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전근대를 가르는 준거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도 무게가 쏠리는 준거의 하나가 시간이다, 전근대의 사람들이 시간을 그저 ´지나가는 것´으로 인식했다면, 근대의 삶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인식한다.

전근대까지의 시간이 자연의 흐름으로만 새겨졌다면, 근대 이후의 시간은 인간의 주체적 시간으로 새겨지게 되었다는 뜻일 터이다. 따라서 경제학과 정치학에도 그 인간의 주체적 시간이 중요한 함수로 등장하게 된다.

이를테면, 이땅에서도 널리 읽혀온 폴 사무엘슨의 교과서 경제학>은 그 첫머리에서, 경제란 무엇을(What) 어떻게(How) 누구를 위해서(For Whom) 얻는가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저명한 정치학자 해럴드 라스웰은 아예 그가 펴낸 책의 제목을 이렇게 내건다. <정치-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얻는가> 풀이할 나위도 없이 정치의 세계란 누가(Who) 언제(When) 어떤 행동을 하느냐로 결정된다는 뜻이리라. 행동의 주체와 그 시간의 함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메시지이다.

유구한 자연의 시간은 돌고 도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의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같을 수는 없다. 그 깨달음에 눈뜬 근대 이후의 정치와 경제는 ´정치시간´또는 ´경제시간´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키게 된다. ´시간의 정치학´과 ´시간의 경제학´도 그 소산에 다름 아니다.

새삼스럽게 시간의 정치-경제학을 들먹이는 건 다른 뜻에서가 아니다.
흔히들 50년만의 평화적 수평적 정권교체를 입에 올리지만, 그 또한 시간의 정치학고 무관할 수 없다. 그만한 행동주체의 추구화 그만한 시간의 성숙이 어울어져 결정된 정권교체의 결과는 역시 라스웰의 명제와도 일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보편적인 사실은, 50년만이든 아니든 무릇 모든 정권의 성패는 시간의 함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이다. 달리 말한다면 모든 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정책결정의 시간적 적합성과 관련된다. 결정해야 할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때 집행해야 한다. 더욱 정확히 말한다면 결정할 수 있을 때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을 때 집행해야 한다.

시간의 정치학이 지시하는 시간적 적합성이란 행동주체의 판단과 힘이라는 함수를 더 없이 중시한다. 우리의 경험으로도 그 지시의 무게는 처절하리만큼 실감된다.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김대중정권의 경우만을 보더라도 시간의 정치학이 결코 공리공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언필칭 ´개혁´이 열창되지만 개혁의 진전이나 성과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물 건너갔다´는 탄식의 소리마저 울려온지 오래다. 분명히 때를 놓쳤다는 한탄의 토로일 터이다. 정부개혁 정치개혁 재벌개혁도 장단만 요란할 뿐 열매를 어루만저 보기엔 멀다. 개혁중의 개혁이라고 일컬어지는 언론개혁의 경우는 더 말할나위도 없다.

그마당에 이젠 통합방송법의 심의 제정마저 유보키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온다. 더욱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핑계이다. 구태여 가치중립적 표현을 거부한 채 ´핑계´라고 직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통합방송법의 논의는 이미 4년여동안 이루어져오지 않았던가. 그들의 말투를 빌린다면 ´준비된´ 야당 시절부터 그들 스스로의 굽힘없는 대안을 ´준비´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서´ 라는 핀잔도 이미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구법에 얽매여 연명해가는 저 방송위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더욱 화급한 것은 도산사태의 수렁에 빠져있는 유선방송들의 문제를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준비´만을 이어가는 위선방송의 문제 또한 가볍지 않다.

이 마당에 편성권의 독립을 위한 편성위원회의 구성과 공정방송 추구를 위한 시청자위원의 개편등을 거론할만한 기력은 솟아나지 않는다. 오늘의 방송, 오늘의 언론을 이대로 버려두어도 되는 것인가. 언론의 개혁 없이도 다른 개혁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한마디로 시간의 정치-경제학은 이미 이 정권에 위험의 경고를 발신하고 있따.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상승된 기대가 총족되지 못할 때, 기대는 체감되고 마침내 기대의 배신이라는 위기를 부르게 된다. 시간의 정치-경제학이 지시하는 시대의 명령을 어길 때, 불행은 정권에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