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은 없고 취재만 있었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4박5일간의 첫번째 금강산 관광 취재를 다녀온 한 기자의 푸념이다. 그만큼 금강산 관광 취재가 무질서하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금강산 관광 취재의 문제점은 준비단계에서부터 불거졌다. 지난 11일 현대 계동사옥에서 열린 설명회 자리에서 현대측은 200여명에 이르는 기자 각 개인에게 참가비용 150만원을 일일이 나눠주면서 서명을 받았다. 은행에 각자가 납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금강산 관광 비용은 137만원 가량. 13만원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한 기자는 “적지 않은 잔돈이라 찜찜했다”고 말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기자들은 통일부와 현대그룹을 출입하는 중앙언론사 기자들과 사진기자들, 그리고 한국 국적을 가진 외신기자들이다.

첫번째 금강산 관광 취재인 만큼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질서와 계통을 갖춰보자고 기자들이 18일 저녁 금강호에서 회의를 가졌으나 사진기자단을 제외하고는 취재단 구성과 관련해 아무런 결론을 얻지 못했다.

북측이 장전발 기사 송고를 거부한 만큼 공동취재단 구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이로써 각 언론사 기자들은 각개약진식으로 금강산 취재에 나서게 됐고,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강호에서 국내로 통화가 가능한 전화기 2대가 설치된 객실 안내대에선 ‘혹시 경쟁사가 기사를 송고하지나 않을까’를 염려한 일부 기자들이 보초를 서거나 수시로 확인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휴대용 비디오카메라의 촬영을 금지한다는 방침과 달리 북측이 특별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파한 MBC 기자들이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로 취재에 열중하자 타방송사 기자들이 이를 현대측에 ‘고자질’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방송사들의 경쟁은 귀국길에 올라 장전항을 떠난 뒤 첫보도를 내보는내는 과정에서도 연출됐다. MBC 취재진이 공해상에 들어서기도 전인 21일밤 9시40분께 위성을 통해 첫보도를 시작하자 KBS의 한 기자가 현대측에 거칠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MBC 취재진도 의욕이 앞서 첫보도를 송출하다 중단됐다.

금강산 관광 도중에도 문제는 적지 않았다. 신문 기자들이 인터뷰하던 실향민을 방송사 제작진이 ‘그림’을 만든다며 데려가는가 하면, 차량 이동 중엔 촬영이 금지돼 있음에도 계속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로 촬영을 하다가 동승한 일반 관광객들에게 “그만하라”며 제지를 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측의 취재 편의 제공도 수준이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는 당초 북측과 취재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협의를 하지않았다. 또 금강호에 프레스룸조차 설치하지 않아 기자들로부터 지적을 샀다.

관광하던 중 점심을 모두 김밥으로 떼우게 하는 등 사전 준비에 많은 허점을 노출하자 현대측은 언론의 비판적인 보도를 의식한 듯 기자들에게 “얼마 후엔 각 언론사 사장단도 금강산 관광에 초청할 계획”이라며 은근한 기사협조를 요구하기도 했다는 것.

한편, 조선일보와 KBS 기자들의 입국이 불허된 것과 관련해 금강산 관광 취재 기자들이 회의를 갖기도 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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