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가 거듭남의 진통을 겪고 있다. 다수의 사원들이 8년간의 무노조 경영의 벽을 깨고 노조를 결성했고, 회사측은 이에 맞서 분사를 강행했다. 이 상태로 간다면 정면충돌 양상까지 빚어질 공산이 크다.
그러나 이같은 예측에 우려와 걱정이 끼어드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을 SBS는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SBS는 그동안 적지 않은 지적을 받아왔다. 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새롭게 부활한 민영방송으로서
방송의 공영적 성격에 충실하기 보다는 시청률 경쟁을 주도하고, 편파적인 보도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 노조가 출범 선언문에서 “모든 일들을 사실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불멸의 밤을 보낸 적도 많았다”고 자기고백을 하면서 “불의의 칼날을 막는 방패”를 자임하고 나선 것은
이런 과거 경험의 소산이라고도 평가된다. 또 그런 점에서 노조의 출범을 언론계가 반갑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무쪼록 노조가 일신우일신하는 SBS의 견인차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조라는 존재가 SBS 개혁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노조가 SBS의 참된 거듭남을 견인하기 위해 풀어야 할 난제는 쌓이고 쌓였다. 무엇보다도 8년간의 무노조 경영과정에서 굳어질대로 굳어진 경영진의 독단과 독주를 제어해 내는 게 급선무이다. SBS의 윤혁기 사장은 노조 출범과 때맞춰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 분사를 포함한 사측의 구조조정안을‘개혁조치’로 자평하는가 하면 노조 결성을 이기주의와 보신주의의 발로로 규정하는 독단을 내보였다.

노조를 구조조정을 피해가기 위해 급조된 조직으로 폄하하면서 “법적 보호막 속에서 개혁의 소나기를 피하려 한다면 결코 그 노조는 지지받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경영진의 이같은 인식은 노조 출범 직후부터 열리고 있는 단체협상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단체교섭에서 분사안 등을 논의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대해 “분사는 경영행위”라며 한때 단체교섭 대신 노사협의회를 열 것을 주장하는가 하면 이후 개최된 단체교섭에서도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등 노조를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과 인사에 관한 사항이라해도 그것이 근로조건이나 지위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경우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는 ‘상식’을 저버리고, 노조를 상대로 단체교섭대신 노사협의회 개최를 요구하는 독선적인 태도를 바로잡지 않는 한 노조의 개혁 노력은 성과없는 몸짓으로 그칠 수 있는 것이다.

SBS노조가 최근 족벌경영 포기 촉구 서명운동에 돌입한 사실에 주목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사실 ‘사주’에 의한 언론사의 독단적 경영은 특정사만의 일이기보다는 대다수 언론사에 공통된 현상이었다.

SBS는 비록 특정 족벌 또는 재벌이 주식의 절대다수를 소유한 기업은 아니지만 태영이 주식의 30%를 소유한 지배주주로서 경영의 전권을 행사해 왔기에 타사에서 나타나는 경영진의 독단적 경영의 폐습이 빈번히 나타난 게 사실이다. 여기에 타사와는 달리 무노조 상태에서 경영권을 행사해 오다보니 독단적 경영은 더욱 고착화됐고 공고화된 점이 적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노조가 족벌경영의 포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한 것은 SBS 개혁의 또 다른 필요조건인 경영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서 너무도 당연한 요구라고 평가될 수 있다.

더구나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재벌과 족벌의 독단적 경영의 폐습을 근절하기 위해 소유제한을 명시한 정간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해 놓은 점을 고려한다면 족벌경영을 정면에서 문제삼은 SBS노조의 서명운동은 다른 언론사의 민주화세력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상당한 파장을 미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하겠다.

아무쪼록 SBS노조의 분발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보면서 경영진의 열린 자세와 대승적 조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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