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1일 ‘예술인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대한민국은 직업으로서 예술인의 가치와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에 발맞춰 음악인 단체인 뮤지션유니온은 지난 5~7월 ‘정책연구 릴레이 포럼: 음악같이, 음악가치’를 열고 코로나19 시대를 지내며 일자리 위협과 생활의 불안정에 시달리는 음악인의 삶을 드러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다. 포럼 논의 내용을 기획 연재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10일, 사회보장체계의 사각지대에 있던 예술인들이 드디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고용보험법에 ‘예술인 특례조항’이 추가됐다. 보수가 있는 예술 활동을 하는 동안 예술인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고용보험으로 직업적 안전망이 되리란 기대감이 높다.

그런데 시행 6개월이 지나도록 주변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에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토록 사례를 접하기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현 상황은 예술 현장의 오랜 관행과 고용보험에 대한 이해 부족이 제도 허점과 공명하면서 코로나 팬데믹 문화예술 봉쇄 정책에 뒤엉킨 난맥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진=뮤지션유니온
▲사진=뮤지션유니온

탁상 위 도는 예술인 생계

고용보험 제도 자체를 잘 모르는 예술인들이 많다. 서면계약은 고사하고 구두계약도 맺지 못한 채 불려다니고, 교육 과정이라며 스승의 공연에 동원돼 입장권까지 자비로 구매하는 예술인들에게는 문화예술용역계약이란 법률용어가 외계어에 가깝다.

소규모 예술단체들이나 예술 활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업자등록을 한 ‘1인 사업자’ 예술인들은 누가 사용자인지, 예술노무제공자인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세무/노무 등 복잡한 미로에 끌려들어가고 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도의 원리는 간단해 보인다. 예술인과 문화예술용역계약을 체결한 사업자가 예술인 고용보험을 신고하고 예술인 몫까지 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한다. 그리고 조건이 되면 예술인이 실업급여를 받는 방식이다. 그런데 복잡한 하도급관계와 프로젝트별 활동이 뒤엉키는 예술계에서 이같이 단선적인 방식은 작동하기 쉽지 않다.

일단 제도적 허점이 많다. 먼저 근로기준법 회피 우려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 6월30일 기준 예술인 고용보험 신고 건수는 총 7만 2000여건이다. 직종별로는 연예와 영화 관련이 43.8%에 달한다. 다시 말해 대규모 단체나 기관에 전속되거나 기간제 계약을 맺어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근로계약서를 맺어야 당연한 곳에서 예술 활동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을 회피하고 있지 않는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원청 기관이나 회사가 우위에 있는 문화예술 노동시장에서 일감이 끊길 위험을 감수하면서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프로젝트, 플랫폼 예술노동자들이 무슨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사진=뮤지션유니온
▲사진=뮤지션유니온

증명하지 못하는 예술은 예술활동이 아닌가

두 번째, 상당히 많은 예술인이 수혜 대상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0만여명이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예술활동증명을 받았고, 등록하지 않은 예술인들도 상당하지만 지난 6월까지 ‘고용보험료’를 한 번이라도 납부해 본 이는 4만 7703명에 머무른다.

예술인들은 단기 프로젝트 활동하거나 여러 활동을 동시에 진행한다. 아침에는 창작, 오후엔 강의나 기획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공연하는 경우도 많다. 활동이 복잡하고 제각각인데 예술인에 대한 일률적인 고용보험적용이 가능하겠냐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소소한 예술 활동을 신고·증빙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가입조건에도 제한이 많다. 문화예술교육 강사는 그 소득이 교육 분야 사업소득으로, 문화예술분야 자문·연구 등은 기타수입으로 분류돼 문화예술 활동임에도 예술인 고용보험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술이 아닌 예술’이라는 불합리를 경험하고 있다.

같은 소득 신고해도 예술인은 60%만 보장

세 번째, 역차별 문제도 있다. 정작 수급 과정에서 예술인이 차별을 받는단 얘기다. 애초 제도는 예술인 소득액이 낮고 불안정해 반복적으로 보험혜택을 받을 것이란 이유로 구직급여를 납부 기준액의 60%만 지급하도록 설계됐다. 일반 고용보험 가입자는 최소 6개월 납입하고 수급자격을 얻으면 120일 동안 4주에 168만원을 받는다. 예술인은 같은 금액을 신고해도 9개월을 채워야만 하고, 금액은 60%(4주 기준 102만원)를 받을 수 있다.

역차별이 과연 이것 뿐일까? 문화예술 분야의 명백한 사용자에게 산재보험료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예술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고용보험료 사측 부담금, 산재보험료 몇 푼 아깝다 생각마시고 신고해 납부하시라. 국회와 정부는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해 근로기준법의 노동자 범주를 넓히고,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덧붙여, 사업자등록을 가진 예술인에게 예술인고용보험이 아닌 자영업자 고용보험의 가입을 하라고 하면 안 될 말이다. 자영업자 고용보험은 폐업을 해야만 수급대상이 되는데 1인사업자 예술인에게 적절하지 않다. 폐업이 아니더라도 수급할 수 있는 제도 보완을 하거나 아예 예술인 고용보험 트랙에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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