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 그는 일찍이 두테르테 필리핀 정부가 지지자 결집과 선동을 위해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음을 폭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두테르테 정책에 반대한 레일라 드 리마 상원의원은 소셜미디어에서 세 단계에 걸쳐 공격받았다. 두테르테 정부는 1단계로 허위 정보를 통해 드 리마 의원의 신뢰성을 무너뜨렸고, 2단계로 성적으로 공격했으며, 3단계로 드 리마 의원 체포를 청원하는 해시태그 운동을 선동했다. 

소셜미디어가 초법적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했다. 두테르테 정부는 사병부대를 통해 마약 밀매범을 살해해왔는데, 이 중에는 무고한 인권활동가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죽음 이전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동이 있었다. 우선 허위 정보가 유포돼 이들은 공통적으로 ‘공산당 동조자’란 낙인이 찍혔고, 이후 주의를 호소하는 전단이 정부의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뿌려졌다.

이후 이들이 살해당하면, 두테르테 지지자들은 ‘죽어도 싼’ 사람이라는 근거를 들어 살인을 정당화했다. 마리아 레사는 “마약 전쟁에 의문을 나타낸 사람은 모두 페이스북에서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점차 침묵한다”고 말했다.

▲ ▲nobelprize.org
▲ ▲nobelprize.org

역설적이게도 허위 정보 유포를 일삼았던 두테르테는 마리아 레사가 설립한 매체 ‘래플러’를 오히려 “가짜뉴스 출구”라 비난하며 2018년 현장 취재 제한 조처를 내렸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주 쓰기도 했던 이 ‘가짜뉴스’란 단어는 언론이 하는 이야기를 필요에 따라 ‘가짜’로 치부하게 하는 마법의 단어다. 언론 신뢰성을 깎아내리고, 입막음하기에 이보다 더 쉬운 프레임이 없다(그래서 우리나라 학계와 언론계에선 이 단어를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한다).

미국이야 표현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되는 나라니 그나마 낫다고 해도,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한 파키스탄, 필리핀 등 국가는 이 논리에 더욱 취약하다. 지난 4년간 세계 곳곳에서 투옥된 언론인만 매년 250명이 넘을 정도로, 언론을 적대하는 권위주의 정부 횡포는 최근 더 극심해지고 있다. 

권위주의 정부가 언론을 싫어하는 이유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표를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성숙한 판단을 할 것을 가정하는 제도다. 시민들은 지도자가 부패했는지, 권력을 일삼다 무고한 희생이 생겼는지, 올바른 정책을 펴고 있는지 따져보고 권력을 정부에 위임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언론, 언론으로 대표되는 표현의 자유다. 언론은 시민들이 꼭 알아야 할 정보를 전달해 그들이 역선택하지 않도록 돕는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언론을 도구로 삼아 더 깨우칠수록, 제대로 된 지도자와 정권이 시민의 신뢰와 권력을 이양받고 민주주의가 꽃피게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일수록 표현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된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기 쉬운 시대다. 허위 정보가 난무하고, 허위 정보에 진실이 가려지는 일이 허다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허위 정보를 가려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허위 정보 통제’를 목적으로 권력이 언론을 위협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고 있다.

마리아 레사와 드미트리 무라토프, 두 언론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래서 더 값지다. 노벨위원회가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더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세상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을 언급하며 그들의 투쟁을 지지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투쟁에 관심 가지고 연대해야 할 것이다. 레사의 말로 글을 맺는다.

“당신에게 사실이 없다면, 진실도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신뢰도 없다. 만약 당신에게 이런 것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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