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과 조선일보의 최장집 교수 사상검열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최교수와 조선일보 등 두 당사자가 저술내용의 해석을 둘러싸고 연신 논전을 거듭하고 있으며 학계와 언론계 및 시민단체들도 연일 성명을 쏟아내고 있다.

한쪽에서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엄연히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임에도 불구하고 학술행위를 문제삼아 ‘빨갱이’로 내모는 것은 명백한 ‘메카시즘적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에 못지 않게 언론의 자유도 존중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견 논쟁으로 비쳐지는 사안의 양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가지 점에 관해서만은 명징하게 사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한다.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 <’최장집 건국사관’ 규명해야>에서 최장집 교수의 사상을 문제 삼는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가 대학 연구자로만 남아 있는 한에는 월간조선이 그토록 정면의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는 다름아닌 대통령 정책기획위원장이며 그렇기 때문에 논란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주장에 따른다면 조선일보가 문제삼는 것은 ‘교수 최장집’이 아니라 ‘위원장 최장집’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나 월간조선은 최교수의 과거 저술을 문제삼을 게 아니라 위원장 취임 이후의 최교수 언동을 문제 삼았어야 하는 게 정도이다.

언론이 사회적 공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는 엄격히 제한되는 게 원칙이다. 그의 가시적 언동이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위해나 피해를 끼칠 경우로 한정해야 마땅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고 과거의 학술적 행위를 문제삼아 “앞으로 이럴 것이다”라고 예측해 비판하는 것은 부당하다. 더구나 문제의 저술활동은 학문사상의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학문의 자유가 있으면 언론의 자유도 똑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상적인 보도를 제약하는 여하한 행위도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최교수는 물론 그의 저술을 읽어본 이들은 대부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의 보도내용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학술논문의 경우 개념의 엄밀성을 생명으로 하는만큼 인용에 신중을 기했어야 하는데도 앞뒤 문맥을 잘라버리고 단 한문장만을 인용해 독자들의 ‘오인’을 유발하거나, 다른 학자의 개념을 인용한 것을 마치 최교수의 주장처럼 보도함으로써 최교수의 학문적 지향이나 이미지를 심대하게 손상시켰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는 몇차례 지면을 할애해 그것이 잘못된 인용이 아님을 주장한 바 있어 보다 엄밀한 검토가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와중에도 명징하게 정리된 사례가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20일자에서 월간조선의 기사내용을 발췌해 실으면서 “최교수가 ‘6.25는 미국의 남침 유도에 의해 일어났다…’라는 주장을 폈다는 내용이다”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월간조선과도 다른 완전한 오보였다. 월간조선은 “그는 미국이 북한으로 하여금 남침하게끔 유도했다는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교수의 학문세계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오보를 해놓고도 조선일보는 이에 대한 정정을 전혀 싣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에 상응하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보도태도 때문에 조선일보의 ‘언론의 자유’ 주장이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것이며, 일부로부터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왜곡의 자유, 오보의 자유일 뿐”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언론이 매개하는 토론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 것은 언론이 중개자로서 토론에 임하는 당사자들, 그리고 이를 주의깊게 관전하는 이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때로 국한된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야기한 이번 논쟁이 과연 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 공정한 룰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자성해 봐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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