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대학가요제에 ‘대학’은 없었다
대학가요제에 ‘대학’은 없었다
[기고] 서울대 웹진 기자가 본 2003 대학가요제

MBC 주최 2003 대학가요제가 10월 4일 서울대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가요제를 지켜 본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 www.snunow.com )의 선민 부편집장(사회학과 4학년)의 기고문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올해 27회를 맞이하는 2003 대학가요제가 사상 처음 서울대학교에서 열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되도록 많은 행사를 유치하고자 했지만, “면학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에 안 된다”며 서울대 당국과 교수들이 완강히 반대했다. 결국 ‘서울대’라는 이름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져 가는 대학가요제에 힘을 실어주려는 MBC와 총학생회의 이해가 겹쳐 막후 합의를 통해 ‘총학생회 유치, 대학 당국의 지원’ 형식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대학가요제 유치가 결정되자 학내는 물론이고 인근 지역 주민들까지 술렁거렸다. 말 그대로 대학가요제는 하나의 ‘전설’이었기 때문이다. 1977년 시작해 산울림과 송골매, 신해철까지 수많은 가수들의 등용문이 되었던 대학가요제. 게다가 이번에는 이효리가 MC를 보고, 세븐, 장나라, 신해철, DJ DOC 등 인기가수들이 대거 출연한다. 행사 당일인 10월 4일 서울대학교 대운동장 근처에는 대낮부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인근 주민 총출동에 노점상까지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바글바글 올라오기 시작했다. 행사장 주변에는 핫도그와 오뎅, 고래고기와 홍어회를 파는 노점들이 잔뜩 들어서고, 인근 중고생들부터 애들 손잡고 나온 부부까지 지역 주민들이 총출동했다. 주최측은 3~4만명의 관중이 모였다고 말했다. 복잡하게 배정된 좌석 때문에 입장이 늦어졌고, 중간에 관객들이 자원봉사자들의 제지를 뚫고 객석으로 뛰어들어가는 사태도 있었다. 덕분에 항의와 사과가 이어지고, MC 김제동이 나와서 무릎을 꿇고 관객들을 웃기고... 우여곡절 끝에 관악산의 냉기가 으슬으슬해지는 밤 9시가 넘어서야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생방송은 훌륭했다. 리허설을 질리도록 본 현장 관객들이긴 했지만, 화려한 의상을 걸친 인기가수들이 불꽃이 폭발하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만 봐도 흥이 났다. 진행은 부드러웠고 음향은 훌륭했으며 무엇보다 신해철-체리필터-DJ DOC-이적 등으로 이어지는 인기가수들의 열광적인 공연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추운 날씨에 덜덜 떨기는 했지만 누구 하나 온 걸 후회한다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핵심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정작 대학가요제의 주제가 되어야할 대학생 참가자들의 무대는 한없이 초라했다는 것. 13팀의 참가자들의 노래와 연주는 당연히 인기가수들보다 못했으며, 호응도 적었다. 또 화려한 무대 조명과 장치들은 그들의 무대를 위해서는 별로 힘을 써주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 역시 ‘나 어떡해’와 같은 전설적인 대학가요제 노래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류 가요의 장르적인 규칙들을 철저히 준수한 작곡, 가수들 흉내내기에 가까운 창법을 보여주는 무대들은 밋밋했다. 몇몇 팀들은 오페라, 국악, 뮤지컬 등을 끌어와서 ‘퓨전’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지만 그건 한편의 희극에 가까웠다. 음악적 완성도나 주제의식이 전면에 나서지 못한 채 외양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가요제는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의 철저한 실력 차이를 보여주면서, 참가자들을 TV에 한 번 내보내주는 무대에 그치고 말았다.

초대가수 공연은 '열광', 참가자 무대는 '초라'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원래 대학가요제는 대학 안의 문화적인 흐름들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이를 통해 대중문화에 신선한 자양분을 공급하자는 의도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그런 아이디어가 적중해서 70년대 후반 샌드페블즈와 활주로 같은 전설적인 그룹들이 나타났고, ‘그룹사운드’라는 생소한 단위가 대중음악 판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들은 조용필이나 트롯 가수들이 주지 못했던 새로운 감수성을 대중문화에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이번 대학가요제 역시, 대학에서 그런 신성한 자양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강박적으로 대학생의 신선함과 패기를 강조하고, 그들의 의식까지 조사해서 발표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그러나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보여주었듯이 대학가요제가 찾고 있는 대학의 에너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하겠냐?”라는 질문에 “저금을 하겠다”고 대답하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자신들만의 대학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시청자들과 똑같은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서울대학교라는 지역적인 공간에 머무르게 되었을 뿐, 각자의 계층과 취향에 따라 다른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들이 어떤 감수성을 갖고 있는가와는 별개로, 집단으로서 대학생들에게 신선함과 패기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다. 그것은 대학가요제가 스스로 만들어내서 집착해온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그 환상의 실체는 실망스러웠다. 참여자들은 10년 정도 때가 지난 가요나 어설픈 퓨전 음악을 들고 나왔고, 그들의 무대는 좋게 봐주어도 대중가요의 아류 수준을 넘어설 수 없었다. 신선함과 패기로 가득 찬 대학의 감수성은 이제 대중문화가 앞에서 끌고 간다는 사실을 대학가요제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어쩌면 ‘전설’로 내려오는 대학가요제 역시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었을까? 당시 우연히도 신선함과 패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수상했고 가요계에서 성공했을 뿐, 대학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공간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전설에 대해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대학이 단일한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대중문화 판에 공급해줄 새로운 에너지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신선한 대학문화는 환상... 차라리 ‘신세대 전국 노래자랑’을  

“세븐 가까이서 보니 정말 멋있더라”는 관객들의 감탄과 함께 새벽 1시경 행사는 끝이 났다. 오랜만에 젊은 패기를 느껴서 기분이 좋다는 배철수의 멘트를 남기고. 정작 패기의 주인공인 대학생들은 추워서 달달 떨고 있었는데 말이다. 현재의 대학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얘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을 공유하는 일종의 ‘지리적’ 특성이지, 신선함이나 정열 같은 단일한 감수성은 아니다. 그 속에는 때때로 생경한 감수성과 문화적 에너지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대학가요제가 원하는 형태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가요제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환상이었으며,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의 가요 벤치마킹 경연대회였다. 내년에는 <신세대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제목을 건다면 더욱 설득력도 있고 대학생이 아닌 뛰어난 예비가수들도 많이 참여하지 않을까.

선민 / 서울대 인터넷뉴스 ‘스누나우’( www.snunow.com) 부편집장 · 사회학과 4학년. sun1830@hotmail.com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이 기사는 논쟁 중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