협박했다. 여학생들에게 성희롱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에 대해 경찰에 신고해도 경찰이 수사에 잘 나서려 하지 않았다. 대부분 늑장출동이었다.
이 때문에 철거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중심으로 한사람 두 사람 모여들었다. 이렇게 하니 사무실도 철거했다. 결국 이들 철거민들은 지난해 12월 철탑 망루를 세웠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지역내에 조직폭력배와 깡패 30∼40명이 콘테이너로 사무실을 만들어놓고 지속적으로 철거를 하거나 위협을 자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철탑 입구에서 진상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서 전 의원은 상당히 격앙된 말투로 기자에게 호소했다. "사제 총은 무슨 사제 총, 내가 들어가 곳곳을 살펴봐도 그런 것은 볼 수 없었다. 언론들이 왜 그렇게 쓰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문제는 향후 언론에 강력히 항의할 것이다. 내가 이 곳에 들어온 이유는 그 사제 총 관련한 진상 조사와 대화통로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대화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서 전 의원은 "경찰당국 고위층과 이미 이야기가 돼있다. 시공사, 구청, 경찰, 철대위, 전철연 등 5자가 만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곧 마련할 것이다. 상도동 철거민 대책위 김영재 위원장하고도 합의를 봤으니 대화를 통해 이 일을 풀어나가는 데 일조할 것이다"고 말했다.

서 전 의원과 헤어져 들어간 철탑 망루에는 검은 복면을 쓴 규찰대가 서 있었고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단전으로 인한 어둠이 철탑 안을 감싸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들어간 내부 주방에는 고령의 철거민들이 어둠 속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김 위원장 등 철거민 몇몇이 촛불이 켜진 방에 자리하고 있었다.

방안에 김 위원장과 함께 있던 세 아이의 아버지 김 모씨는 기자에게 울분을 토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주고 살았다. 지금 이 아이 셋을 데리고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청와대 화장실로 가라면 가서 살겠다." 1살, 2살, 4살을 먹은 세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지난달 28일의 대치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한 기자분이 용역반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며 아이들을 보여주면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기에 아이들을 안고 망루로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들을 보고서도 여전히 크레인에 쇠뭉치를 매달고 있었다. 생각해 보라. 세 아이를 포함해 우리 가족이 다 죽을 수도 있는 일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함께 자리한 전국철거민연합 이태교 고문은 "우리는 개발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서 좋은 주거환경에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 곳에 살고 있는 거주자도 함께 살 수 있는 개발정책을 펼치라는 것이다. 법에도 명시돼 있는 가수용 단지와 영구임대주택 건설은 왜 하지 않고 불법적인 강제 철거를 일삼는 것인가. 기자 여러분도 제발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기사 작성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창길기자 phoeye@mediatoday.co.kr
철대위 김 위원장은 촛불이 켜진 속에서 말을 이어나가며 "봐라. 이렇게 전기까지 끊었으니 어떻게 하란 말인가. 지난번에 기자 분이 아이 분유를 사다주려는 데도 폭언을 일삼는 사람들인데 우리를 사람 취급이나 하겠는가. 인명사고 나면 돈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이다"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 위원장 곁에는 세 아이의 어머니인 신 모씨가 아이를 어르고 있었고 아이들은 오랜 시간동안의 농성 속에서 힘든 모습을 보였다. 둘째 아이는 독감에 걸렸는데도 제대로 된 약을 복용시킬 수 없는 형편이었고 셋째는 분유가 모자라 쌀뜨물에 설탕을 타 먹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김 위원장은 경찰의 수배와 구속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김 위원장은 "철거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무조건 사진 채증해 업무방해 및 폭력 등의 혐의로 서울구치소로 잡아넣고 있다. 잡혀간 이들은 제대로 된 범죄혐의가 없기에 곧 풀려날 것이라고 보지만 도대체 경찰은 어떻게 이런 일을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한탄했다.

28일 당시 상황에 대해 이진숙 사무차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반 공권력과 철거깡패들이 1층을 철거하려고 포크레인을 돌진시키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철탑위에 있는 철거민들은 전원이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저지하는 등 대응했다. 용역깡패들이 크레인에 여럿이 올라탔다가 자기들 잘못으로 몇 명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들과 경찰은 이를 마치 철거민이 떨어뜨렸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용역깡패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은 새총과 화염병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사제 총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반면, 크레인에 올라탄 용역직원들은 가스총, 식칼, 도끼, 곤봉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김 위원장은 또한 언론에 대해서도 "와서 이야기 할 때는 제대로 써줄 것처럼 하고 가놓고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전혀 딴판으로 쓴다. 그래서 자꾸 불신감이 쌓이는 것이다. 이 철거행위가 불법인가에 대해서는,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힘든 형편인가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고 '사제 총' 운운만 보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철탑 안에서 머무른 취재진이 돌아가려 하자 망루를 지키던 철거민들은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며 "있는 그대로, 본 그대로 써주시면 다음 번에 오실 때도 환영하겠다"고 말했다.

어둠이 깔린 철탑 앞 언덕을 걸어 내려오는 철거현장에는 전경 근무 초소의 불빛과 용역반이 피워놓은 모닥불, 그리고 길 건너편 높은 아파트의 불빛만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