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시사IN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순위를 발표했다. 1위는 시사IN이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줄곧 1위를 차지한 손석희 JTBC·JTBC스튜디오 총괄사장이었고, 2위는 국민 MC 유재석이었다. 3위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였다.

시사IN 조사 결과는 우리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살펴볼 만하다. 조사 결과를 보고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지면을 빌려 나누고자 한다.

첫째, ‘포스트 손석희’는 요원하다. 손석희 사장이 JTBC 뉴스룸에서 하차한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그를 이을 저널리스트 브랜드는 아직 없다. 이유는 많다. 우선 오랫동안 현장을 지키는 언론인을 찾기 어렵다. 현장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언론인들은 관리자가 돼 금방 현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밥 우드워드나 탐사보도 전문가 시모어 허시처럼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키며 이름을 알리는 저널리스트가 많은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언론인 풀’의 협소함은 손석희 이후를 생각하기 더 어렵게 만드는 요소다.

전통매체 영향력이 전과 같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 손석희 사장은 방송 뉴스 시대의 대표적 브랜드다. 그보다 전엔 촌철살인의 칼럼을 쓰던 신문기자들이 손석희 사장을 대신했다. 하지만 독자와 시청자가 신문과 방송만을 바라보며 정보를 얻던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유튜브, SNS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쏟아지면서, 전통매체는 정보 출처로서의 권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우리 언론인상이 아직 ‘손석희’에 머무르고 있는 이 상황은, 다시 말하면 이 바뀐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는 언론인이 아직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2017년 4월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를 맡은 손석희 앵커의 모습. ⓒJTBC
▲ 2017년 4월 대선후보 토론회 사회를 맡은 손석희 앵커의 모습. ⓒJTBC

둘째, 유재석의 2위 등극은 시민들의 머릿속에서 뉴스가 ‘소멸’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뉴스를 보지 않는 이들은 언론인 이름을 거의 알지 못한다. 유재석을 택한 이들은 어제 봤던 방송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등에 등장한 유재석의 ‘정갈하고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크다. 뉴스를 보지 않으니(보더라도 포털을 통해 파편적으로 접하다 보니), 아는 언론인은 없고 그래서 ‘유재석’이란 이름이라도 답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없다/모름/무응답’을 꼽은 비율이 58.1%나 된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들은 뉴스를 예전만큼 관심 있게 보지 않고, 자연히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자나 PD도 잘 모른다. 뉴스 파급력과 영향력을 항상 생각하며 일하는 언론인에게는 다소 맥빠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셋째, 김어준 총수가 3위에 오른 것은 ‘정파적 뉴스 소비’ 때문이다. 아무리 뉴스가 소멸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뉴스와 시사 정보를 소비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를 강화할 논거를 모으기 위해 뉴스를 본다. 정치색이 뚜렷한 매체를 선호한다. 신동욱 TV조선 앵커나 김대중 전 조선일보 고문, 그리고 유튜브에서 정치비평을 해왔던 유시민 작가가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 순위 10위 안에 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현직 언론인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강한 정치색은 양날의 검이다. 사람들은 ‘내 편’ 드는 이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남의 편’엔 무한한 불신을 보낸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4위인 TV조선이 가장 불신하는 언론매체 4위에 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 사진=TBS 제공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 사진=TBS 제공

“신뢰하는 언론인 순위에 ‘언론인’이 없다.” 시사IN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 같은 말을 덧붙였다. 1위를 계속 유지해온 손석희 사장도 일선 취재 현장에서 뛰고 있는 언론인과는 결이 다르다. 언론인 풀의 협소함 때문이든, 전통매체 영향력이 급감한 상황 때문이든, 정파적 스피커가 언론인을 대체한 상황 때문이든 언론인 필드에서 언론인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전통매체 영향력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최순실 보도와 같은 의미 있는 보도는 시민들이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보도가 쌓이면, 시민들 머릿속에 언론인 이름도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의미 있는 보도와 오랜 현장 경험으로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에 이름 올리는 언론인이 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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