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의 언론 사찰은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래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식이 군사정권 이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변화됐을 뿐, 본질적 기능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기관의 언론사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의 역사는 지금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언론사 전담팀이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정보기관 내부에서도 극히 소수만 알고 있을 뿐이다.

특히 이들이 일상적으로 작성하는 보고서도 일정 기한이 지나면 대부분 폐기 처분하는 것으로 알려져 전담팀 내부에서도 자신이 맡은 분야 외에 다른 요원들의 일상적 활동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정보기관과 언론은 기본적으로 긴장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언론사 내부에서 주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기관원들이 직간접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때로는 그 정보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74년 동아·조선 기자들이 언론자유 수호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기자들을 만나 사표를 종용한 사건은 가장 단적인 예다. 86년 월간 말지에 의해 폭로된 ‘보도지침’ 사건도 언론사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87년 당시 안기부는 김대중 납치사건과 관련해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증언기사를 문제삼아 <신동아> 등에 대한 제작과 발행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특히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던 80년대에는 학생운동 출신들의 언론계 진입을 막기 위해 경영진에 해당자의 전력 등을 전달하고 채용하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인사문제까지 구체적으로 개입했다.

정보기관의 언론사찰은 이런 직접적인 방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언론사 취재와 감시 영역에서 지금까지 사각지대로 존재해 왔기 때문에 정보기관과 관련된 보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관련된 사안에 대한 보도통제는 물론이고 공안사건의 경우도 대부분 정보기관의 일방적인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94년 일부 대학교수가 북한의 장학금을 받아 수사중이라는 당시 안기부의 발표를 언론이 그대로 보도했다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거의 모든 언론사가 정정보도를 낸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문민정부 시절에도 언론사찰은 계속돼 왔다. 96년 5월 KBS <추적 60분>에서 ‘성혜림 망명 사건’을 다루면서 “국가 정보기관으로서 안기부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분을 방영하려 하자 당시 안기부는 이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청해 결국 삭제된 채 나갔다.

96년 6월 충청일보 사장에 안기부 출신이 임명되는 과정에서 물의가 빚어지자 안기부가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언론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올해 초에 발생한 MBC PD에 대한 폭행 사건을 들 수 있다. 당시 MBC를 출입하던 국정원 직원이 <PD수첩>에서 방영할 예정인 국정원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수위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술에 취해 담당 PD를 폭행했다. 이 사건은 언론계의 강한 반발을 사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결국 전담팀 폐지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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